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처장의 사퇴로 경호처는 김성훈 차장이 처장 대행을 맡게 됐다. 경호처 공채 출신인 김 차장과, 그다음 서열인 이광우 경호본부장은 경호처 내 대표적인 강경파로 분류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때부터 윤 대통령 부부를 보좌해 사이도 각별하다고 한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MBC라디오에서 “이 본부장이 박 전 처장을 패싱하고 체포영장 집행에 대비해 ‘케이블타이 400개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경호처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지난 9월 임명된 박 전 처장은 김성훈·이광우 등과 달리 윤 대통령과의 과거 인연이 거의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박 전 처장은 지난 3일 공수처와 경찰의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에도 관저의 문을 열어주지 않고, 5일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위법 논란이 있는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밝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끊임없이 중재를 요청했다고 한다.
박 전 처장의 이날 입장은 같은 날 “불법 체포 영장의 집행을 거부하고, 군사상 비밀 장소에 대한 수색을 거부하는 것은 법치주의와 법률에 근거한 당연한 조치”라고 밝혔던 윤 대통령 변호인단의 강경한 태도와도 결이 달랐다. 변호인단은 입장문에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법 체포를 통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 진정 내란”이라고도 주장했다.
여권 내부에선 박 전 처장이 경호처 인사쇄신 등 내부 개혁을 준비해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측근 등이 윤 대통령 부부와의 인연을 과시하거나 내부 전횡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들에 대한 인사 조치를 하려 했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계엄이 아니었다면, 경호처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처장의 사퇴로 경호처 지휘부가 강경 일변도 인사들로 채워지며, 수사기관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경호처 관계자는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는 경호처 입장은 일관된다”며 “경호처 내 갈등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여권 관계자는 “경호처 내부에도 직원들은 다쳐선 안 된다는 의견이 상당수”라며 “유혈 충돌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처장 대행이 된 김성훈 차장과 이광우 본부장 모두 현재까지 경찰의 두 차례 출석 요청에 불응했다. 경찰은 김 차장에게 11일 10시를 지정해 세번째 출석 요구를 한 상태다. 정치권에선 “오늘 김 차장이 소환에 응할지 여부가 향후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에 대한 경호처 대응 양상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민주당 보좌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