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尹체포' 경찰 넘기려다 없던 일로…수사혼선만 자초했다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국가수사본부 로비에 관계자 등이 오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날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국가수사본부에 일임하려 했으나 공조수사본부 체제로 함께 집행하기로 다시 정리했다. 뉴스1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국가수사본부 로비에 관계자 등이 오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날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국가수사본부에 일임하려 했으나 공조수사본부 체제로 함께 집행하기로 다시 정리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6일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기려다가 7시간 만에 없던 일로 정리했다. 경찰에 지금은 없어진 표현인 ‘지휘’ 공문을 보내 반발을 샀을 뿐 아니라 영장 집행 하청이란 새로운 법적 논란만 불거졌다. 공수처는 지난달 검·경에 사건이첩 요구권까지 발동하며 윤 대통령을 단독으로 수사하는 체계를 구축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상계엄 수사TF를 구성해 수사에 착수한 이후 지난 한 달 간 아무런 진전 없이 혼선만 거듭하고 있다.

 
공수처와 국수본에 따르면 공수처는 전날 오후 9시쯤 ‘체포영장 및 수색영장 집행 지휘’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국수본의 집행 전문성을 고려해 (체포영장) 집행을 위임함으로써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절차를 도모하기로 했다’는게 주된 내용이었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은 경찰에 일임하고 신병이 확보된 이후의 대면조사만 공수처가 맡겠다는 뜻이었다. 2020년 형사소송법 개정(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의 경찰 수사지휘권이 폐지면서 사라졌던 ‘지휘’ 공문을 밤늦은 시각에 보낸 탓에 국수본은 6일 오전 7시에야 접수했다고 한다.

영장 집행 위임, 경찰 "법률적 논란" 거부 

국수본 측은 내부 검토 끝에 “법률적 논란이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공수처는 ‘구속영장은 검사의 지휘에 의하여 사법경찰관리가 집행한다’는 형사소송법 81조를 체포영장을 일임하는 근거로 들었지만, 관련 옛 시행령인 ‘검사의 사법경찰관리 수사지휘 규정’은 폐지되고 현재 ‘검사와 사법경찰관 상호협력 수사준칙’에선 검사의 영장 집행 지휘가 없어졌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두 기관은 이날 오후 2시쯤 원래의 ‘공조수사본부’ 체제로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집행하기로 정리했다.

  
국수본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공수처와도 통화를 통해 협의했으며 공수처 또한 논란이 있다는 점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말했다. 공수처 관계자도 “자체 법리검토 결과 영장집행 지휘권이 배제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해 공문을 발송한 것”이라면서도 “다만 본건과 같이 중대한 사건의 수사에 작은 논란의 소지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국수본과 의견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공조본체제 하에 잘 협의해 집행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통령경호처의 물리적 저지에 막혀 시한 만료일인 이날 재집행 시도를 포기한 공수처가 집행 책임을 통째로 떠넘기려다가 경찰의 반발에 실패한 셈이다. 국수본 관계자는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주체는 공수처”라며 “기본적으로 체포‧수색영장 집행을 경찰에게 일임하는 건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작부터 꼬인 공수처, '수사 외주화'에 의존 

2021년 출범 후 줄곧 인력 부족과 수사력 부재에 시달려 온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에서도 초기부터 혼란상을 자초했다. 지난달 4일 비상계엄이 해제된 직후 수사TF를 꾸렸으나 검찰과의 중복 수사 등의 문제로 압수수색·구속 영장은 줄줄이 기각됐고, 검찰의 수사협의 요구를 거절하며 차단막을 쳤다. 감정의 골이 깊어졌던 검찰 대신 경찰과 손을 잡고 공조본을 꾸린 뒤엔 검찰의 반발을 무릅쓰고 사건 이첩 요구권을 발동했다.

하지만 정작 공수처는 검·경으로부터 윤 대통령 관련 사건을 이첩받은 뒤에도 수사를 진전시키기 위해 검·경의 지원과 협조에 의존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영장 집행 위임 논란 역시 윤 대통령 체포는 경찰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주요 피의자 수사는 검찰에 맡기며 사실상 비상계엄 사태 수사를 외주화하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6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경찰에 위임한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철회했다. 뉴스1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6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경찰에 위임한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철회했다. 뉴스1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지난 3일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실패와 관련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경호처의) 그 정도 저항은 생각 못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경호처가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200여명의 대규모 인력을 준비시키고 버스·승용차 등으로 진입로를 차단하는 등 만발의 준비를 한 것은 그간 좌고우면하며 시간을 허비한 공수처의 수사 역량 때문이었단 지적이 나온다. 

실제 공수처는 지난달 31일 법원에서 체포·수색 영장이 발부된 뒤에야 영장 집행 시점과 방식을 경찰과 논의하기 시작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 수사를 진행하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성급하게 영장을 청구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 이유다. 또 체포영장 청구 사실과 영장 발부 결과·사유, 영장 집행 사실까지 고스란히 공개하며 수사의 밀행성이라는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사흘간의 침묵 끝에 지난 3일 체포영장을 집행했는데, 이마저도 공수처 검사·수사관들이 정부 과천청사를 출발해 대통령 관저에 도착하는 장면까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며 수사 동향이 노출됐다. 

"공수처, 수사 의지 의심되는 무능함" 

백동흠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부단장이 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지휘 공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백동흠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부단장이 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지휘 공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수본은 “공조본 체계를 공고하게 유지하겠다”며 공수처와의 협력 아래 체포영장을 재집행하겠단 뜻을 밝혔지만 이번 사태가 공조본 체제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3일 첫 번째 체포영장 집행 당시 국수본과 공수처는 박종준 경호처장 등 경호처 수뇌부 체포를 두고 이견을 보인 데 이어 수사 절차와 과정을 둘러싼 잡음은 상호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 차장급 검사는 “공수처가 무리한 법 해석 및 실무에 안 맞는 판단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이번 공문 발송 건으로 인해서 전과 같은 경찰의 신뢰를 받긴 어려워 보인다”고 짚었다.

특히 경찰은 이날 체포영장 시한(이날 자정)이 하루가 넘게 남은 전날 오후 재집행 노력 대신 영장 집행 책임을 떠넘기는 ‘꼼수’를 고안한 데 대해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경찰 내부에선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주체가 한 번 집행을 시도해봤다가 안 되니 다른 기관에 통째로 대신 하라고 떠넘기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불만도 나온다. 한 국수본 관계자는 “공수처가 수사 의지가 의심되는 무능함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자중지란을 자초한 면이 있다”고 했다. 전직 고위 검찰 간부는 “헌정사 초유의 현직 대통령 내란죄 체포영장을 발부받고는 제대로 집행 시도조차 안 한 채 기간 만료로 영장을 법원에 반납하는 일 자체가 국민적 비판을 받을 일”이라고 말했다.  

"영장 재집행시 현행범 체포도 검토"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만료일인 6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오동운 공수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만료일인 6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오동운 공수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한편 국수본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다시 나설 경우 대통령경호처 관계자가 집행을 방해하면 적극적으로 체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박 처장과 김성훈 차장 등 4명의 경호처 관계자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돼있다. 이들 모두 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국수본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총 49명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대통령실‧당정 관계자 25명, 군(軍) 관계자 19명, 경찰 5명이다. 아울러 국수본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55경비단 병사들이 지난 3일 체포영장 집행 당시 동원된 정황을 확인해 수사하고 있다. 국수본은 55경비단과 더불어 수방사 33군사경찰경호대가 동원됐다는 정황도 파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