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열린 LG배 기왕전 결승 3국은 백을 잡은 변상일이 초반부터 크게 앞서 나갔다. 전날 반칙패의 여파 때문인지 초반부터 커제가 무리수를 남발했고, 결국 좌변에서 15집 가량의 흑 대마가 잡히고 말았다. 초반 60수가 진행되지도 않았을 때 AI 승률 그래프는 백 20집가량 우세를 가리켰다. 이후 커제의 맹렬한 추격전이 벌어졌다.
대국이 시작한 지 약 3시간 30분이 지난 시각. 변상일이 여전히 크게 유리한 상황. 커제가 우상변에서 승부수를 던졌을 때 또 사달이 일어났다. 커제가 우상변 백 한 점을 따낸 뒤 사석 통에 넣지 않고 초시계 옆 탁자 위에 두었다. 155수. 전날과 똑같은 실수이자 지난해 11월 신설된 규정을 어긴 반칙이다. 변상일은 커제의 승부수를 받지 않고 좌변 흑 대마를 잡아 버렸고, 커제는 내처 우상변 백 한 점을 또 따내며 우상 백 대마 사냥에 나섰다. 157수. 이때 잡은 돌도 커제는 사석 통에 넣지 않았다. 2회 연속 반칙. 바둑TV 중계 화면에 커제가 반칙을 범하는 장면이 정확히 포착됐다.
그로부터 약 10분 뒤 심판과 중국팀 감독, 한국기원 관계자가 커제에게 다가가 경고를 주고 대국을 중단시켰다. 159수째였다. 반칙을 한 번 범하면 경고와 함께 벌점 2점을 부여하고, 반칙을 두 번 저지르면 몰수패가 선언된다. 경고를 받자 커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화를 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심판이 반칙을 선언하기 전에 사석을 옮겼기 때문에 반칙이 아니라고 커제가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오후 1시 40분쯤, 오전 10시 결승 최종국이 시작한 지 3시간 40분쯤 지났을 때였다.
대국 중단 사태는 2시간이 훌쩍 넘게 이어졌다. 그 사이 커제는 “재대국을 원한다. 오늘은 더이상 대국을 진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한국기원 측은 “벌점 2점을 인정하고 대국을 속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몰수패를 선언하겠다”는 방침을 중국팀에 통보했다.
이윽고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각. 대국이 시작한 지 6시간이 흘렀고, 대국 중단 사태가 2시간 25분쯤 지난 시각. 커제를 비롯한 중국 선수단은 이미 대국장에서 퇴장한 상황. 손근기 심판이 나와 “벌점 2점 부여를 인정하지 않은 커제의 기권패”를 선언했다. 반칙을 2번 범해야 반칙패가 선언되는데, 벌점 부여에 항의해 대국을 속개하지 않아 기권패가 인정됐다는 뜻이다. 반칙패든, 기권패든 세계 바둑대회 결승전에서 이렇게 끝난 승부는 이전에 없었다.
바둑계는 이번 LG배 결승전 사태가 한중 바둑 외교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2일 결승 2국이 커제의 기권패로 결정 나자 중국의 바둑 관련 사이트가 한국 바둑을 비난하는 여론으로 온종일 들끓었다. 한국 바둑팬은 반대로 한국 규정을 무시하고 되레 반발한 커제와 중국 선수단을 비판하고 있다. 커제를 비롯한 중국 선수단은 내일 치러질 시상식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날 승리로 한국 랭킹 3위 변상일은 세계 대회에서 2번째 우승을 이뤘으며, 우승 상금 3억원도 차지했다. 동시에 LG배 결승전 직전 6전 전패로 일방적으로 밀렸던 커제와의 상대 전적도 2승7패로 격차를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