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연간 관리재정수지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00조원 안팎의 적자를 이어가면서, 누적 적자는 500조원가량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직전 10년간(2010년~2019년) 적자 규모(239조원)를 훌쩍 넘는다. 지출 증가와 수입 감소가 맞물린 결과다. 2020~2022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돌발 변수 탓에 지출이 급증했다.
2023년부터는 세수 감소가 적자의 주요 원인이었다. 지난해 11월까지 국세수입은 315조7000억원으로 전년대비 약 2.6% 줄었는데, 법인세수가 17조8000억원이나 감소(23%)한 영향이 컸다. 반도체 경기 부진과 수출 침체의 여파다. 이런 추세는 최근 3년간 이어지고 있다.
적자가 쌓이면 빚을 낼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 채무는 2019년 말 699조원에서 지난해 11월 1159조5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전년 말(1092조5000억원)과 비교하면 67조원 늘었다. 이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2019년까지 30%대를 나타내다 2023년 말 50.7%로 뛰었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5월 출범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제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빠지는 속도를 완화했을 뿐 악화 추세를 되돌리진 못했다.
물론 현재 부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74.7%)보다 낮다. 그러나 미국(118.7%)이나 일본(249.7%) 등 기축통화국을 제외하고 보면 선진국으로 구분되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더 심각한 건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부채비율을 낮추는 흐름인데, 한국은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 증가 폭(%포인트)은 비교 가능한 통계가 있는 OECD 비기축통화국 31개국 가운데 3위다.
이런 악화 흐름은 올해도 이어질 수 있다. 지난 9일 첫발을 뗀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선 본격적으로 추경 여부를 논의할 전망이다. 정국 불안이 경기를 끌어내리는 게 추경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와 별도로 경제성장률 둔화에 따라 재정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난해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 하반기에도 정치일정에 따라 추경 편성 가능성이 크다(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관측이 나온다. 김 교수는 “만약 올 상반기에 탄핵이 확정되면 2개월 안에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럼 차기 정부가 바로 추경에 나설 수 있다”며 “과거 사례들에 근거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는 모두 취임 첫해에 추경을 편성하고 국회를 통과했다. 새 정부 정책 기조를 뒷받침할 목적이다.
중장기적으로 나라 곳간을 비울 일은 쌓여 있다. 무엇보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복지 비용 급증세가 재정 건전성 악화를 부채질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9일 발간한 ‘재정포럼 12월호’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은 지난해 15.5%에서 2035년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28%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전문가들은 “재정 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낭비 요인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최소한의 재정 건전성을 담보할 재정준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 나온다. 재정준칙 마련 요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부터 나왔지만, 번번이 좌초됐다. 박근혜 정부 때는 국정농단 사건 탓에, 문재인 정부 때는 코로나19 대응으로 재정을 투입하던 때라 동력을 얻지 못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지난해 11월 여당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재정준칙의 법제화라는 제도적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지만, 2주 뒤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며 힘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