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성장”이 이날 회견문의 핵심 슬로건이었다. 이 대표는 정부의 기업 지원, 주식시장 활성화, 미래 산업 투자 확대 등 시장 친화적 구상을 나열하며 보수 진영이 중시해 온 ‘성장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에서 민간 주도 정부 지원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며 “기업 활동 장애 최소화”를 주장했다. “부동산보다 자본시장의 투자매력이 더 큰 사회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주식시장 선진화와 활성화가 국민을 부자로 만드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도 했다.
외교·통상 전략도 한미동맹 강화, 신흥시장 개척에 방점을 뒀다. 이 대표는 반도체 특별법, 국가기간전력망 확충법 등 현 정부가 추진해 온 입법에 대해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성장에 필요한 입법 조치도 과감하게 전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며 “저의 기본적인 입장은 실용적으로 판단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표 정책 브랜드였던 ‘기본사회’ 공약 관련해서는 “지금은 나누는 문제(분배)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성장)이 더 중요한 상황”이라며 “경제적 안정과 회복, 성장이 가장 시급해 (재검토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견은 윤석열 대통령 구속 후 이 대표가 처음으로 언론에 화두를 던지는 사실상의 조기 대선 출마 선언 자리였다. 최근 이 대표 대선 주자 지지율이 박스권을 맴돌고, 민주당 지지율이 12·3 비상계엄 이전 수준까지 하락한 상황에서 여론에 대응하는 성격도 컸다. 이 대표는 당 지지율 침체에 대해 “국민들의 뜻이니 저희로서는 겸허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 더 큰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더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 것이 우리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보수 과표집’ 등 조사기관·표본을 문제삼는 당내 시각과 사뭇 다른 입장이다. 이 대표는 사흘 전(20일) 출범해 여론 검열 논란을 빚은 당 여론조사특위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부족함이 있는지, 국민의 기대치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 (그동안은) 저항하는 야당, 약자의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강자가 제거된 갑의 위치, 우월적 위치에 있다. 민주당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정책의 방향도 심각하게 재점검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서울 서부지법 폭력 사태가 “극단주의 세력의 조직적 폭동”이라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겨냥해 “현재 국정 운영이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비판했다. 최 대행이 헌법재판관 선별 임명, 상설특검 후보 추천 의뢰를 거부하고 있다며 “국정 운영의 기본은 법을 지키는 것인데 권한 행사의 기준이 오락가락 멋대로다. 법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고도 했다.
민주당 내 가짜뉴스 신고 기관인 ‘민주파출소’가 “카톡 검열” 비판을 받는 걸 두고서도 “극단주의 세력의 가장 큰 자원이 가짜뉴스”라며 “검열은 불가능하다. 카톡 검열이라는 용어를 쓰는 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정치 보복에 대해 “절대 하면 당연히 안 된다. 절대로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도 “내란 세력을 사면할 건지 이야기를 지금 벌써 하던데 명백한 위법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 관련 질문에는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며 구체적 언급을 피해갔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고등법원의 공직선거법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했다. 오전 회견에서 “후보자 행위에 대해 허위사실을 처벌한다는 조항이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검토한다고 한다. 본인 생존을 위해 나라의 선거법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말이 되나”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의 경제 성장론에 대해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김경수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처럼 겉으로 듣기에 달콤하지만 따져보면 공허한 말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어떻게 기업을 지원할 건지 등 구체적 각론과 입법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회견 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년 내내 정치투쟁·이념투쟁에 골몰했던 이 대표가 그동안의 기조와 정반대의 말씀을 하고 계신 점이 다소 의아스럽다”며 “진정성 있는 행동이 없다면 이 대표의 기자회견은 정치적 변신이자 분장술에 불과할 것”이라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