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지난해 매출 175조원을 기록하며 4년 연속으로 최대 매출 기록을 경신했다. 반면 고환율 영향으로 영업이익은 4년만에 줄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현대차 본사 전경. 사진 현대차그룹
현대차가 지난해 매출 175조원을 올리며 역대 최대 매출 기록을 다시 썼다. 지난 2021년 첫 매출 110조원 돌파 이후 4년 연속 경신이다. 다만 영업이익은 고환율 영향으로 전년 대비 줄었다. 현대차의 연간 영업이익이 줄어든 건 지난 2020년 이후 4년만이다.
23일 현대차는 지난해 매출 175조2312억원, 영업이익 14조2396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매출은 전년(162조6636억원) 대비 7.7% 늘어 역대 최대다. 영업이익은 전년(15조1269억원) 대비 5.9% 줄며 시장전망치(14조8400억원)에 못 미쳤다. 현대차 관계자는 “급변하는 대외 환경으로 손익 변동성이 커졌지만, 북미 지역의 판매 호조와 하이브리드 확대 추세 덕분에 성장을 이어갔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현대차 매출은 고부가가치 차량이 이끌었다. 글로벌 판매량(414만2000대)은 전년(421만7000대) 대비 1.8% 줄었지만, 친환경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판매는 늘었다. 친환경차 판매는 69만5000대에서 75만7000대로 8.9% 늘었고, SUV는 전년(229만9000대) 대비 1.1% 늘어난 232만5000대가 팔렸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싼타페(7만7161대)’, 미국 최다 판매 모델은 ‘투싼(20만6126대)’이었다. 현대차는 중대형 SUV 모델을 앞세워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대 판매량(91만1805대)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대차의 전기자동차 모델 '아이오닉 5'. 현대차의 친환경차 판매량은 지난해 75만7000대로 전년(69만5000대) 대비 8.9% 늘었다. 사진 현대차그룹
영업이익의 발목을 잡은 건 낮아진 원화 값이다. 달러 당 원화 값이 떨어지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의 원화 규모가 커지지만, 달러로 계산하는 판매 보증비도 같이 늘어난다. 판매보증비는 무상 보증이나 수리 비용을 판매 시점에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환율이 수익을 악화시킨 건 매출을 집계할 땐 분기 평균 환율이 적용되지만, 판매보증비를 계산할 땐 분기 말 환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승조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은 이날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평균환율과 기말환율의 차이로 지난해 4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3200억원의 손해를 봤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달러당 평균 원화값은 1399.8원, 기말환율은 1472.5원이었다.
한편,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현대차는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차량 417만대를 팔겠단 목표를 공개했다. 올해 매출액 성장률은 3~4%, 영업이익률은 7~8%로 제시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 시장 환경 변화와 리스크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단 계획을 내놨다. 구체적으로 올해 1분기 안에 제너럴모터스(GM)와 공동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북미·중남미 시장 상용차 개발에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지난해 9월 GM과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이 20일 미 워싱턴 DC 의회 의사당 내 중앙홀(로툰다)에서 열린 4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산업 정책에 대해선 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가동을 시작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등 현지 생산시설을 활용해 무역 장벽을 회피할 수 있단 입장이다. 이 본부장은 “현지 경쟁 차종인 혼다의 ‘시빅 ’ ‘CR-V’는 캐나다와 멕시코 등에서 각각 81%, 50%를 생산하고, 토요타 ‘라브4’ ‘타코마’도 각각 53%, 100%를 미국 밖에서 생산한다”라며 “현대차는 미국에서 현지 물량의 60%를 생산하기 때문에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했다. 전기차 구매시 세제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해선 “올해까진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라며 “IRA가 폐지되더라도 HMGMA에서 하이브리드나 내연기관차를 혼류생산하는 등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국내 완성차 기업의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 강화가 예고된 상황에서 유럽 시장 수요는 정체하고 있고, 제3 시장은 비야디(BYD) 등 중국의 저가 전기차가 침투하고 있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대차의 강점인 연구·개발(R&D) 효율성을 중심으로 친환경차와 소프트웨어중심차(SDV)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삼권 기자 oh.sam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