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컨퍼런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미 해군 군함 건조에 동맹국을 활용할 거라고 언급하면서 한국 조선업계를 바라보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데 이어 두 번째 러브콜이다.
6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인은 보수 성향 ‘휴 휴잇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 해군 재건과 관련한 질문에 “우리는 배가 필요하다”며 “모두 ‘우리가 직접 만들자’고 말하지만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 입찰을 맡겨야 할 수도 있다”며 “준비가 될 때까지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조선소가 낙후하고 기술력이 부족한 만큼 동맹국을 활용해 필요한 군함 건조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조선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의 산업 중에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 수혜를 기대하는 업종이 거의 없는데, 조선만은 예외적으로 협력 요청을 받는 상황”이라며 “선박 유지·정비·보수사업을 시작으로 함정 건조까지 확장될 방산 협력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주식시장도 바로 반응했다. 조선주와 조선기자재주는 급등했다. 한화오션은 전일 대비 12.60% 오른 4만2900원을 기록하며 52주 신고가로 장을 마감했다. HD현대중공업은 전일 대비 0.70% 올랐다.
한화오션이 미국 해군 함정 두번째 MRO 사업으로 수주한 ‘USNS YUKON’함. 사진 한화오션
통상 함정 한 척의 수명은 30년 이상이다. 이 기간에 최소 5~10년 주기로 정기적인 유지 보수를 해야 한다. 미국은 해군력 유지를 위해 막대한 자원을 지속해서 MRO(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유지,보수,정비) 사업에 투자하는데, 연간 약 20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단, 보안 유지가 필수적이다. 단순 청소 정도가 아니라 배를 분해해 부품을 깨끗이 하고 다시 조립하는 등 MRO 과정에서 기밀이나 전력이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도 필리핀·일본 같은 미국의 우방국이 MRO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시장에 한국도 참여할 길이 열린 것”이라며 “동맹을 돈독히 하고, 신시장도 개척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조선업체들은 미국 해군 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 협약(MSRA)을 체결하고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을 시작했다. 한화오션이 8월 MRO 수주한 미 해군 군수지원함인 ‘월리 쉬라’와 11월 수주한 7함대 배속 급유함 ‘유콘(USNS YUKON)’은 현재 거제조선소에서 정비 중이다. 두 척 모두 상반기 내에 정비를 마치고 미 해군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를 미 해군 함정 건조 사업의 중요 거점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필리조선소는 미국 동부 연안 해군 기지 3곳과도 인접해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사진은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 조선소 전경. 연합뉴스
HD현대중공업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미 해군 선박 MRO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지난해까지는 MRO를 수주하더라도, 이를 정비할 수 있는 도크가 부족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지난해 11월 정조대왕함을 한국 해군에 인도하는 등 도크 사정이 나아진 만큼 올해는 미국 MRO 사업에 본격 착수한다.
다만 한국 조선업체들이 미국 해군의 배를 정비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함정 건조까지 수주하려면 보다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과 한·미 정부간 협력이 필요하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국 번스-톨리프슨 수정법에 따라 미 해군 함정 건조는 해외 조선소에서 만들 수 없게 돼 있다”며 “미국에서 이 법이 완화되지 않는 한 국내에서 미국 함정을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