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기획재정부는 올해 상반기가 정국 불안을 해소하고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golden time)인 것으로 보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정국 불안이 올 하반기까지 이어지면 국제 신용평가 3사(S&P·무디스·피치)가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어서다. 피치 측은 지난달 2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장기화할 경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정계선·조한창 헌법재판관 후보를 임명한 배경에도 국가 신용등급 하락 우려가 자리잡았다는 분석이 많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6인 체제에서 8인 체제로 바뀌었고, 앞으로 재판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기재부는 경기 부양 의지도 적극 밝히고 있다. 둔화하는 경제 성장률이 국가신용등급을 끌어내릴 수 있어서다. 경기가 침체하면 세수가 줄고 한국에 대한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정부의 채무 상환 능력 저하→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재부는 지난 2일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85조원 수준의 민생·경기 사업 70%를 상반기에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 1분기 중 추가적인 경기 보강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다만 이런 확장 정책은 나랏빚을 늘려 정부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부를 수 있다. 이는 국가신용등급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SF평가본부장은 “정부가 올해 재정 지출을 확대하려 하는데,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 비율의 상승 기울기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올해 연말쯤 걱정스러운 수치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국가신용등급 하방 압력을 높인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지난달 30일 2025년도 국고채 발행 한도로 197조6000억원을 확정했다. 지난해 발행량(158조4000억원)보다 25%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만일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면 더 늘어날 수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고심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재정 지출을 확대함과 동시에 재정 건전성 악화를 완화하기 위해 감세(조세지출) 정책 기조를 철회할지 검토하는 등의 세수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재부가 깊은 고민에 빠진 이유는 국가신용등급이 한번 하락하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해서다. 국제 신평사들은 투자자로부터 소송을 당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등급을 상향하는 데 보수적인 성향을 띠기 때문이다. 등급이 떨어진 국가에 대해 ‘낙인효과’가 작용하는 면도 있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한번 찍힌 학생은 이후 아무리 생활을 잘해도 신뢰를 회복하기 힘든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미 한국은 떨어진 신용등급을 올리느라 오랜 기간 고생한 경험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국가신용등급(이하 S&P 발표 기준)이 순차적으로 AA-에서 B+로 10단계 급락했다. 이후 4년 만인 2001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를 졸업했지만, 14년 더 지난 2015년이 돼서야 신용등급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AA-)으로 회복했다. 2016년엔 1단계 더 올라 AA등급이 됐고 현재까지 이어졌다. 해외 주요 국가 중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마저도 2011년 AAA에서 AA+로 1단계 떨어진 신용등급을 14년 뒤인 현재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