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빼면 탄핵소추 무효? "붙든 안붙든 헌재가 판단할 일" [팩트체크]

국회 탄핵소추단이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혐의 중 형법상 내란죄 부분을 제외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탄핵소추 의결서 내용을 바꾸는 것이니 국회의 의결을 새로 받아야 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정치적 의도도 문제지만 법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도 논쟁거리다. 양측의 주장을 따져봤다.

 

①국회의 탄핵소추 사유, ‘내란’ 빼면 무효? (X)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국회 측은 당초 탄핵소추안에 크게 두 가지 탄핵사유를 들었다.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실체적‧절차적 요건 위반)’ ‘내란(우두머리)에 해당하는 국헌문란행위’라는 것이다. 국회 측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가 애초에 국가비상사태 등 선포 요건을 갖추지도 못했고 선포 과정에서 국무회의 등 절차적 요건도 미비했다는 점을 우선 지적했다. 또 계엄 선포 이후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장악하는 등 일련의 물리적 행위들이 내란‧직권남용권리행사‧특수공무집행방해라며 삼권분립의 원칙을 비롯한 헌법‧법률 위반도 주장했다.

1차 변론준비기일에 수명재판관 2인은 국회 측의 탄핵소추 사유를 시간대별, 행위별로 분류해 쟁점을 총 4가지로 새로 정리하면서 당초 소추안의 분류는 의미가 없게 됐다. 4개 쟁점 모두 헌법‧계엄법 위반이고, 그중 일부는 추가로 내란‧직권남용‧특수공무집행방해죄 등 형법 위반에도 해당한다는 취지로 정리됐다. 이후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국회 측이 ‘법관 체포 지시’도 별도의 탄핵소추 사유가 되는 행위로 추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형법상 내란죄 부분을 빼고 소추 사유를 다시 정리하는 경우 국회 의결을 다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헌재는 “재판부 판단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과거에도 탄핵소추 당사자가 소추 사유 변동을 이유로 국회 재의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례가 있었지만, 실제 헌재가 국회에 재의결을 요구한 전례는 없었다.


 

②행위는 같은데 ‘형법’ 빼고 ‘헌법’만 남길 수 있나 (O)

국회 측은 1차 변론기일부터 “헌법재판 성격에 맞게 다시 정리하겠다”고 했다. 이후 2차 변론기일에 “내란죄 등 형법 위반 사항을 빼겠다”고 했고 윤 대통령 측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는 탄핵심판에서, 공소장 변경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재판부가 초기에 쟁점을 새로 정리하는데, 이는 헌법재판 과정에서 당연히 거치는 절차일 뿐, 탄핵심판에 본질적으로 영향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때에도 뇌물‧강요 등 형법상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위헌 여부만 밝히겠다며 탄핵소추 이유를 정리한 바 있다. 소추 사유를 일부 재정리하든 안 하든, 헌법 위반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다.

헌법연구관 출신 헌법학 교수는 “탄핵심판의 대상은 ‘행위’고, 탄핵사유가 된 행위는 변하지 않았다면 형사상 내란죄가 추가로 붙든 안 붙든 그건 법원에서 판단할 쟁점이지 탄핵심판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③내란 빼면 소추 사유 주는데…尹은 왜 반발하나

소추 사유가 줄면 일견 윤 대통령 쪽에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측은 국회 재의결 및 탄핵소추 절차 미비 등을 주장하는 등 쟁점이 줄어드는 걸 반기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탄핵심리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더 걱정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탄핵심판은 단심제고, 그 효과를 고려할 때 신속보다 정확한 재판을 해야 한다”며 “헌법재판소법이 정하는 ‘180일’ 규정은 지나치게 재판을 오래 끌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졸속으로 끝내서도 안 된다는 권고 기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내란죄 등 법률 위반 행위를 소추 사유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은 신청인(국회) 측에 더 큰 부담이다. 탄핵 결정은 ▶공직자가 위헌·위법적인 행동을 했는지와 ▶그 행위의 정도가 직에서 파면할 정도로 중한지, 두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위헌·위법성은 행위가 이미 발생한 이상 재판부가 가리면 된다. 그러나 그 행위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여러 정황 증거가 필요하다. 명백한 내란죄 위반 정황들은 이 심증을 굳히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 측이 이를 배제하겠다는 것은 비상계엄 발령 단계의 위헌·위법성만으로도 충분히 탄핵을 도출해낼 자신이 있다는 의미지만, 속내는 재판이 지연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헌법학)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내란죄 수괴·공범이라 해서 탄핵소추와 고발을 잔뜩 해놓고 이제 와서 뒤집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결국 탄핵심판을 이재명 대표 재판보다 먼저 끝내기 위해 내란을 뺀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④또 ‘식물’ 될라… ‘주 2회’ 속도 내는 헌재 시계

윤 대통령 탄핵 사건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소추사유보다 훨씬 단순해 심리가 빨리 끝날 것으로 당초 많은 사람이 예상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에서 서류 송달 및 변호인 선임 등 사소한 절차에서 조금씩 시간을 끌며 당초 예상보다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헌재는 4월 18일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퇴임 시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 재판관이기 때문이다. 국회 추천 몫의 재판관 임명을 놓고도 정당성 논란이 심했는데, 권한대행의 대행인 부총리가 다시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때까지 결정하지 못할 경우 헌재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전체가 ‘식물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4월 18일 전에 대통령의 불확실한 지위가 해소돼야 한다는 점을 상당히 의식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헌법재판소는 지난 3일 변론준비기일을 마치며 오는 14일과 16일을 변론기일로 지정했다. 이후 2월 초까지 주 2회꼴로 추가로 3회 기일을 더 지정해, 총 다섯 번의 변론기일을 잡아둔 상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건 때도 이와 유사하게 주 2회 이상 심판정을 열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12월에 변론준비기일 3회를 마쳤고, 이듬해 1월 3일 첫 변론기일을 시작으로 내내 주 2~3회 재판을 했다. 당시엔 특검 수사도 동시에 진행되던 와중이었다. 2월 27일 마지막 17회차 변론기일을 마치고 11일 뒤인 3월 10일 선고기일을 열었다. 3월 13일 이정미 재판관 퇴임 단 3일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