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정치인이 자는 밤에 성장…차라리 관심을 갖지 말라" [월간중앙]

직격 인터뷰 | MB 정부 ‘경제 소방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직설
 
“내우외환 겹친 한국 경제 올해 1.8% 성장률 달성도 불투명”
“IMF 이후 최대 위기… 정부·기업·개인 합심해 고통분담해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한국 경제는 근·현대사의 변곡점에 해당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한국 경제는 근·현대사의 변곡점에 해당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첩첩산중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에서는 탄핵 정국 속에 ‘무안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쳤다. 내수 경기 침체 속에서 미국의 통상 정책 전환과 환율 급등, 반도체 등 한국 주력 업종의 경쟁 심화 우려가 커지면서 수출 전망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로 하향 조정했지만, 이마저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증현(79) 윤경제연구소장은 “올해 한국 경제는 근·현대사의 변곡점에 해당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기업, 개인 모두의 고통분담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경제 사령탑을 맡아 ‘교과서적 경기회복을 이끌었다’는 외신의 찬사를 받았다. ‘경제 소방수’로 통하는 윤 전 장관을 1월 7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비판은 야당, 그중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을 향했다. 문재인 정부 5년과 예산심의권을 무기 삼은 민주당의 입법 독주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내우(內憂)’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정부 예산 깎아 놓고 추경하자는 건 언어도단”

 

시국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
 


“한마디로 내우외환이 겹친 총체적 위기다. 우선 ‘외환’ 쪽으로 보면 트럼프 정부 재출범이 제일 큰 변수다. 세계화의 퇴조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그동안 세계화의 최대 수혜를 본 나라 중 하나였다. 세계화가 후행하면 한국이 1차적으로 타격을 받을 게 틀림없다. 수출 전선에 이상이 생길 거란 얘기다. 미·중 대립 관계도 더욱 심화할 것이다. 전에 없던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등의 변수도 ‘외환’의 큰 중심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국내는 말 그대로 ‘내우’가 극에 달했다.”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1.8%로 보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이마저도 낙관적이다. 내수, 수출, 고용 등 거시경제 지표가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이다. 산업 경쟁력은 저하될 테고, 기업가 정신은 실종되고, 국민 의식의 추락도 불가피하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겠다는 그런 자세마저 무너질 것이란 얘기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소비가 침체되기 마련이다.
 

“소비가 늘어나려면 우선 그 여력이 입증돼야 한다.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의 소득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국민 소득 전반이 높아져야 된다.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대인 데다가 물가 불안 요인마저 잠재하고 있다. 여력이 없다. 소비할 분위기도 아니다. 정치가 조속히 안정돼야만 경제도 제대로 돌아가는 법이다. 그래야 기업이 투자를 하고 국민도 소비에 나설 것인데…”
 

2025년도 예산안을 감액 처리한 더불어민주당은 경기 부양을 위해 추경을 촉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기 모순이다. 예산 편성은 삼권분립(입법부·사법부·행정부의 권력 분리) 원칙에 따라 행정부 소관이다. 국회는 수정만 할 뿐이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자기들이 깎아 놓고는 추경을 하자는 건 언어도단이다. 이건 심하게 나무라야 된다.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어쩌겠나. 정부 예산안을 되돌릴 수 없는 마당에 민생을 생각하면 추경을 할 수밖에. 대신 최소한으로 해야 할 필요는 있다. ”
 

추경을 통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형태로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복지 예산을 쓸 때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자활 의지를 북돋는 데 써야 한다. 생산적인 데다가 예산을 투입해야지 그냥 먹고 마는 데 쓰면 안 된다. 둘째,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맞춤형으로 줘야 한다. 셋째, 지속 가능해야 한다. 한 번 주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기준만 해도 매번 바꾸려 할 때마다 난리 아닌가? 야당 생각은 국민 의식을 추락시키는 것밖에 안 된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뿌려 공짜 의식이 만연하게 하기보다 5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꼭 필요한 곳에 맞춤형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의 건전 재정 유지 노력에도 국가채무는 계속 불어나고 있다.
 

“이건 전 정부 탓을 안 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할 때 600조원 정도였던 국가채무가 집권하는 동안 1000조원을 넘겼다. 광복 이후 70년간 유지해온 걸 복지 예산 확대에다 코로나 재난 지원금이니 뭐니 해 불과 5년 만에 그렇게 늘려버렸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마지노선이 40%대에서 50%대로 무너진 이유다. 한국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는 재정 건전 수준이 대외 신인도의 척도다. 우리가 두 번의 외환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국가 재정이 어느 나라보다 튼튼했기 때문이다. 야당이 반대해 무산된 ‘재정 건전화를 위한 법안’도 반드시 통과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계부채 2000조원 육박, 금리 더 내려야”

 

대출로 버텨온 영세 상인들도 빚 갚는 게 버거운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금융기관 대출 잔액이 1064조원이다. 통계 집계 이후 최대 수준이다. 다만, 이익으로도 이자를 못 갚는, 기업으로 치면 좀비 기업은 방법이 없다. 정부가 이 부분까지 케어할 순 없다. 시장 원리에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갈수록 오르는 최저임금은 물론 높은 월세도 자영업자들을 괴롭힌다.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을 무식하게 올린 후폭풍이다. 일본, 미국, 유럽 등 세계 어느 나라든지 간에 차별적 최저임금제를 시행한다. 한국은 지역은 물론 업종에 관계없이 최저임금이 같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 무차별적으로 인상하면서 가장 혜택을 본 사람이 누군가.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그 부작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부동산은 또 어떤가. 부동산은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가격이 올라도 문제, 떨어져도 문제다. 상승하든 하락하든 시장 수요에 따라 완만한 곡선을 그리도록 둬야 하는데 그걸 엉망진창으로 만들지 않았나? 그때 오른 부동산 가격과 세금 등이 월세 상승에도 영향을 줬다. 부동산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하나의 상품인데 투기 품목으로 보고 때려 잡으려고만 한 결과다. 부동산 정책은 MB 정부 때 제일 잘했다.”
 

어떤 식으로 잘했다는 말인가?
 

“그린벨트를 일부 풀어 공급을 확대하지 않았나? 자화자찬 같으니 이만 하자.”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2009년 6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2009년 6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예고했다. 적절한 조치로 보나?
 

“자영업자 등의 빚보다도 더 큰 문제가 가계부채다. GDP의 거의 100%, 2000조원 가까이 된다. 민생 안정이 시급한 만큼, 금리는 일단 더 낮출 필요는 있다고 본다. 다만, 금리 인하 시점이 조금 더 빨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인상하면서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오히려 오름세다.
 

“은행들도 경쟁 관계인 만큼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위 소비자의 신용도에 따라 이자를 차별화했을거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압박도 영향을 줬을 거다. 그러나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린 만큼 시중은행도 따라가게 돼 있다. 시간 문제란 얘기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199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물론 1500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환율은 이런 부분이 있다. 우리는 변동환율제를 쓰고 있잖나. 정부가 함부로 개입을 못한다.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면 굉장히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가 우선해야 할 정책 중 첫째가 외환시장 안정이다. 국내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끼리 해결하면 되지만 해외 일은 우리가 어떻게 손쓸 수 없다. 다행인 건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4000억 달러 이상이라는 점이다. 세계 외환 보유고 순위 9위다. 외환시장은 심리적 요인이 굉장히 크게 작용하는데, 계엄 사태 뒤에도 보유고가 별로 줄지 않았단 얘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원·달러 환율이 1570원까지 갔다. 1500원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외환 보유고 활용해 환율부터 잡아야”

 

어떤 식으로 관리해야 하나?
 

“넉넉한 외환을 이럴 때 활용해 시장과 시중에 풀어야 한다.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외환 보유고나 기업이 가진 달러를 활용해야 한다. 공급을 늘려 수요를 줄여 나가라는 얘기다.”
 

환율 급등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여파로 기업 체감 경기도 얼어붙었다.
 

“당연한 얘기다. 환율이 급등하면 수입 물가가 치솟는다. 개인에게는 생계비 부담이 증가된다. 생계비 부담이 커져 삶의 질이 저하되면 기업은 어떻게 될까? 외화 부채를 많이 쓰고 있는데 환율이 급등하면 상환 부담이 엄청나게 커질 것 아닌가. 기업은 생존 위기에 놓이게 된다. 환율 상승이 그 정도로 위험한 거다. 결국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기업, 개인이 고통을 분담하며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기업도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
 

“코스트를 절감하라는 얘기다. 일본을 예로 들자. 1985년 있었던 플라자 합의라는 말 들어 봤나? 당시 엔·달러 환율이 250엔 할 때다. 그때 일본이 제일 잘나갈 때였다. 일본인들이 미국에서 빌딩을 사들일 만큼 호황이었다. 결국 미국의 분노가 폭발했다. 미국을 건드리면 안 된다. 이건 사회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문제다. 그래서 미국이 프랑스, 서독, 영국을 뉴욕 맨해튼 플라자 호텔로 불러 엔·달러 환율을 120엔으로 반토막 내버렸다. 그럼 기업은 어떻게 되겠나? 1달러 팔면 2500원 정도 받던 걸 반으로 떨어뜨려 놨으니.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그 때 시작됐다. 일본 기업들은 고통을 분담하며 견뎠다. 원가를 절감하고 피눈물 나는 임금 삭감을 시행했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2010년 11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2010년 11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올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장 큰 요인은?
 

“저성장이다. 미국의 GDP 성장률 전망치가 2.5%인데 1.8% 가지고 되겠나? 내가 보기엔 1.8%도 안 될 것 같다. 내수는 침체됐지, 원자재 수입 가격은 오르지. 기업이 무슨 자선 단체인가? 적자 기업이 늘텐데 어떻게 고용을 늘리나. 있는 사람 유지하기도 힘든데. 지금 당장 구조조정해야 한다. 총체적 난국 현상이 1년 내내 지속될 텐데 결국 자산 없는 경제적 취약계층만 더 어려워질 것이다. 도리가 없다. 같이 허리띠 졸라 매고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난국에 빠진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투표를 잘못한 탓이다. 힘없는 경제적 취약계층이 포퓰리즘에 현혹되고 속아서 그런 정치인들을 뽑았다가 결국은 자신들만 더 어려워지는 거다. 부동산 가격 폭등하고 물가 뛰고 일자리 없어지고 경제 성장 안 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취약층 몫이다. 가진 자는 기본 자산이 있기 때문에 자산 소득도 생기고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다. 정말 안타깝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일종의 경제 행위다.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란 얘기다. 제일 중요한 것이 경제가 잘 흘러가도록 정치가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지금 거꾸로 아닌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유에 대한 그만한 책임이 따르고 선택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한다. 이게 중요한 거다.”
 

“DJ가 시도한 투자개방형 병원, 지금이라도 현실화”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교육·노동·연금 개혁은 물론 의료 개혁 추진 동력도 약해졌다.
 

“국가 장기 발전 전략 측면에서 개혁은 필수 과제다. 개혁에는 언제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고 그 효과도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개혁을 위해선 정교한 타기팅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용감하게 칼을 빼긴 했지만 세밀하진 못했다. 의사협회 등 기득권 세력의 극렬한 반대가 뻔했는데도 대비책이 허술했다. 특히 의료 개혁에 있어서 의대 정원 확대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손댈 부분이 많다.”
 

또 어떤 부분을 손 봐야 하나?
 

“투자개방형 병원 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보건복지부랑 수없이 싸운 부분이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말 그대로 외부 자본을 유치해 투자를 할 수 있는 병원을 말한다. 기업처럼 이윤을 남기면 그 이득을 투자가가 회수할 수 있는 방식이다. 김대중 정부가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해 인천경제자유구역에 투자개방형 병원 제도를 처음 도입했는데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의료법상 소위 말하는 대형병원은 비영리 법인만 설립할 수 있게 돼 있다. 부가가치가 제일 높은 게 의료산업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대형병원 원장이 새로 취임하면 다음날 아침에 뭐부터 해야 하는지 아는가? 후원금 받아오기다. 기부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대형병원도 외국 자본이나 대기업 같은 데서 정식으로 투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원칙에 맞는 것 아닌가?”
 

반대하는 명분은 뭔가?
 

“투자개방형 병원이 활성화하면 결국 부자들만 의료 혜택을 받고 가난한 사람은 병원에 가지도 못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앞세운다. 좌파들의 논리다.”
 

윤석열 정부가 공들였던 원전·방위산업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최악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사실 윤석열 정부 들어 제일 잘한 것 중 하나가 체코 원전 수주한 것 아닌가? 방위산업도 마찬가지다. 수출 좀 하겠다니까 야당에선 군사기밀 빠져나간다는 핑계로 무기 수출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으라고 한다. 야당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 정도다. 원전 사업 예산 싹 다 깎질 않나. 도대체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다.”
 

윤석열 정부 대표 사업으로 여겨졌던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도 삭감됐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대형 비즈니스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는 리스크가 상존하는 법이다. 기업만 봐도 리스크 없는 프로젝트가 어디 있나? 경제학에서 기회비용이라는 용어가 왜 있겠나. 수없이 실패하다가도 한 번 성공하면 그간 들였던 비용이 다 커버되는 법이다. 대왕고래 예산 98%, 497억원을 삭감한 건 민주당 아닌가? 정치권 행태를 보면 이제 대한민국 국운이 다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반도체 산업 뒤처지지 않으려면 주 52시간제 손 봐야”

 

야당은 윤석열 정부 들어 경제 정책 잘한 게 뭐 있느냐고 되묻는다.
 

“국민의힘이 반론을 제대로 해야 하는 대목이 이 부분이다. 양곡법 같은 것만 봐도 그렇다. 그것 때문에 서민이 얼마나 어려워지는지 아는가. 우리나라는 농업도 구조조정해야 한다. 우리가 자급자족되는 건 쌀밖에 없다. 나머지 밀, 보리, 옥수수, 콩 등 5대 곡물을 우리가 세계에서 다섯째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90% 이상 수입한다. 그래서 정부가 기존 쌀농사 짓던 걸 다른 곡물로 전환하라고 권유하고 농촌지도하는데도 농민들은 거부한다. 물론 위험 부담도 있다. 그런데 남아 도는 쌀만 자꾸 지으면 어떡하나. 여기서 포퓰리즘이 작동한다. 그걸 정부가 의무적으로 다 사주면 누가 쌀농사 그만두겠나? 결국 쌀값이 오르면 유통 과정을 거쳐 쌀 사 먹는 도시 서민이 제일 피해를 보게 된다. 이런 식으로 서민이 속는 것이다. 그뿐인가? 지금 전 세계가 반도체 산업을 두고 국가 대항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일본, 대만, 한국, 영국, 인도 등까지. 그런데 우리만 주 52시간 근무제에 묶여 있다. 하루 24시간을 넘어 50시간 불을 켜고 연구해도 경쟁에서 이길까 말까인데, 중요한 투자 의사 결정을 하는 기업 총수는 지금도 재판 받고 있다. 결국은 국민 스스로 제 발등 찍은 셈이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지난 1월 7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지난 1월 7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까지 탄핵되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기획재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올해가 근·현대사의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정부 부처 중 제일 우수한 인재가 모인 곳이 기재부다. 근무 환경이 참 어렵지만 단지 직업인으로서의 공무원이 아니라 소명 의식을 가지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줬으면 좋겠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소위 정치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 이것만은 안 된다. 오죽하면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는 서양 속담이 있겠나? 정치 원리와 경제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재부 업무만큼은 정치적 영향권에서 차단시켜줘야 된다. 그게 대통령 권한대행의 역할이고 여당이 할 일이다.”
 

트럼프 2기 시대를 맞아 ‘경제 외교’는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나.
 

“‘코리아 패싱’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국가수반 공백 상태가 오래 가선 안 된다. 다만, 너무 걱정할 것도 없다고 본다. 트럼프는 ‘상인 마인드’가 투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세계화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국가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역할은 어느 정도 부담하겠다는 각오로 나가면 된다. 방위비 올려 달라고 하면 올려 주란 얘기다. 대신 우리가 쓸 카드도 있다. 우리 방위산업이나 조선산업과 관련해 미국 쪽에서 벌써부터 협력 요청이 오지 않나. 우리가 그동안 받은 세계화의 혜택을 국제 평화를 위해 돌려준다는 각오로 임하면 된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