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날, 90명 감금" 기사가…9일뒤 "中간첩 압송" 둔갑했다 [가짜뉴스 전말 추적]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가 열린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임현동 기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가 열린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임현동 기자

“오늘 아침 신문에도 수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연수원에 있던 중국인 90여 명이 일본 내 미군 부대에 가서 조사를 받았고 부정선거 관련 자백을 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지난 16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2차 변론에서 윤 대통령 측 배진한 변호사가 우파 성향 매체인 스카이데일리의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미군기지로 압송됐다’는 이날 기사를 인용해 주장한 내용이다.  

헌법재판관 출신인 조대현 변호사도 “비상계엄 선포는 국내, 국외 공산주의 좌익세력이 대한민국 선거의 부정을 획책해서 국회 과반수 권력을 탈취한 때문”이란 주장을 펼쳤다. 일부 보수 유튜버가 주장해온 ‘중국 정부의 부정선거 개입’이란 음모론을 탄핵심판정까지 가져온 것이다.

이들이 언급한 기사는 ‘정통한 미군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군과 주한미군이 선거연수원을 급습해 중국인 간첩 99명의 신병을 확보했고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이송했다”는 내용으로 부정선거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다는 취지다. 기사에 “이들은 미군의 심문 과정에서 선거개입 혐의 일체를 자백한 것으로 드러났다”고도 썼다.

그러나 해당 기사는 중앙일보가 검증한 결과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물론 중앙선관위·경찰 등 관계기관이 “근거가 전혀 없다”고 부인하는 ‘가짜뉴스’다. 그런데도 어떻게 유튜브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일파만파 퍼지게 됐을까.

발단은 지난해 12월 24일 주간지 시사IN(시사인)의 ‘12·3 선관위 연수원에서 실무자·민간인 90여 명 감금 정황’이란 제목의 단독 보도였다. 당시 시사인은 복수의 선관위 관계자를 인용해 “12·3 비상계엄 선포 당일 수원 선거연수원에 선관위 공무원 등 민간인 90여 명이 머물렀다”며 “이들이 머무르던 숙소 각 층에 사복 차림의 남성들이 배치됐고, 민간인들이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통제했다”는 내용으로, 계엄 사태를 비판하는 취지의 기사를 보도했다.


스카이데일리가 지난 16일 '[단독]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미군기지 압송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사진 스카이데일리 홈페이지 캡처

스카이데일리가 지난 16일 '[단독]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미군기지 압송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사진 스카이데일리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이튿날 이 기사는 구독자 147만 명인 우파 성향 유튜브 채널 ‘신인균의 국방TV’에 인용되면서 전혀 다른 내용으로 탈바꿈됐다. 신씨는 지난달 25일 ‘또 터졌다! 당일 선관위 90명 감금! 민주당은 침묵! 찔리는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연수원에 감금됐던 인물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한국인이 아니거나 어딘가로 연행됐기 때문”이라며 최초로 ‘중국인’을 언급했다. 

신씨는 “시사인이란 좌파언론이 똥볼을 찼다”며 민주당과 선관위, 주류 언론이 감추려던 사실이 폭로됐다고 주장했다. 근거로 ‘선거 조작을 위해 들인 중국인 해커 아니냐’ 등 해당 기사 아래 달린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댓글을 들었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114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다음날인 12월 26일 스카이데일리는 ‘선관위연수원 중국인 해커부대 90명 누구인가’라는 김태연 전 명지대 국제대학원 교수 명의 칼럼을 게재하면서 중국인을 ‘중국인 해커부대’로 둔갑시켰지만 역시 아무런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인터넷 매체 ‘파이낸스투데이’에 ‘계엄 날, 선관위 연수원 90명이 중국인 해커라고?’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쓰면서 이를 확산했다. 황 전 총리 역시 칼럼에서 “믿기지 않는 이 칼럼 내용이 사실이라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 일”이라며 “90명은 지금 어디 있나. 김용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회 행안위 등에서 어찌하여 밝히지 못하고 있나”라고 썼다. 

이는 극우 유튜버 ‘보안사’ 등이 “계엄 당일, 중국 전산 조작원들 90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체포된 중국 전산 조작원들이 미국 정보 당국에 이송됐다”고 주장하며 살이 붙어 퍼져 나갔다.

이렇게 확대·재생산된 가짜뉴스의 정점이 스카이데일리의 16일자 “체포된 중국인 간첩 99명이 평택항을 거쳐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압송됐다”는 기사였다. 그러나 계엄 당일 수원 선거연수원엔 계엄군이 아예 청사 내로 진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회 행안위가 공개한 폐쇄회로(CC)TV를 통해 확인됐다. 계엄군은 선거연수원에서 수백m 떨어진 농업박물관 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대기하다가 계엄 해제후 철수했다. 우파 매체와 유튜버들은 계엄 당일 미군이 선거연수원에서 중국 간첩을 체포했다고 주장했지만 애초에 계엄군이 선거연수원에서 직원을 감금하긴커녕 진입조차 한 적 없었던 것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그럼에도 해당 기사는 ‘계엄령이 정당했다’는 논리로 이용되며 윤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해당 매체는 “본지가 밝힌 내용은 제한적이지만 팩트”라는 입장문을 내고, “세부적인 내용이 더 보도되고 사실의 정확성이 현실화되는 날 국제적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하면서 가짜뉴스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보였다. X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스카이데일리가 스스로 기사를 내리거나 사과하지 않는 한 제겐 스카이데일리 기사만이 진실” 등의 옹호 반응이 올라왔다.

중앙선관위 역시 가짜뉴스 확산이 심각하다고 보고 스카이데일리 보도 이튿 날인 지난 17일 공식 반박 입장문까지 냈다. 선관위는 입장문에서 “비상계엄 당시 선거연수원에서 숙박 중인 중국인 해커 90여 명이 계엄군에 의해 체포됐다는 일부 언론보도가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계엄 당시 선거연수원에선 선관위 공무원 총 119명을 대상으로 5급 승진자 과정과 6급 보직자 과정 등 2개의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었다”며 “계엄군은 선거연수원 청사 내로 진입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군이 수원 선거연수원 맞은 편 농업박물관 주차장에서 대기하다 철수하는 모습. [유튜브 노컷브이 캡처]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군이 수원 선거연수원 맞은 편 농업박물관 주차장에서 대기하다 철수하는 모습. [유튜브 노컷브이 캡처]

계엄 당일 계엄군의 선관위 직원 감금부터 중국인 압송, 미군 체포 등이 모두 가짜 뉴스라는 것이다. 시사인도 최초 보도 이후 25일 만인 지난 17일 “선거연수원 내부 CCTV 확인 결과 계엄군이 연수원 건물에 진입하는 장면은 없다”고 확인했다. 반면 스카이데일리 측은 “99% 확인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19일 중앙일보에 이를 확인하며 “근거 없는 허위 사실에 기반한 보도를 한 언론사에 대해 조만간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청구하는 등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측 역시 관련 보도를 인지하고 있지만 내용이 터무니없어 반박할 경우 한국 내 논란을 부추길 염려가 있다며 공식 입장은 내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군 소식통들에 따르면 기사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를 따지자면 중국인 체포 등 애초에 기사의 전제 자체가 잘못됐으며 신빙성이 없는 얘기라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다른 군 소식통도 “당초 내부에서 검토했지만 선관위에서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만큼 추가 입장을 내지 않기로 정리됐다”고 밝혔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 중인 경찰 국가수사본부도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