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美·中 끌어당기는 日…정상외교 스톱된 韓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20일(현지시간) 출범하면서 한국 외교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핵심 변수인 미·중 전략 경쟁 구도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전방위 외교에 나선 일본과 달리 정상외교 공백 상태인 한국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외치는 트럼프와 '중국몽'을 외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사이의 탐색전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의 트럼프 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의 트럼프 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가 취임 후 100일 이내에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지난 17일 통화에 이어 조만간 대면 회담을 갖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19일엔 중국계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의 미국 내 서비스가 중단된 데 대해 취임 이후 '틱톡 금지법'의 시행을 유예하겠다고도 밝혔다.

중국도 트럼프를 예우했다. 트럼프가 관례를 깨고 시 주석을 취임식에 초청하자 중국은 당정 권력 서열 8위인 한정(韓正) 국가부주석을 특사로 대신 보냈다. 한시적일 수 있지만, 양국 간에 유화 제스쳐를 주고받는 셈이다.

미·중이 '폭풍 전야'와 같은 시기를 거치는 가운데 발빠른 일본은 차례로 중국, 미국을 접촉하며 고위급 외교를 전력 가동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5일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상은 중국을 찾아 왕이(王毅) 중국 정치국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하고 올해 이른 시기에 왕 위원의 방일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와야 외상은 20일 트럼프 취임식에도 참석한다. 이튿날인 21일에는 곧 인준 절차를 밟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지명자와 회담하고, 쿼드(QUAD, 미국·호주·인도·일본의 안보 협의체) 외교장관회의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미·일 정상회담도 다음달 초중순 열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 19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과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일본과 안보 측면의 이해관계가 상당 부분 겹치는 한국의 경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운 정치적 혼란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정상 외교가 실종된 상황에서 일본에 일종의 '선의의 메신저' 역할을 기대하거나 한·미·일 협력을 고리로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지키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의 정상 외교가 실종된 가운데 일본이 트럼프 2기 행정부와 강하게 밀착한다면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의 층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FILE PHOTO: U.S. President Donald Trump meets with China's President Xi Jinping at the start of their bilateral meeting at the G20 leaders summit in Osaka, Japan, June 29, 2019. REUTERS/Kevin Lamarque/File Phot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FILE PHOTO: U.S. President Donald Trump meets with China's President Xi Jinping at the start of their bilateral meeting at the G20 leaders summit in Osaka, Japan, June 29, 2019. REUTERS/Kevin Lamarque/File Phot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그간 한국 국내 정세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을 않던 트럼프가 비공개로 한국 국내 정세를 의식한 뼈아픈 농담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CBS 방송은 지난 18일 트럼프가 "모두가 나를 보고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한국을 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과 중국 어느 곳도 과도기 정부에 진정성을 보이며 상대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조기에 방미, 한·미 외교장관회담 등을 추진해 정상 외교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주중국 한국 대사 교체가 무산되면서 대중 외교의 전초 기지가 정상 가동되고 있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주중 대사로 내정됐던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임명은 탄핵 정국으로 백지화됐다. 탄핵 심판 절차가 진행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발탁한 대사 내정자에게 권한대행이 신임장을 수여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시각에서다. 정재호 현 주중 대사는 지난달 초 예정됐던 이임식을 취소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사실상 최소한의 외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