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이 야당 경고용? “내란 실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與, 수군 태워 먹은 원균 아닌 백성 지킨 이순신 지향해야”
올해 이루고 싶은 것은…“보수의 가치 바로 서는 원년 되길”
“양심에 따라 움직이고 보수주의자로서 부끄럼 없이 행동”
저는 보수의 배신자가 아닙니다. 보수의 배신자는 우리 당을 극우당으로 바꿔 보수의 미래를 없애버린 윤석열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죠.
윤 대통령의 12·3 계엄 선포는 대한민국은 물론 보수 진영도 변질시켰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배신자 낙인 찍기와 왕따가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으 며, 극우주의자들이 서울 한남동 관저에 모여 안하무인으로 부정선거론을 펼치고 있다. 반면 지금이라 도 윤 대통령과 절연하고 건강한 보수를 지향해야 한다는 쪽의 목소리는 국민의힘 내에서 좀체 힘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과연 국민의힘은 이대로 극우 세력에 잠식될 것인가. 1월 8일 오전 월간중앙은 ‘보수의 정상화’를 외치며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김상욱(45·울산 남구갑) 국민의힘 의원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대한민국 주인은 국민, 기본 질서는 헌정 질서”
1년 전 오늘(8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했더라.
“정치인 김상욱으로서 대한민국 정치가 어떤 상황이구나, 어떤 문제를 안고 있구나,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구나 등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윤 대통령의 12·3 계엄 선포와 국회에서 이를 해제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고민들이 응축돼 폭발했던 것 같다.”
1980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김 의원은 영진고,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나온 뒤 부산대학교 법학 전문대학원 1기생으로 입학해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한국노총 울산본부, 국민의힘 울산시당 법률자문위원장 등을 맡았던 그는 22대 총선에서 국민추천제를 통해 울산 남구갑에 공천돼 부산대 로스쿨 동문인 전은수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뭐였나?
“‘무조건 막아야 한다’였다. 만약 계엄을 막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엄청난 피를 흘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이 ‘야당 경고용’이었다고 한다.
“1987년 6월 전 국민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들고 일어났을 때 전두환 정권은 마지막까지도 군사력으로 진압하려고 했다. 권력은 그런 것이다. 한번 잡으면 국민이 피를 흘리더라도 끝까지 버티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 마지못해 내려놓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 권력이 한번 형성되면 뿌리 뽑기가 매우 어렵다. 미얀마, 시리아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12·3 계엄 사태는 내란 실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목적이 독재라는 뜻인가?
“권력자의 말에 속을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권력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그 실질을 봐야 한다. 계엄 선포의 실질은 국회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것, 정치적 반대 세력을 수도방위사령부 B1 벙커에 가둬서 척결하는 것, 국회를 해산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임의의 입법 기관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독재 행위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독재자가 되려고 했던 것이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자유민주주의는 국민들이 정치 권력을 선택해서 바꿀 수 있는 사회 제도를 뜻한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 이 나라의 기본 질서는 헌정 질서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힘으로 정치 권력을 바꾸려고 했다. 그것은 독재다.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이 선택하는 것, 독재는 독재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12·3 사태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수고 독재를 하려고 시도한 쿠데타라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이 점입가경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쌍특검법’(내란·김건희 특검법)의 본회의 재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김 의원에게 탈당을 공개적으로 권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론을 따를 생각이 없다면 탈당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는 것이다. 김 의원은 “양심에 따라 움직이고 보수주의자로서 부끄럼 없이 행동해 탈당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을 겨냥했던 배신자론이 김 의원에게 옮겨간 듯하다.
“저는 보수의 배신자가 아닌 보수를 지키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사람이다. 보수의 배신자는 우리 당을 극우당으로 바꿔 보수의 미래를 없애버린 윤석열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다.”
외로운 싸움 지속…“차라리 탈당” 압력도
여러 인터뷰에서 ‘건강한 보수’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폐쇄적·배타적·권위적 사회로 만들려고 했다. 보수의 대통령이란 간판을 걸고서 보수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분개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건강한 보수를 추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저는 대한민국이 안정적 인 발전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다. 우리 보수주의자들은 안정적 사회를 위해 헌정 질서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목숨보다 더 귀한 가치로 여겨야 한다. 그래서 저는 감히 윤 대통령을 ‘보수의 배신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당 지도부는 심각한 해당 행위를 한 윤 대통령을 제명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은 무법지대를 방불케 했다.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리면서 집회 참석자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의힘 의원 일부가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전광훈 목사 등에게 힘을 실어줘 비판받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현역 국회의원 40여 명이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논란이 됐다.
“법리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 우리 당은 여당으로서 원죄를 갖고 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석고대죄하고 그 이후에 국민들께 ‘보수의 가치가 제대로 된 보수 정치를 하겠으니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라고 요청드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면 국민들께서 우리 당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까? 윤 대통령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면 건강한 보수 정치를 시작할 수가 없다.”
왜 그들은 집회에 참석한 것일까?
“추정을 해보자면, 정치적 계산에 밝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강성 지지자들에게 눈도장을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치적으로 이득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끼리 뭉쳐서 이 기회에 당권을 장악하자는 생각도 갖고 있을 것이다. 특히 대구·경북(TK) 지역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다 보니 (그 지역 의원들은) 당의 쇄신보다는 현상 유지를 바란다. 현상 유지를 위해서는 당이 단결해야 한다. 당이 단결하려면 내·외부에 적이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독일 국민을 단결시키기 위해서 스탈린을 외부의 적으로, 유대인을 내부의 적으로 내세웠다. 이와 똑같은 현상이 우리 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부정선거론, 자유민주주의 부정하는 것”
윤 대통령 측은 1월 14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이른바 ‘부정선거’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정선거론은 극우 진영에서 오랜 기간 제기된 단골 메뉴다. 중국·북한이 해킹 등의 방법으로 우리 나라 선거에 개입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주장이다. 부정선거론을 설파하고 있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북한과 중국의 해킹부대가 윤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선거를 좌우했다. 야당 국회의원 중 절반이 가짜”라고 했다.
탄핵 반대 집회 참석자들은 22대 총선이 부정선거였기 때문에 탄핵도 무효라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수려고 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부정선거론을 펼쳐왔다. 국민들이 했던 선거의 정당성을 없애버리고, 권력자가 국가 권력을 행사해 정치 권력을 재편하도록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소관으로 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이다(1월 8일 기준).
“부정선거라고 워낙 말이 많아서 선관위에 질의했었는데, 답변을 보면 부정선거가 생길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부정선거론을 믿는다면, 의혹을 가진 사람들이 검찰과 경찰에 (선관위를) 고발하면 된다. 무고면 무고의 처벌을 받을 것이고, 만약 정말 문제가 있으면 검찰과 경찰이 조사해서 결과를 낼 것이다. 이렇듯 법치주의 안에서 풀어야 될 문제이지 부정선거론만 무성하게 일으켜서는 안 된다. 선거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부정하고 독재를 해야 한다는 논리로 가는 건 자유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뜻이다.”
최근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는 김 의원을 행안위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로, 농해수위 소속이던 이만희 의원을 행안위로 사·보임했다. 원내 지도부는 윤 대통령의 경찰 수사를 앞두고 경찰 출신인 이 의원을 행안위로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김 의원의 일련의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의원이 생각하는 극우란 무엇인가?
“흔히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군국주의, 프랑스 르펜의 극우주의를 떠올리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본인들이 추구하는 가치 외에는 용납하지 않으면서 폭력적이고 전체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즉, 극우주의자들이 지향하는 사회와 북한 사회는 실질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극우주의자들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면서 상대를 빨갱이라고 욕한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1월 5일 관저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전 목사에게 90도로 인사한 장면은 국민의힘의 극우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꼽힌다. 전 목사가 윤 의원에게 “잘하면 대통령 되겠어”라고 말하자, 윤 의원은 90도로 고개를 숙인 뒤 “너무나도 존귀하신 전광훈 목사님, 나라를 지키는 데 가장 선봉에 선 여러분께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현역 5선 중진이 극우 성향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자칫 당 전체의 의견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당이 전 목사와 합당이나 자매 결연을 맺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대한민국 미래를 생각하면 크나큰 손실이다.
“이대로면 정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민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마저도 잃어 버릴 수 있다. 우리 당은 급한 마음에 돌격 앞으로를 외쳤다가 조선 수군 대부분을 태워 먹은 원균이 아닌, 현명함과 침착함으로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구 한 이순신을 지향해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현명함이란 보수의 가치를 기반으로 옳음을 추구해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가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TK 자민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 정치적 유·불리를 우선시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보니 국민의힘이 병들게 됐다. 버티면서 민주당이 사고를 치면 반사이익만 노리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당이 잘해서 국민들에게 인정받겠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됐다. 지금 우리 당 은 과거를 되돌아봐야 할 때다. 강성 지지자들로 똘똘 뭉쳐서 버티고만 있다가 민주당이 사고 치면 재집권한다는 것은 결코 옳은 생각이 아니다.”
野 내란죄 철회, “각하·재의결 사유 아냐”
야당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탄핵소추단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한 것과 관련해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 일정을 고려한 정치적 계산 아니냐는 것이다. 당초 국회를 통과한 탄핵소추안에 내란죄를 중요 탄핵 사유로 명시했기 때문에 후폭풍이 거세다.
민주당 중심의 국회 탄핵소추단이 내란죄를 탄핵소추 사유에서 제외한 것을 두고 자충수라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에서 쓸데없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저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형사상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말이 한 줄 기록으로 남기를 바랐다. 그리고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상정됐을 때 탄핵 안에 형사상 내란죄가 포함된 것을 보고 찬성한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의사도 존중받아야 한다. 또 헌재 결정 이후 사회 갈등을 줄여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사회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이번 결정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내란죄 철회가 헌재의 탄핵 심판에 영향을 미칠까? 윤 대통령 측은 탄핵소추안에 내란죄가 여러 차례 언급된 만큼 재의결이 없다면 소추 사유의 중대한 변경으로 인해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는 각하나 재의결 사유는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헌재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만 맞으면 탄핵소추 사유에 구애받지 않고 넓은 재량으로 판단한다는 선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 단순한 형사법 위반으로는 탄핵시킬 수 없고 뇌물죄 이상의 중대한 법 위반이 있어야 탄 핵이 가능하다는 선례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할 당시 국회 탄핵소추단에서 뇌물죄를 가장 중요한 탄핵소추 사유로 넣었다. 하지만 윤석열 당시 특검팀장이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를 밝혀내지 못하자 소추위원장을 맡았던 권성동현 우리 당 원내대표는 당시 뇌물죄를 빼고 나머지 사유로 탄핵하기로 결정했고, 헌재는 탄핵소추 사유에 없었던 것까지 넣어서 박 전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이미 이러한 선례가 있기 때문에 헌재의 탄핵 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저는 헌재가 내란죄 혐의를 넣어서 판단해 주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진영 논리에 갇혀 바른 정치인 못 키워”
민주당의 입법 독주가 계엄 사태를 불러왔다는 주장도 들린다.
“민주당이 거대 야당이 되도록 선택하신 것도 국민이다. 우리 당은 22대 총선 결과에 대해 반성하고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민주당의 입법 독주는 정확하고 품위 있게 비판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국민들께서 ‘민주당에 표를 줬더니만, 저놈들은 입법 독주를 하는구나’라며 다음 선거 때 우리 당에 표를 줬을 것이다. 그렇게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지 급하다고 국민을 적으로 돌리면 어떡하나?”
국민의힘은 어느 순간부터 보수의 가치를 지닌 대권주자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진영 논리에 갇혀서는 소신 있고 바른 정치인이 클 수 없다. 지도부 눈에 바른말 하는 정치 신인은 반골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줄 잘 서는 정치인만 살아남아 나중에 당권을 잡는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정치권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끄럽게도 정치인들은 기득권 때문에 스스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께서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인과 정당을 기억하셨다가 선거 때 표로 심판해주시는 수밖에 없다. 국민만이 망가진 정치를 바로 세워줄 수 있다.”
올해 꼭 이뤄졌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뭔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가 하루속히 회복되는 것이다. 또 우리 당이 보수의 가치를 바로 세워 국민들의 신뢰를 차곡차곡 얻어가는 원년이 되기를 간곡히 바란다.”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