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 문맹 벗어나야 농작물의 정치화 막는다" [안혜리의 직격인터뷰]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 인터뷰

지난 8일 서울 중앙일보에서 농업 정책 전문가인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만났다. 김현동 기자

지난 8일 서울 중앙일보에서 농업 정책 전문가인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만났다. 김현동 기자

재밌는 책을 봤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이주량(53) 선임연구위원의『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다. 지난해는 금 사과 논란이나 배춧값 폭등 같은 농작물 이슈가 많았고, 특히 연말엔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농업 4법을 둘러싼 여·야·정 힘겨루기로 혼란스러웠다. 연초엔 거부권 행사 후 대통령실로 진격하겠다고 트랙터 몰고 온 농민들의 남태령 시위로 또 시끄러웠다. 이런 이슈를 어쩔 수 없이 따라가면서도 "골치 아프다"는 편견 탓인지 농업 자체에 특별한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이 책을 펼쳤다가 단숨에 읽었다. 도입부의 '농업 문맹'이라는 생경한 표현에 이끌리다 '곡물 엘리베이터'(곡물 수출입 핵심 시설, 선박 등 운송 수단에 실을 때마다 승강기처럼 들어 올린다고 해서 붙은 명칭) 같은 산지의 핵심 물류 체인을 확보 못 해 필요 식량 75%를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에 수입해야 하는 우리의 구조적 문제와 사실상 전무한 트레이딩 실력까지 알게 됐다. 전 세계 곡물 교역 80%를 과점한 4대 곡물 메이저 기업(ABCD)의 미 CIA를 능가하는 정보력이나 일본 에도 시대 오사카에 등장한 세계 최초 쌀 선물 시장, 중국 후베이 성에 있는 세계 유일의 26층 돼지 아파트 등 교양을 키워주는 정보도 흥미로웠다. 

필요 식량 75% 비싼 값에 사와
농업에 무지, 장기 투자 못 한 탓
'정치재' 쌀·사과 정치에 휘둘려
농업 모르면 세금 낭비 못 막아
이 위원이 농업이라는 딱딱한 전문 분야를 대중적 눈높이로 말랑하게 쓴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8일 만난 그는 4시간 동안 "아무 노력 없이 현재 식량 상황이 유지될 거라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또 "심각한 '농업 문맹'에서 벗어나야 정치권이 함부로 농작물을 정치화해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지 못한다, 그래야 세금 낭비가 없다"고도 했다. 

서울농대 식품공학과를 나온 이 위원은 성적 맞춰 들어간 이 과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땐 농업의 가치를 잘 몰라 삼성물산·LG CNS·현대경제연구원 등 3개 대기업을 옮기며 어떻게든 다른 분야로 도망 다녔다. 그렇게 10년 넘게 외도한 뒤 결국 운명처럼 끌려 농업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농업 문맹'이 뭔가. 
말 그대로 농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농업은 산업인 동시에 기반이다. 일부는 시장, 일부는 정책(세금)으로 풀어야 한다. 농업 종사자가 아닌데 그걸 왜 알아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그걸 모르면 엉뚱한 사회적 합의를 하느라 온 나라가 에너지를 낭비하고 갈등만 커진다. 가령 국내 생산 기반이 없으면 수입 의존도가 높아져 국제 정세나 무역 관계 변화에 매우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농업을 제조업 같은 시장 논리로만 생각하는 일부는 농산물 100% 수입을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론 정책 효과가 별로 없는 반(反)시장적 세금 퍼주기 입법을 강행하기도 한다. 국민이 농업 문맹에서 탈피해야 정부와 정치권을 견제해 올바른 정책 결정을 유도할 수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 ‘2018 세계 금융이해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성인 금융이해력(33%)은 미국(57%)·영국(67%)·일본(43%)은 물론 우간다(34%)보다 낮다. 금융 문맹이 67%인 셈. 이 위원은 "농업 문맹은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한국 농업은 후진적인가.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하다. 한국 농업, 특히 쌀농사는 정부 지원 없이 살아남기 어려운 소농이 압도적이다. 그런 면에서 전형적인 후진국형이다. 모든 국가에서 농업은 정부 주도로 시작했다. 그러다 개별 농가가 산업적으로 규모를 갖추고 자본 축적을 하면 많은 영역이 민간으로 넘어간다. 농업 선진국인 미국·네덜란드 다 마찬가지다. 선진국 중 늦은 편인 일본도 우리보다는 20년쯤 앞서있다. 한국만 여전히 이런 '전환 지체'를 타파하지 못하고 있다. 농민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혁신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정치가 돕기는커녕 오히려 이에 편승해 갈등을 부추긴 데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농업은 그 나라 딱 국민 의식과 정치 수준만큼 발전한다. 한국의 뛰어난 농업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더딘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정치를 휘두를 만큼 쌀농사 수가 많은가. 
아니다. 표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정반대다. 국내 100만 농가 가운데 쌀 전업농은 많이 잡아 8만이다. 지난 2023년 민주당이 양곡법을 국회에 통과시켰을 때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축산관련단체협의회, 한국농축산연합회 등 농민단체들이 전부 반대 성명을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쌀에 더 많은 재정이 투입될수록 낙농·축산 등 다른 분야에 들어갈 예산은 줄 수밖에 없어서 반발한 거다. 소농은 점차 줄이고, 흩어져 있어 비효율적인 농지는 모아 경작하게 해야 한다. 이런 정책 전환이 없으면 지난 수십 년간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그러했듯 백약이 무효다. 쌀농사 해봐서 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 소속이라고 밝힌 농민들이 지난달 19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트랙터 시위를 벌이는 모습. 뉴스1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 소속이라고 밝힌 농민들이 지난달 19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트랙터 시위를 벌이는 모습. 뉴스1

농부인가. 
농사는 짓는데 농부는 아니더라. 농민 정서와 농촌 시스템이 궁금했고, 수확하면 예쁘게 포장해 주변에 선물 주려고 2021년부터 경기도 안성의 논 1200평(3960㎡)을 사서 농사를 짓고 있다. 처음엔 뭐든 직접 해보고 싶었다. 벼 품종 고르고, 이양기 들어올 때 작업 지켜보고, 나만의 포장지 골라 쓰고. 그런데 마을 이장 찾아가 위탁 영농하는 사람 구하고 나니 끝이었다. 수확량이 적다 보니 아무 선택 기회가 없었다. 모판 한 번 못 본 채로 가을이면 16가마(1가마=80㎏)가 나오는데, 그중 7가마를 농사지어준 값으로 치르고 나면 정부 지원(기본직불금)을 합쳐도 10㎏짜리 포대 24개와 100만원쯤이 손에 남는다. 대농 아닌 누구라도 경제적 선택으로 쌀농사 지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래서 양곡법 같은 정부의 의무 지원이 필요하다는 건가. 
어떤 앵글로 보느냐에 따라 입장은 다 다르다. 다만 복지와 산업을 헷갈리면 안 된다. 소농 지원이 필요한 건 복지로, 산업은 시장 친화적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한국 쌀농사는 거의 100% 기계화돼 있어 노동력이 그리 많이 투입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똑같이 3000평이라도 논과 달리 밭은 콩이나 고추를 심으면 상당한 노동력이 들어가는 등 고난의 시작이다. 수익성을 떠나 이런 노동 강도의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돈까지 보존해주면 쌀이 아무리 남아돌아도 소농은 죽기 전날까지 다른 작목으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 관료나 정치인이 이걸 모르지 않는다. 다만 식량 안보에 대한 우려, 그리고 먼 미래보다 당장 살 궁리가 막막한 농민 정서 등을 고려하다 보니 쌀이 과도하게 '정치재'가 돼버린 측면이 있다. 정치가 개입하니 관료는 올바른 의사 결정이나 정책 집행을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사과도 마찬가지다. 

급격한 사과값 상승으로 여론이 들끓던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이 송미령 농림부 장관(윤 대통령 오른쪽)이 서울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 과일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급격한 사과값 상승으로 여론이 들끓던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이 송미령 농림부 장관(윤 대통령 오른쪽)이 서울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 과일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사과는 필수 식량도 아닌데 왜 그런가. 
우선 사과 특성을 알아야 한다. 기후 변화로 지난겨울 사과꽃이 일찍 피었다가 서리가 내려서 망했다. 생산량이 주니 비축 사과 가격까지 크게 올랐고, 소비자 사이에서 수입 여론이 들끓었다. 수입 검사를 무려 8년이나 걸리도록 장벽을 세워놓기도 했지만, 장기간 검사가 아니더라도 작품 수입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포도는 수입하는데 왜 사과 수입은 안 하는 걸까. 그건 계절성 이슈 때문이다. 포도는 안 나는 계절이 있어 그때 수입하면 국내 농가에 피해를 주지 않지만, 저장 가능한 사과는 연중 출하(소비)로 언제 수입해도 부딪힌다. 사과는 국내 과수 농가의 25%나 차지하는데, 수입산보다 가격 경쟁력 없고 수출은 전혀 못 하는 상황에서 당장 부족하다고 수입하면 농가 생산 기반이 무너진다. 그렇다고 지난해처럼 크레이지 프라이스까지 간 마당에 언제까지나 소비자 희생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뭔가. 
수입하되, 알고 하자고 말하고 싶다. 사과를 수입하면 당장 경쟁력 없는 농가는 어려움을 겪다 없어지겠지만 다른 농가는 살아남으려고 경쟁력을 키워 더 좋은 구조를 갖게 될 거고, 수출 판로도 결국 뚫을 거라고 본다. 시장에 먹거리가 넘쳐 착각하기 쉬운데, 우린 농지가 부족한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신토불이(身土不二) 같은 정서적 키워드만 내세워서는 (식량 확보와 농가 발전이라는) 진도가 안 나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식량(농업) 상황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아무 노력 없이 유지하기는 이미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농업도 도시 자영업처럼 엄연한 경제현장이다. 승계농은 물론 귀농이든 청년 농부든 후발주자라면 그만큼 더 쉽지 않다. 그런데 농업에 뛰어들면 정부(지자체)의 원스톱 서비스를 받아야 하고, 망하면 무슨 정책이 크게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편견이 사라져야 제대로 된 정책도 나올 수 있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