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원대 요금제에 5세대(G) 데이터를 20기가바이트(GB)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알뜰폰이 나올까. 정부가 알뜰폰 시장 활성화를 위해 사업자들이 자체 요금제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데이터 도매대가를 대폭 낮추고, 설비투자도 확대하기로 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알뜰폰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알뜰폰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알뜰폰 사업자들이 자체 요금제를 적극적으로 만들 수 있게끔 데이터 도매대가를 최대 52% 수준까지 낮춘 게 이번 정부 방안의 골자다. 도매대가는 알뜰폰 업체가 이동통신사 망을 빌리는 대가로 통신사에 지불하는 비용이다. 우선 도매제공의무사업자(SK텔레콤)의 종량제 데이터 도매대가를 1메가바이트(MB)당 1.29원에서 0.82원까지 36% 낮춘다. 이는 최근 10년 간 가장 큰 폭의 데이터 도매대가 인하 수준이다.
데이터 대량 구매시 할인 혜택도 확대한다. SK텔레콤 기준 알뜰폰사가 1년에 데이터를 5만TB(테라바이트) 이상 선구매하면 도매대가의 25%, LG유플러스 기준으로는 2만4000TB 이상 선구매 시 20% 할인이 추가된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도매대가 인하가 본격 적용될 경우 이동통신 이용자의 평균 데이터 사용량인 20~30GB 구간대까지 알뜰폰 자체 요금제 출시가 가능해지면서 1만원대 20GB 5G 요금제까지 출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기존의 이동통신사처럼 이용자 맞춤형 요금제를 자유롭게 출시할 수 있는 ‘풀 MVNO’가 나오도록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풀 MVNO란 통신망은 이통사로부터 빌리되, 교환기·고객관리시스템 등 자체 설비를 갖춘 알뜰폰사를 의미한다. 과기정통부는 이를 위해 이통 3사와 풀 MVNO 사업자와의 네트워크 연동을 의무화하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기존에는 SK텔레콤만 망 연동이 의무였다. 풀 MVNO의 설비투자를 위한 정책금융도 지원할 계획이다.
기본 데이터 제공량 소진 후 데이터를 제한된 속도로 이용하게 하는 알뜰폰의 데이터 속도제한 상품의 경우 속도를 기존 400Kbps(킬로비피에스)에 더해 1Mbps(메가비피에스) 추가한다. 해외로밍 상품도 1종에서 4종으로 늘려 알뜰폰 이용자 선택권을 넓힌다.
최근 알뜰폰 업계는 고전 중이다. 이통 3사의 2~3만 원대 저가요금제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서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로 보조금 상한선까지 사라지면서 알뜰폰 업계의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알뜰폰만의 저렴하고 다양한 요금제가 출시돼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 경감에 기여하고, 걱정 없이 알뜰폰을 믿고 쓸 수 있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효과를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알뜰폰 업체를 풀 MVNO로 육성시키고, 더 나아가 제4이통사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설비투자로 시스템을 갖춘 풀 MVNO가 제4이통사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는 게 과기정통부의 ‘빅픽처’다. 이를 위해 이날 과기정통부는 알뜰폰의 내실을 키우는 제도 개선 방안도 발표했다. 먼저 알뜰폰 업체의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을 의무화하고 정보보호 최고책임자(CISO)를 두도록 했다. 알뜰폰 신규 사업자의 자본금 기준은 현행 3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린다.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올해 3월부터 망 도매대가 산정 방식이 정부가 도매대가를 검증하는 ‘사전규제’ 방식에서 사업자 간 자율 협상 후 신고하는 ‘사후규제’ 방식으로 바뀔 예정이다. 앞으로 알뜰폰 업체들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데, 이통사가 도매대가를 내릴 유인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이번 정부 방안 외) 추가 도매대가 인하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김남영 기자 kim.namyoung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