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씩 출산지원 쏜 '갓부영'…"이런게 어른다운 노인이 할 일" [더 인터뷰]

저출생·고령화 해결나선 이중근 부영 회장 

“90세는 돼야 진짜노인…노인연령 순차 올려야”

정부가 노인 연령 상향을 추진한다. 출산장려금을 주는 기업도 늘었다. 처음 화두를 던진 인물이 이중근(84·사진) 부영그룹 회장이다. 그는 “90세는 돼야 진짜 노인”이라며 노인 연령을 연간 1세씩 올려 10년 뒤 75세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부영 본사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부영 본사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노인 연령 상향 논의를 본격화하겠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에게 신년 업무 추진계획을 보고하며 밝힌 내용이다.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이후 44년째 꿈쩍 않던 노인 연령 상향 논의를 정부가 공식화한 것이다. 이 논의의 포문을 연 이가 바로 이중근(84) 부영그룹 회장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제19대 대한노인회장으로 취임해 현재 65세인 법정 노인 연령을 75세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자고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정부가 두 달 만에 화답한 셈이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관련 브리핑에서 “지난해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이 노인 연령 상향을 제안했는데 매우 감사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저출산 문제도 먼저 발 벗고 나섰다. 지난해 초 부영그룹 시무식에서 2021년 이후 출산한 직원 66명에게 자녀 한 명당 1억원씩 총 70억원의 출산지원금을 지급해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한 것. 거액의 출산지원금에 젊은 직장인들이 환호하는 등 사회적인 반향이 컸다. 부영그룹이 ‘갓 부영’(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호평이 이어지자 주요 대기업도 가만있을 순 없었다. 기업마다 지원을 대폭 늘린 출산지원책 발표가 해를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을 최근 서울 중구 서소문동 부영그룹 본사에서 만났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한국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잇따라 ‘정면 돌파’를 택한 연유가 궁금했다.

저출산·고령화 잇따라 파격 제안'여든 넷' 이중근 회장 

-하시는 일마다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나이에 이러는 건 일종의 ‘역할론’이에요. 내 명함에는 ‘어른다운 노인’이라는 문구도 적어 놓았죠. 저출산은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고령화 문제도 지금은 먼 산 위의 작은 눈덩이 같아도 우리 눈앞까지 굴러왔을 땐 감당 못 할 정도로 커져 있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계속 일깨우고 대책을 세워야 해요.”


-얼마 전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에 진입했죠.
“이 추세면 현재 1000만 명 정도인 노인 인구가 2050년에는 2000만 명에 이릅니다. 전체 인구의 40%에 육박해요. 전체 인구 5000만 명에서 노인 2000만 명, 어린이·청소년 1000만 명을 빼면 생산 인구는 2000만 명밖에 안 됩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 손자 세대까지 노인 부양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됩니다.”

-노인 연령을 75세로 올리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노인 인구를 줄여 그만큼 생산 인구를 늘리자는 겁니다. 그러면 2050년에 노인 인구가 2000만 명이 아니라 지금과 비슷한 1200만 명 정도로 유지되는 걸로 나옵니다. 정부가 사회적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어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부영 본사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부영 본사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연금 수급 시기가 늦어지게 돼 일각에서 반발도 나옵니다.
“당장 노인 연령을 75세로 하자는 게 아니라, 연간 1세씩 단계적으로 올려서 10년 뒤에 노인 연령이 75세가 되도록 하자는 거에요. 현재 공무원이나 민간 기업도 정년을 연장하는 추세이지요. 월급은 66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첫해 40%를 받고 연 2%포인트씩 줄여 75세 때는 20%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은퇴 전 500만원 받던 사람이 75세 땐 100만원을 받게 돼요. 노인도 경제활동을 더 오래 하니 좋습니다. 연금 고갈 같은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70대 정도의 제가 만났던 분들은 ‘맞아, 우리 그렇게 늙지 않았어’ ‘일거리가 있으면 충분히 일할 수 있지’ 전부 그런 반응이었어요. ‘다 늙어 꼼짝 못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제가 대한노인회장 선거 때 노인 연령 상향 공약을 했는데 당선이 된 것도 많은 노인이 제 의견에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65세 이상도 충분히 일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전엔 60살에 회갑 잔치를, 70살에 고희연을 하며 상노인 취급했죠. 지금 시대엔 의학 발달로 70대도 건강해요. 90세는 돼야 진짜 노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도 젊어요(웃음).”

-젊은 세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산술적으로 노인 수가 적어지니까 상대적으로 부담이 줄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노인 연령이 순차적으로 오르기 때문에 젊은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 것도 아니고, 임금피크제 형태로 임금을 줄여나가니까 기업도 부담이 덜할 거로 봅니다.”

-정부도 당사자 격인 대한노인회가 먼저 제안해 기대가 큰 듯합니다.  
“다른 사람이 제안했으면 꽤 시끄러웠을 거예요. 노인회가 먼저 (노인 연령을 상향)하자고 했으니 이번엔 논의에 진전이 있지 않겠나 싶어요. 노인이 많아지면서 공경의 가치도 희석되고 있어요. 경륜과 경험이 쌓인 노인을 사회적으로 잘 활용했으면 합니다. 노인도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좀 어른스러워져야 해요.”

부영그룹, 올해도 출산지원금 23억원 이상 쏜다 

부영그룹은 지난해 2월 2021년 이후 태어난 직원 자녀 1인당 1억원을 지원했다. 이중근 회장(가운데)이 출산장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영그룹은 지난해 2월 2021년 이후 태어난 직원 자녀 1인당 1억원을 지원했다. 이중근 회장(가운데)이 출산장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회장은 고령화 문제에 앞서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파격적인 행보로 화제를 모았다. 작년 시무식에서 2021년 이후 출산한 직원 66명에게 자녀 한 명당 1억원씩 총 70억원(다둥이·연년생 2억원씩)의 출산지원금을 한 번에 지급하면서다.  

-1억원 출산지원금 지급에 대해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제가 좀 직접적으로 문제를 풀려는 스타일입니다(웃음). 어느 지자체를 보니까 돈(출산지원금 등)을 주는데 아이가 중·고등학교 갈 때까지 10년에 걸쳐 주겠다는 식이었어요. 봄에 나무를 보면 잎이 동시에 나지, 하나씩 나오지 않아요. 쓸 데는 많은데 찔끔찔끔 주는 것보다 부모에게 한번에 줘서 알아서 쓰도록 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에요. 음식도 직접 먹는 것과 냄새만 맡는 것에 큰 차이가 있듯이 직접 받아야 당사자도 ‘출산에 대한 가치가 이렇게 크구나’ 바로 느낄 수 있을 테고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보시나요. 
“국가는 국토, 국민에 의해 존재하는데 국토는 변함이 없지만 인구는 계속 줄고 있죠. 일할 사람이 부족하면 외국인을 데려올 수 있고, 물건이 없으면 수입하면 되지만 군대와 경찰을 외국인에게 맡길 수 있나요. 국가 안전과 질서 유지는 자국민이 해야 합니다. 지금 아이를 낳아야 20년 후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 인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부영의 출산지원금은 계속 지급하실 계획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다음 달 시무식 때도 출산지원금을 줄 예정이고, 회사가 현재 대상자를 추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부영그룹은 매년 입춘에 맞춰 시무식을 연다) 

-직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출산지원금 지급 후 직원들의 손편지를 많이 받았어요. 한 직원이 ‘제 자식을 낳는데 회사에서 이렇게 도와주니 너무 고맙다’고 썼더라고요. 그래서 ‘당신 자식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자식을 낳아준 겁니다’라고 답해줬어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부영 본사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부영 본사 집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실제 부영에서 직원 출산율이 올랐나요.
“직원들 임신 소식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어요(웃음). 작년 공개채용 때도 지원자가 이전 대비 5배 이상 늘었고요. 작년 출산장려금을 받은 직원 자녀가 2021~2023년생 70명으로 대략 한 해 23명이 받은 것으로 보면, 올해 대상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 같아요.(부영그룹은 올해도 23억원 이상의 출산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기업의 출산지원금을 비(非)과세하기로 정부가 법 개정에 나서 또 화제가 됐습니다.
“기존 과세방식에 따르면 1억원을 줘도 세금을 떼면 실수령액이 6000만~7000만원 정도였어요. 출산장려금에 세제 혜택을 주자는 기획서를 작성해 2년 전부터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호소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우리 회사에서 시행하고 잘 안 되면 세금 좀 얻어맞자고 했어요. 그런데 좋은 반응을 얻었고, 법 개정까지 돼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회장은 몇 년 전에도 고향 이웃, 초·중·고 동창, 군 동기·선후배 등에게도 1억원씩 준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개인 사재로만 2650억원을 기부했다. 부영그룹 차원에서도 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 등에 학교를 설립하고, 버스를 기증하는 등 지금까지 사회공헌 규모가 1조2000억원에 이른다. 

-고향에서 1억원 받은 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돈을 줘서 내가 이쁘다는 사람보다 섭섭하다는 사람이 더 많더라고요. 동창에게 주니까 선·후배들이 ‘나는 왜 안 주냐’ 식으로요(웃음). 돈을 많이 벌어도 마지막에 제가 다 못 가져간다는 것을 살면서 알고 배웠어요. 그렇다면 더불어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기부도 한국 사람이 기여해서 그분들 생활이 나아지면 부영뿐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 사업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더불어 사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거죠.” 

-작년엔 최고령으로 고려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여든 넘어서도 정정함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습니까.  
“참는 거밖에 답이 없어요. 잘 참지 못하면 끝나는 겁니다. 문자로 하면 ‘인내한다’고 하지요.” 

-40년 넘게 기업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저는 ‘어려움’이란 말은 잘 안 씁니다. 등산할 때 80~90% 오르면 소위 말하는 ‘깔딱고개’를 마주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면 등산을 안 한 게 돼버려요. 결국 올라야 정상에 도달하는데 그걸 힘들었다고 하지 않고, 저는 돌파했다고 말합니다. 다 목표(정상)를 위해 관리하고 성취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내가 말을 해도 (젊은이들이) 들어줄지 모르겠지만, 근검절약하고 조금만 더 겸손했으면 좋겠어요. 겸손은 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철에서도 지정석 갖고 다투지 말고 내 손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노소 간에 서로 조화롭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약력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고려대 대학원 행정학·법학 박사
-1992~현재 학교법인 우정학원 이사장
-1994~현재 부영그룹 회장
-1999~2001년 건국대 이사장
-2000~2004년 한국주택협회 회장
-2003~2006년 주택산업연구원 이사장
-2017~2020년 제17대 대한노인회장
-2024년 제19대 대한노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