통일부 당국자는 24일 중앙일보에 "3일 오전 국무회의 직전 티타임에서 김용현 (당시)국방부 장관이 송전탑 철거 관련 영상을 통일부에서 공개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송전탑은 남북경협 관련 사안이며, (인부가 추락하는 장면이 담기는 등)인권 침해 문제도 있었던 만큼 국방부 요청을 수용하게 된 것"이라면서다. 당국자는 그러면서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일체 고려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도 "통일부 내부에서 군이 촬영한 영상을 통일부가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김 전 장관이 김영호 장관에게 직접 부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앞서 통일부는 출입 기자단에 사전 공지도 없이 군 감시 장비로 촬영한 북한의 송전탑 철거 관련 영상을 두 차례(11월26일, 12월3일)에 걸쳐 공개했다. 계엄 당일인 지난 3일에는 오후 2시13분 e메일을 통해 영상을 공유했다.
당시 남기수 합동참모본부 공보부실장은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 11월30일 경의선 MDL 이북에 있는 송전탑 수 개가 전도됐다"면서도 "자세한 내용은 유관기관(통일부)에 문의하라"고 언급해 논란을 자초했다. 그간 통일부는 군이나 정보 당국이 파악한 대북 정보에 대해서는 "정보원 노출 우려가 있고, 직접 획득·생산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통일부가 출입 기자단에 해당 영상을 공유하면서 "국방부 제공"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힌 것도 여러 해석을 낳았다.
하지만 실상은 김용현 전 장관이 직접 부탁까지 해가며 통일부로 사실상 공을 넘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 통일부 측은 국방부에 송전탑 관련 영상 공개를 요청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송전탑이 통일부 관리 자산이라는 군의 설명도 궁색한 측면이 있다. 합참은 지난 23일 국방부 출입 기자단을 대상으로 진행한 '최근 북한군 동향' 브리핑에서는 북한의 송전탑 철거 사진 등을 직접 공개했기 때문이다. 대북 대응과 관련해 군보다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적은 통일부를 앞세워 북한의 대남 단절 조치를 부각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그래서 제기된다.
특히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전날 '12·3 비상계엄'의 기획자로 지목된 노상원(육사 41기)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NLL(북방한계선)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표현이 있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용현 전 장관이 북한에 대한 반감 조성을 위해 경위를 자세히 알리지도 않은 채 타 중앙부처까지 이용하려 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원한 국책 연구기관 연구위원은 "군이 전면에 나서 노골적으로 북한을 자극하거나 군사적 옵션을 가동하는 것 자체가 우리 군 시스템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이에 대신 통일부를 앞세워 계엄 분위기 조성을 위해 북한에 적대적인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한 여론몰이를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