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차이나 워치] 심상치 않은 중국 군부
시진핑(習近平)은 달랐다. 바로 군부 손보기에 나섰다. 그것도 최고위층을 겨냥해 장쩌민 측근인 두 명의 전직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부패 혐의로 잡았다. 쉬차이허우(徐才厚)는 재판을 앞두고 암으로 사망했고, 궈보슝(郭伯雄)은 종신형에 처해졌다. 시진핑 집권 1~2기 10년간 숙청된 장군 수만 160명에 달하며 이는 1927년 홍군(紅軍) 건군 이래 수많은 전투와 문혁(文革)의 광란 속에 스러진 장군들 숫자보다 더 많다고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렇게 다진 군권을 바탕으로 헌법까지 수정하며 3연임에 성공했다. 한데 그런 중국 군부가 심상치 않다.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숙청 바람이 불고 있다. 시작은 2023년 7월로 당시 중국군 핵 자산의 중심인 로켓군이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로켓군 사령관 리위차오(李玉超)를 필두로 부사령관 류광빈(劉光斌), 전 부사령관 장전중(張振中) 등이 모두 당 중앙군사위 기율감찰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됐다.
해방군보에 ‘집단지도체제’ 글 실려 주목
또 우궈화(吳國華) 전 로켓군 부사령관이 갑작스레 사망했다. 66세. 중국의 한 매체는 병사(病死)라고 했지만, 대만 언론에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도대체 뭐가 로켓군 지휘부를 통째로 날렸나
그러나 로켓군이 무너진 진짜 이유는 기밀 유출로 알려진다. 미 공군대학 산하 중국우주항공연구소가 중국의 20차 당 대회(2022년 10월) 이후 중국 로켓군 관련 보고서를 냈는데 여기에 상당한 고급 정보가 담겨 있었다는 거다. 일반은 알기 어려운 중국의 미사일 발사 시스템 정보를 미국이 확보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게 중국 지도부를 충격에 빠뜨리며 로켓군을 대대적으로 조사하게 된 숨은 배경이란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중국이 국제 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폭 강화된 반(反)간첩법 시행에 들어간 게 2023년 7월부터다. 중국 정부는 과거 간첩 혐의 적용 대상을 국가의 기밀이나 정보를 빼돌린 행위로 국한했는데 이때 법을 개정해 기밀이 아니더라도 국가 안보 및 이익에 관한 것이라 판단될 경우 처벌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시엔 사실 뭐가 국가 안보에 해당하는지 개념 규정조차 없어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데 로켓군 숙청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23년 9월 중순부터 리상푸(李尙福) 국방부장 낙마설이 돌기 시작했다. 중국군 장비개발부는 이보다 두 달 앞선 2023년 7월 말부터 “2017년 10월 이후 발생한 조달 관련 부패 신고를 받는다”는 통지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리상푸 국방부장이 걸려들었다. 부패가 장비와 연결되는 건 너무 쉽다. 리상푸는 중앙군사위 장비발전부장일 때 러시아산 전투기와 미사일 시스템을 구매해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기도 한 인물이다.
무기 구매 담당이었던 리상푸 숙청에 이어 이번엔 사정의 칼날이 중국 방산업체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중국 항천과기그룹과 병기공업그룹, 병기장비그룹의 대표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기 시작했고 중국 언론에선 ‘무를 뽑았더니 흙이 따라온다’는 말로 군수산업의 비리를 질타했다. 중국 미사일엔 연료 대신 맹물이 채워져 있고 원래 미사일 연료는 훠궈(火鍋, 중국식 샤브샤브)를 해먹는 데 썼다는 기막힌 보도가 꼬리를 이었다.
2023년 연말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는 리위차오와 장전중은 물론 장위린(張育林) 국방과학기술대학 교장, 라오원민(饒文敏) 장비발전부 부부장 등 로켓군과 장비조달 라인의 고위 장성 9명을 전인대 대표에서 파면한다고 밝혔다. 숙청 작업은 해가 바뀌어서도 계속돼 연초 시진핑의 친위 세력으로 여겨지던 웨이펑허(魏鳳和) 전 국방부장의 이름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6월 리상푸가 당적에서 제명되고 7월에는 웨이펑의 당적 역시 박탈됐다. 약 1년여에 걸친 대대적인 군 숙청 작업으로 20여 명의 장성이 쓰러졌다. 이는 무얼 의미하나
‘펑리위안 여사 지지’ 둥쥔, 제3세력 부상
중국군 최고 지도부는 당 중앙군사위원회로 모두 6명이다. 주석은 시진핑, 부주석은 장유샤와 허웨이둥(何衛東), 위원은 류전리(劉振立) 연합참모부 참모장, 먀오화(苗華) 정치공작부 주임, 장성민(張升民) 중앙기율위 부서기 등이다. 시진핑 다음 가는 군권을 가진 장유샤와 허웨이둥 두 사람은 중국군 내 각기 다른 파벌을 대표한다. 장유샤와 류전리는 월남전 참전 경험이 있어 월전방(越戰幇)이라는 말을 듣는다.
지난해 8월 장유샤는 방중한 미 국가안보보좌관 설리번을 만났고 10월엔 대표단을 이끌고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모두 만나는 파격적인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1월 말 허웨이둥 세력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으로 사실상 지난 1년여 숙청 작업을 주도해온 먀오화가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중국 국방부가 밝힌 것이다.
먀오화의 혐의는 심각한 기율 위반으로만 알려진다. 장유샤는 부친 장중쉰(張宗遜)이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의 전우로 알려져 있지만, 먀오화 또한 시진핑이 푸젠성 근무 시절부터 연을 맺은 핵심 측근이다. 군 서열 5위인 먀오화 낙마가 허웨이둥 군사위 부주석을 위시한 대해방에 과연 어떤 충격으로 다가올지 관심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9일 중국군의 집단지도체제를 강조하는 글이 해방군보에 발표돼 놀라움을 산다.
중국군은 이제까지 시진핑 1인 체제를 뜻하는 ‘군사위 주석 책임제(軍委主席負責制)’를 강조해왔다. 이는 군 통수권자인 시진핑이 전권을 행사하도록 하게 하자는 논리다. 한데 느닷없이 해방군보가 ‘집단지도를 솔선해 견지하라’는 글을 싣고 “우리 당은 중대한 문제를 개인이 아닌 당 집단이 결정하는 전통이 있다”며 ‘지도자의 분담 책임제(首長分工負責制)’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에 중화권 호사가들은 시진핑의 군내 권력이 약화한 것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을 내놓는다. 장유샤가 실제 중국군 실세가 아니냐는 말도 한다. 그러나 글쎄다. 그보다는 허웨이둥 세력을 이용해 지난 1년간 장유샤를 떠받치는 군내 파벌을 타격한 시진핑이 이제는 반대로 장유샤의 힘을 빌어 허웨이둥 측근에 일격을 가하는 고도의 통치술을 전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군 파벌을 지형으로 볼 경우 장유샤는 산시방(陝西幇)을 대표하고, 허웨이둥은 푸젠성 일대 민장방(閩江幇)의 우두머리다. 최근 중국에선 이에 맞설 제3의 군 세력으로 산둥방(山東幇)이 부상 중이란 말도 있다. 둥쥔(董軍) 국방부장이 그런 인물로 동향 출신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의 지지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군을 틀어쥐는 건 대권 장악과 직결되는 문제로 중국군의 세력 변화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