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요~" 철학 깃든 무술…이소룡, 할리우드 스승이 되다

허진석의 스포츠 라운지

이소룡이 나온 영화 ‘정무문’을 1973년 여름에 서울의 피카디리 극장에서 처음 보았다. 10대 초반의 소년이었던 필자는 친구들과 이소룡 얘기만 하면서 해를 넘겼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훌쩍 날아오른 진진(이소룡의 영화 속 캐릭터)의 정지화면 위로 총성이 자욱하게 번져가던 장면은 꿈속에서도 무수히 반복됐다. ‘아, 모름지기 사나이는 저렇게 죽는 거구나.’

이소룡 “인간의 목표는 생각 아닌 행동”

이소룡의 두 번째 영화 ‘정무문’의 한 장면. 쌍절곤 하나로 상대를 박살내는 장면으로 인기를 모았다. [중앙포토]

이소룡의 두 번째 영화 ‘정무문’의 한 장면. 쌍절곤 하나로 상대를 박살내는 장면으로 인기를 모았다. [중앙포토]

‘당산대형’ ‘맹룡과강’ ‘용쟁호투’ ‘사망유희’ 등 이소룡 영화는 다 보았다. 이소룡의 최종병기 쌍절곤을 익히느라 온몸이 늘 멍투성이였다. 베이비 붐 세대의 끝자락, 우리 세대 누구도 이소룡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시도 때도 없이 이소룡의 그 ‘아비요~!’하는 괴성이 터졌다. 그러기에 이소룡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준 충격은 컸다.

지난 회에 설명했듯 이소룡이 죽은 다음 중국 무술은 쿵푸로 대변되고, 이는 곧 소림사라는 사찰로 직결되었다. 연결고리는 홍콩의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일 것이다. 할리우드의 단역 배우였던 이소룡을 중국의 영웅으로 키워낸 골든 하베스트는 이소룡이 세상을 떠난 뒤 새로운 스타가 필요했다. 이때 스크린에 등장한 젊은 스타가 바로 성룡이다.

성룡은 이소룡과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이소룡처럼 바늘 한 자루 꽂을 곳 없는 궁극의 강자가 아니라 얻어맞아 쓰러지고 피를 흘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기어이 일어서는 오뚝이였고 특유의 유머와 낙천성이 있었다. 그 밑바닥에서 강인한 생명력이 용틀임했다. ‘취권’으로 대표되는 홍콩 무술 영화의 전성시대는 권총을 갈겨대는 새 영웅들이 등장할 때까지 이어졌다.


이소룡의 권법은 소림사와 무관하다. 그의 스승은 엽문이다. 엽문의 무술은 영춘권이다. 영춘권은 빠른 속도와 강한 힘, 간결한 기술로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과 수비를 한다. 시력이 좋지 않은 이소룡이 근접타격기인 영춘권을 선택했다는 주장도 있다. 엽문은 중국 광둥성 포산에서 태어났으나 공산주의 혁명을 피해 1949년 홍콩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생계를 위해 무술을 가르쳤는데 이소룡도 그가 배출한 수많은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특유의 유머 감각과 생명력 있는 캐릭터로 영화팬을 사로잡은 성룡. [중앙포토]

특유의 유머 감각과 생명력 있는 캐릭터로 영화팬을 사로잡은 성룡. [중앙포토]

성룡은 1954년 홍콩에서 요리사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다. 일곱 살 때 경극학교에 들어가 10년 동안 수련했다. 나중에 홍콩 영화를 주름잡는 홍금보, 원표, 원규 등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이들은 출연한 영화에서 뛰어난 액션을 보였지만 연기자들일 뿐 무술가들은 아니다.

경극학원은 단순한 연기학원에 그치지 않는다. 2009년 ‘홍콩, 아동 경극학교’라는 한국방송의 리포트가 잘 설명한다. ‘아이들은 단순히 경극의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고 중국 전통 문화와 역사, 노래를 통해 정확한 중국어 발음을’ 익힌다. 그러기에 한 경극학교 학생의 아버지는 “딸이 경극을 배우길 원한다. 경극은 중국 전통의 가치를 알려주고 좋은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홍콩영화의 한 시대를 부양한 스타들과 그들을 배출한 경극학교. 이곳은 필자가 일하는 국립체육대학교와 흡사한 면이 있다. 한국체대에는 전문(엘리트)체육과정과 일반체육과정이 있다. 전문체육과정은 스포츠과학대학과 스포츠문화예술대학이 맡는다. 인원은 3000명 남짓한 학부생의 30%에 못 미친다. 그래도 전문체육은 학교의 중심(Core)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체육대학에 ‘체육기능학교’가 옹이처럼 박혔다. 체육기능학교는 경기력 향상이라는 유일한 목표에 천착한다. 한국체대가 1977년 학교 문을 열 때 내세운 구호는 ‘국제수준의 우수 선수와 지도자양성, 국민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이었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뒷부분이 공허한 레토릭이라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한국체대는 지난해 10월 15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2024 파리올림픽에서만 메달 14개(금 6개, 은 3개, 동 5개)를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메달 14개는 국가순위로 따지면 15위다. 학교는 메달리스트들을 내세워 기자회견을 열었다. 메달과 국위선양 실적을 강조하며 “전폭적 지원”을 호소했다. 호소는 반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듣기 거북한 반론도 없지 않았다.

“올림픽 메달은 한국체대가 아니라 진천선수촌이 상징하는 한국 엘리트체육의 산물 아닌가.” “임시현이 따낸 양궁메달은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양궁협회의 투자 덕분 아닌가.” 지적이 모두 틀리지는 않다. 대표선수가 된 한국체대 학생은 대부분 학교를 떠나 진천에 가서 훈련한다. 임시현이 학교에서 쏜 화살은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쏜 화살 수의 100분의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체대가 아무 것도 안 하고 슬쩍 ‘숟가락’만 얹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소룡 사후 등장한 젊은 스타가 성룡

스승 엽문에게 영춘권을 사사하고 있는 18살의 젊은 이소룡. [사진 위키백과]

스승 엽문에게 영춘권을 사사하고 있는 18살의 젊은 이소룡. [사진 위키백과]

우리는 안다. 스포츠는 국위선양의 도구가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가의 긍정적 이미지를 끌어올린다. 손흥민과 김연아가 증명하고 있다. 이들의 성과는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이행했다. 스포츠 스타들이 누리는 인기는 BTS나 블랙핑크, 뉴진스 같은 엔터테이너들에 대한 반응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필자는 2021년에 동료교수 4명과 ‘지속가능한 체육특성화대학 미래전략’이라는 과제연구를 수행했다. 스포츠내셔널리즘이 폐기된 현실 속에서 체육학교가 계속 필요한가? 필자의 생각은 ‘영재교육’에 사로잡혔다. 필자가 생각하는 영재교육은 운동 몰입이 아니다. 스포츠 쪽에서는 참고할 사례를 찾기 어려워 해외 예술학교의 교육과정을 많이 살폈다.

미국의 음악학교 줄리아드나 커티스의 교육 목표는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 지식과 이론 습득” “공동체가 당면한 과제를 종합적 시각으로 판단하고 대처할 능력의 배양” “전공 학문 분야를 특화할 방법론 함양” “전문 분야와 관련된 국제적 대응 능력의 향상” 등이다. 이러한 목표는 체육학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가슴 아플 뿐.

우리 학생들은 이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실기 중심의 몰입 교육(훈련)에 적응했다. 대학 강의를 따라갈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들의 지도자들도 같은 길을 걸어왔다. 악순환은 반복된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매학기 목표에 미달한다. 학교에 계절학기, 집중수업, 이동수업 등 다양한 장치가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학생들은 학습을 ‘훈련’한 적이 없으니까.

정말 학교라면, 이들도 대학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 필자는 그들에게 ‘이유식(선행교육과정)’부터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구구단도 못 외는데 미·적분을 어떻게 풀겠는가. 특기생들은 졸업반이 돼도 대개 (필자가 체감하기에) 고등학교 졸업생 수준에 못 미친다. 미국 줄리아드와 커티스의 영재들은 고등학교 과정에서 독서와 토론, 글쓰기를 익힌다. 그들인들 전공에 몰입하지 않을 리 없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스승 이반 갈라미언은 레슨 때마다 “결혼하면 넌 바이올린을 못 한다”고 강조했다. 가스 라이팅이다. 영재들이 요구받는 몰입의 정도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체대의 양심적인 교육자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교육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비롯한다. 새로 임용된 젊은 교수가 한두 해 발버둥 치다 포기하고 연구실로 도망치는 일이 반복된다.

다시 이소룡으로 돌아가자. 엽문에게서 영춘권을 배웠지만 무술이 그가 익힌 지식의 전부는 아니다. 이소룡은 1961년 워싱턴대에 들어가 연극과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 정신의 굳기와 깊이를 확인하고 싶다면 2018년에 나온 『물이 되어라, 친구여』(필로소픽)를 권한다. 이소룡의 일기, 강의노트, 인터뷰, 편지 등에서 뽑아낸 아포리즘 825개를 추렸다.

이소룡의 언어는 그의 무술이 노장사상과 선불교 등 중국정신에 뿌리를 내렸음을 보여준다. 할리우드의 단역배우는 미국의 존경을 받는 스승이 되었다. 1978년 이소룡과 ‘사망유희’에 출연한 농구스타 카림 압둘 자바는 “이소룡에게서 철학과 지혜를 배웠다”고 했다. 배우 스티브 매퀸은 이소룡이 “언제나 인생을 깊이 사유하는 철학자였다”고 회상했다. 이소룡의 한 마디가 심장을 찌른다.

“생각이 아무리 고상할지라도 인간의 목표는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75쪽)

허진석 한국체육대 교수. 스포츠 기자로 30여 년간 경기장 안팎을 누볐으며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지냈다. 2023년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하고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