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나훈아가 혼란스러운 정국에 일침을 가했다. 1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 무대에서다. 그는 햇수로 59년의 가수 인생 마침표를 찍는 자리에서도 불안한 민생을 걱정하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나훈아가 가장 강조한 세 가지는 국방, 경제, 출산율이다. 그는 “우리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져도 안 이상한 대한민국에서 군인들이 전부 잽히들어가고, 어떤 군인은 찔찔 울고 앉았고 이것들한테 우리 생명을 맡긴다는 게 웃기지 않나”라며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또 “언론이 이런 걸 생중계하면 안 된다. 이걸 제일 좋아하는 건 북쪽의 김정은”이라며 “국방에 대한 문제를 정치하는 분들이 이야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 모인 약 1만 명의 관객들은 “반은 국방을 신경 써야 하고, 또 반은 우리가 먹고 사는 경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 둘 다 어디로 다 가뿌리고…”라는 나훈아의 말에 박수를 치며 공감했다.
나훈아는 “이거 정말 중요한 이야기”라며 중앙일보의 인구감소 기사를 스크린에 띄웠다. 그러면서 “이런 것이 현실이고 당장 밤새서 의논하고 안건을 내놓아야 할 문제다. 언론은 정신을 차려서 자살율을 낮출 수 있는 기획을 해서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출산율을 위해선 “애들이 애를 안 낳는다고 하니, 우리라도 애를 낳아야 한다”는 농담으로 웃음을 유발했다. 70대의 나훈아는 민소매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청춘을 돌려다오’를 열창하며 무대를 한바탕 뛰어다닌 후, 청춘을 붙잡는 비결을 공개했다. “아직도 신문 보고 책을 볼 때 안경을 안 쓴다. 음악을 가까이 해야 한다. 잡생각이 사라지면서 스트레스 예방이 된다”며 자신의 주름 없는 손과 탱탱한 얼굴 피부를 카메라 가까이에서 자랑했다.
청춘 나훈아의 면모는 약 3시간에 달하는 공연 전반에서 느낄 수 있었다. ‘기장 갈매기’를 부를 땐 뮤직비디오 속 액션 장면을 퍼포먼스로 보여줬고, ‘체인지’를 부를 땐 K팝 아이돌처럼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한 채 댄스에 집중한 무대로 시선을 끌었다. 통기타 연주와 함께 들려준 ‘무시로’, 10초 이상 음을 뱉으며 엄청난 폐활량을 자랑한 ‘영영’, 가슴까지 마이크를 내려 고음을 뽑아낸 ‘아름다운 이별’ 등 무대마다 색다른 매력을 꺼냈다.
특히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등근육을 드러내 팬들의 함성을 자아냈다. 이날 나훈아가 입은 무대의상은 오프닝곡 ‘고향역’에서의 흰 옷, 정치인들에 일침을 가하며 부른 노래 ‘공’에서의 한복 스타일을 포함해 10벌 이상이다. 나훈아는 “지방에서까지 와주신 분들이 있어 눈 요기라도 하라고 옷을 여러 번 갈아입었다. 자식들이 컴퓨터 앞에서 힘들게 구한 티켓으로 온 것을 다 알기에, 그 값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 공연은 첫 날 10일에 이어 11일과 12일 하루에 2회씩, 총 5회차로 마련됐다. 지난해 4월 인천을 시작으로 광주, 울산, 대구, 부산 등 14개 도시를 돌고 서울서 진짜 마무리되는 나훈아의 은퇴 공연이다. 나훈아는 지난해 2월 자필 편지를 통해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일산에서 온 60대 부부 권현숙, 안문노 씨는 “체력도 대단하고 음악도 다양해서 아직 더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작별이라니 아쉽고 서운하다. 요즘 TV에 젊은 트로트가수만 많이 나와서 전설적인 가수들의 활동이 귀해지는 느낌인데, 나훈아 따라서 다른 가수들도 은퇴를 생각하는 것 아닐까 걱정된다”고 중앙일보에 전했다.
무대에서 나훈아는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결심이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이다. (관객석에서 ‘아니에요’가 나오자) 아니긴 뭐가 아니냐. 내 공연은 보시다시피 힘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가 없다. 나도 후배들 몇 명 데려와서 쉬었다가 나오면 편한데, 여러분들은 나를 보러온 것 아니냐”면서 “스타로서 구름 위를 걸으며 살았는데 앞으로는 땅에서 걸으면서 살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연습하면서 스태프들 사이에서 슬픈 기운이 감돌았는데, 나는 꾹 참고 절대 울지 않겠다”며 드론에 마이크를 걸어 떠나보낼 땐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