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방송 작가 A씨에게 징역 9년과 추징금 26억여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지난달 28일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이씨는 2019년 6월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됐다.
이씨의 오랜 지인이었던 A씨는 "검찰 내부에 인맥이 있으니 무혐의 처분을 받도록 도와주겠다"며 청탁 대가로 이씨에게 16억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A씨는 검사들과 친분이 전혀 없었다. 그해 12월 검찰이 이씨 사건을 무혐의로 처분한 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A씨는 "돈 받은 검사들이 곤란한 상황에 부닥쳐 처분을 번복하려 한다"며 이씨에게 돈을 추가로 요구했다. 그렇게 이씨는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은 뒤 은행 통장과 비밀번호·보안카드를 A씨에게 넘겼다.
이씨는 2년 2개월(26개월)에 걸쳐 총 26억여원과 명품 218점을 건넨 뒤에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A씨를 고소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A씨를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A씨에게 심리적 지배를 당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A씨는 이씨 누나의 친구로 알려졌다.
대법 파기환송…"'불가벌적 사후행위' 법리 오해"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액 가운데 일부는 이씨에게 피해가 이미 발생한 금액을 추후 다른 계좌로 옮긴 것뿐으로 '불가벌적 사후행위'에 해당해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 정확한 피해 규모를 다시 판단하도록 했다. '불가벌적 사후행위'는 먼저 행위로 범행이 완성됐으므로 이후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대법원은 "A씨가 이씨를 속여 대출받도록 했고, 검사에 청탁 또는 알선한다는 대가로 이를 취득해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죄가 이미 성립했다"며 "이미 취득한 대출금을 이씨 다른 계좌를 거쳐 A씨나 다른 명의 계좌로 (일부) 이체했다고 해도 이씨에 대한 법익 침해가 추가되거나 새로운 법익 침해가 생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가로챈 대출금을 이체하는 행위 자체는 이씨 법익을 새로 침해한 것이 아닌 만큼 이에 대한 죄를 추가로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