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구속 국면에서도 국민의힘의 재집권이 가능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0일 발표됐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6~17일 실시한 차기 대선 집권세력 선호도 조사에서 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론’은 48.6%, 야권에 의한 ‘정권 교체론’은 46.2%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리얼미터가 네 차례 진행한 해당 문항 조사에서 비록 오차범위(±3.1% 포인트) 내지만 ‘정권 연장론’이 ‘정권 교체론’을 앞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탄핵안 가결 이후인 지난달 26~27일 조사에선 정권 교체론(60.4%)이 정권 연장론(32.3%)을 두 배 가까이 앞섰다. 이후 격차는 23.7%포인트(2~3일)→11.7%포인트(9~10일)로 좁혀지다가, 이번 조사에서 처음 뒤집혔다.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46.5%로 더불어민주당(39.0%)을 오차범위 밖 7.5%포인트 앞질렀다.
민주당에선 여론조사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기류도 감지됐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수 과표집에도 원인이 있다. 국민의힘 차기 주자 1위로 김문수가 나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했다. 한 호남 의원은 “광주·전라의 34.8%가 정권 연장을 택했다”며 “격앙된 보수층이 지역을 허위로 입력한 것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날 ‘여론조사 검증 및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발족해 최근 여론조사의 왜곡·조작 여부를 따져보기로 했다.
일각에선 이런 민심의 기류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중도 보수, 중도 진보가 윤석열의 대안으로 민주당을 택하지 않는 것”이라며 “과표집 얘기를 꺼내선 안 된다. 심각성을 모르는 게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김원기·임채정·문희상·박병석 전 국회의장과 이해찬 전 대표 등 민주당 상임고문단 오찬 자리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선 당의 성찰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상임고문들은 “의원들은 언행에 유의하고, 점령군이나 개선군 같은 모습을 절대 보이면 안 된다”며 “여론조사 결과도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내란을 거치며 국민 마음속에 생긴 상처를 잘 보살펴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에선 ‘야당 자업자득론’이 제기됐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조기 대선으로 자신의 범죄를 덮겠다는 이재명 대표의 의도를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어 지지율이 폭락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저희가 잘했다기보다는 민주당의 아무 근거 없는 내란 선동 등을 국민이 판단하고 계신 것”이라고 했다.
다만 19일 서부지법 난입 사태가 지지율 상승 흐름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건 아닐까 봐 여당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권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폭력을 동원한다면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국민의힘이 법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수층 결집 효과는 충분히 있다”면서도 “윤 대통령 탄핵·구속을 거치며 정국이 다른 단계로 진입했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유승찬 정치컨설턴트는 “탄핵 정국이 대선 정국으로 넘어가면서 유력한 야당 후보를 승인할 거냐 말 거냐 구도가 형성된 것”이라며 “윤 대통령 구속으로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이 일단락됐기에, 이제는 그다음 권력자인 이재명 대표에 대한 심판론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순간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고 사실상 대선판으로 넘어왔는데, 민주당은 한덕수 탄핵부터 카톡 검열 논란까지 한달 동안 점수만 까먹었다”고 지적했다.
2017년 탄핵 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지적도 있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보수층이 국민의당, 바른정당으로 흩어졌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 달리, 지금은 보수층을 담아낼 다른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며 “박 전 대통령 때는 탄핵을 한 이후에 수사가 이뤄진 반면, 지금은 현직 대통령을 체포·구속까지 하면서 적법 절차 논란이 더해져 지지층이 더욱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