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친러 지역 일부러 가스 끊는다"…푸틴의 기묘한 셈법

몰도바 에너지 위기로 램프를 켜고 있는 몰도바인. AP=연합뉴스.

몰도바 에너지 위기로 램프를 켜고 있는 몰도바인. AP=연합뉴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동부 유럽 국가 간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이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하는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을 올해 1월1일부터 잠그면서다.  

서유럽 국가들은 이전부터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등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중단에 대처할 수 있었지만,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중‧동유럽 국가들의 타격이 현실화하고 있다. 가장 몸이 달아 있는 나라는 우크라이나 서쪽 내륙국인 슬로바키아다. 액화천연가스(LNG)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러시아산 파이프라인가스(PNG) 공급 중단으로 가스 가격이 상승하자,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바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복을 선언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던 비상전력 공급을 끊고, 난민 지원도 중단하겠다”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버티기로 일관하자, 결국 피초 총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가스 운송에 대해서 얘기하자”고 젤렌스키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젤렌스키가 “금요일(17일)에 키이우로 오라”고 역제안을 하는 등 두 나라 간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은 “피초 총리는 유럽에서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를 선전한 인물”이라며 그를 기피하고 있다. 

서방 언론에선 두 나라의 천연가스 대립을 심각하게 보진 않는다. “슬로바키아는 가스 부족이 아닌 (에너지) 비용 증가를 맞은 것”(로이터)이라며 슬로바키아가 절체절명의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슬로바키아보다 더 긴장하는 나라는 몰도바다. 천연가스 사용량 중 90%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몰도바는 우크라이나가 가스관을 잠그기 전부터 러시아의 위협에 시달렸다. 친서방 노선인 몰도바 정권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사실상 외교 무기화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유럽의 지원이다. CNN은 "몰도바는 유럽을 통해 에너지 공급을 대체해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다"고 전했다. 


문제는 몰도바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가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몰도바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끼인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1년 몰도바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사실상 러시아의 위성국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국제사회나 몰도바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현재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난방 연료가 없어 나무 땔감까지 등장했다. 하루에 8시간씩 계획정전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서방 언론은 친러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을 고통받게 하는 게 러시아의 셈법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야 몰도바의 정치·경제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 CNN은 “러시아는 튀르키예를 경유하는 방법으로 친러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민들이 (에너지 위기를 피해) 몰도바로 넘어가게 되고, 몰도바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을 노리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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