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천하…"당신 헤일리 찍었지" 하원의장 반란도 직접 진압

오는 20일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정권 교체를 앞두고 기세등등한 모습이다. 정치적 시험대였던 하원의장 선거에선 트럼프 당선인이 반란파에게 직접 전화 걸어 결국 자기 사람을 앉히는 '카리스마'를 보였다. 대선 승리 후에는 기업 등이 트럼프에게 약 3000억원을 후원해 곳간마저 두둑해졌다. 정·재계가 트럼프에 압도된 가운데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이 4년 전 일으킨 의사당 폭력 점거가 마치 없던 일로 여겨질 정도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오는 20일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로이터=연합뉴스

오는 20일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로이터=연합뉴스

 

더힐 "트럼프, 낙선 위기였던 하원 의장선거 개입"   

 
트럼프의 의회 장악력이 시험에 오른 첫 사례는 하원의장 선출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낙선 위기에 몰린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의 재선 과정에 직접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4일(현지시간) 의회 전문 매체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는 전날 하원의장 투표에서 존슨 의장이 과반인 218표에 못 미치는 216표를 얻어 낙선 위기에 몰리자 반대투표를 한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반대 의사를 철회하게 압력을 가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가운데)은 “하원 공화당원들은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즉시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가운데)은 “하원 공화당원들은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즉시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반대 의사를 표한 이는 토마스 매시(켄터키), 랠프 노먼(사우스캐롤라이나), 키스 셀프(텍사스) 등 3명이었다. 트럼프는 이들 중 노먼 의원과 셀프 의원 등 2명에게 전화를 했다. 이들은 표결 종결 선언 직전 ‘존슨 지지’로 번복했고, 존슨은 218명 찬성으로 겨우 당선됐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노먼에게 “당신, 니키 헤일리를 찍었지”라고 했다. 골프를 즐기던 트럼프가 노먼에게 전화할 정도로 당시 상황은 긴박했다. 압박을 받은 노먼은 결국 존슨을 지지한다며 1차 표결 결과를 뒤집었다. 자기 뜻대로 존슨이 당선되자 트럼프는 SNS에 “전례 없는 신뢰의 투표였다”고 했고, 존슨은 “트럼프는 가장 강력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WP는 "그만큼 존슨 의장이 자신의 권력을 전적으로 트럼프에 의지하고 있단 것"이라며 "존슨의 힘이 얼마나 취약한지 확인한 결과"라고 평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지지자들이 일으킨 1·6 의회 폭동 4주기가 됐지만, 마치 일어난 적도 없는 일처럼 됐다"고 AP통신이 5일 전했다. 폭동 사실을 알 수 있는 어떤 전시물도 없다. AP는 "공화당 의원 대부분은 트럼프 주장대로 폭도들이 오히려 피해자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죄 판결을 받은 폭도 1250명도 사면될 전망이다. 민주당 소속 피터 웰치 상원의원은 "1·6폭동이 지워졌다"고 개탄했다.  

대선에서 패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6일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공식 선언하게 됐다고 WP가 전했다. 미국 헌법에 따라 연방의회 상원의장을 맡는 부통령이 회의를 주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WP는 "해리스가 고통스러운 역할을 맡았다"고 전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의회 점거 당시 음모론 단체 큐어넌의 활동가들이 의사당에 진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의회 점거 당시 음모론 단체 큐어넌의 활동가들이 의사당에 진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NYT "기부금 2억 달러 모여"

 
4년전 트럼프의 극성 지지자들이 의회 의사당을 폭력 점거했을 때만 해도 여러 기업이 "앞으로 트럼프에 정치적 기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번 대선 승리 이후 기업들은 앞다퉈 기부에 나서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지난 두 달여간 트럼프의 취임식과 정치 운영, 대통령 도서관 등에 쓰일 기부금 2억 달러(약 2944억원) 이상이 몰렸다. 이 중 취임식 지원 위원회에 모인 기부금은 1억 5000만 달러(약 2200억원)였다. 지난 2017년 트럼프 1기 취임식 당시(1억700만 달러·약 1575억원)를 이미 넘어선 금액이다. 

포드자동차와 토요타자동차, 미국의약연구제조업협회(PhRMA) 등이 각각 100만 달러(14억7000만원)를 기부했다. 골드만삭스·제너럴모터스(GM)·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도 기부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도 트럼프 취임위원회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거나 기부를 약속했다. 한국 현대차·SK그룹 등 트럼프표 관세로 인해 영향받는 기업을 대리하는 로비회사 차트웰 스트래티지는 취임식 기부금으로 300만 달러(약 44억원) 이상을 모았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관련 만평 거부당하자 작가 사직 

 
베이조스가 사주로 있는 워싱턴포스트(WP)에선 트럼프 관련 만평이 지면에 실리지 않자 작가가 사직한 일도 있었다. 4일 AP통신에 따르면 WP 만평 작가인 앤 텔네이스는 SNS에 "베이조스를 풍자한 만평이 부당하게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만평에는 베이조스, 저커버그, 올트먼 등이 트럼프 동상 앞에 무릎 꿇고 돈이 든 가방을 바치는 장면이 담겼다. 이들이 최근 트럼프 취임식 준비에 각각 100만 달러를 기부한 걸 비판한 것이다. 디즈니가 소유한 ABC 방송이 트럼프에게 합의금 1500만 달러(약 215억원)를 주고 명예훼손 소송을 종결한 걸 비꼬는 의미로 미키마우스가 엎드린 모습도 담겼다.

워싱턴포스트 만평 작가인 앤 텔네이스는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를 풍자한 만평이 부당하게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 작가 홈페이지

워싱턴포스트 만평 작가인 앤 텔네이스는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를 풍자한 만평이 부당하게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 작가 홈페이지

 
퓰리처상 수상자인 텔네이스는 "억만장자들이 차기 대통령에게 아첨하는 것을 비판했다"면서 "내 만평은 지금껏 '킬' 당한 적이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는 언론 자유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난 WP에서 사직하기로 했다"며 "고작 만평 작가인 내가 얼마나 큰 반향을 줄지 모르지만, 진실에 힘을 싣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WP 사훈인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는 말도 인용했다. 다만 WP 측은 "이미 같은 내용의 칼럼이 실린 데다 다른 비슷한 칼럼도 예정돼 있어 중복을 피하려고 만평을 싣지 않았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