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은 거들뿐"…치킨의 나라가 전혀 몰랐던 닭 요리의 맛

꼭 전하고 싶은 『한국전래음식』

누구에게나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그 어머니는 할머니에게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을 테고, 할머니는 또 당신의 어머니에게서 그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대를 이어 전해져오는 음식이 한국의 전래(傳來)음식이고, 한국 고유의 맛이다.

최근 발간된 『한국전래음식』(사진)은 다양한 고 문헌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래음식을 깊이 공부하고 그 배움의 결과를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한 모임 ‘한국전래음식연구회’가 공동 집필한 책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말순 고문이 있다.

사라지거나 잊힌 원형과 조리법도 재현

40년 간 한국 전래음식과 반가음식을 연구해온 ‘한국전래음식연구회’ 이말순 고문. [사진 강진주]

40년 간 한국 전래음식과 반가음식을 연구해온 ‘한국전래음식연구회’ 이말순 고문. [사진 강진주]

한국 전래 음식과 반가 음식을 집대성한 고 강인희 교수의 ‘강인희 전통음식연구회(한국의 맛 연구회 전신)’에 1986년 조교로 들어간 이 고문은 강인희 교수와 함께 전국에서 수집한 전래음식을 정리했고, 2001년 강인희 교수가 별세한 후에는 한국의 맛 연구회 일반인 수업을 맡았다. 2013년 건강상의 문제로 수업을 잠시 중단했다가 2015년부터는 한국전래음식연구회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햇수로 따져보면 무려 40년 동안 한국에서 전래되는 모든 음식의 조리 과정을 반복해 습득하고 또 반복해 가르쳤으니 그 내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식 레스토랑의 셰프와 대표, 조리과 교수와 강사, 식품 회사 연구원, 식품 관련 회사 대표와 잡지 에디터들로 구성된 회원 50여 명은 지난 8년간 매월 이말순 고문을 만나 반가음식을 중심으로 전국의 향토 음식, 궁중 음식으로 전해져오는 밥·죽을 비롯해 각종 반찬과 떡·한과·장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통 한식을 사사했다. 그중에는 현재 사라지고 있거나 이미 잊힌 원형과 조리법들도 있다. 그렇게 오랫 동안 공부하고 연구한 한식 중 131가지를 선정해 그 레시피와 정통 조리법을 정리한 책이 『한국전래음식』이다.


민어·도미 등 흰살생선 살을 다져 어알을 빚어 넣고 맑게 끓인 ‘어알탕’.

민어·도미 등 흰살생선 살을 다져 어알을 빚어 넣고 맑게 끓인 ‘어알탕’.

한국전래음식연구회 2기 회장이자 2020년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된 조희숙 셰프는 “이 책에는 우리 전래 음식의 원형이 오롯이 담겨 있다”며 “이말순  선생님은 변형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우리 음식의 모습 그대로를 지켜왔고 그 특징은 최고의 재료 선정, 한 치도 낭비 없는 재료 사용, 편법 없는 정직한 맛내기”라고 했다. 조 셰프는 또 “한 나라의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 이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축적된 결과라는 점을 생각하면 표본처럼 지켜야 하는 줄기와 뿌리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우리 식문화의 고유성을 지켜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장성 있는 동시에 신토불이를 기본으로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했다.

책은 크게 주식, 부식, 병과로 구성됐다. 주식은 밥·죽·국수·만두로 나뉜다. 부식은 국, 찌개와 전골, 찜과 선, 조림과 초, 저냐(전유어를 부르는 궁중용어), 구이, 적, 나물, 자반과 장아찌, 김치로 나뉜다. 병과는 찌고, 빚고, 치고, 지지는 떡과 한과, 포와 마른안주로 나뉜다.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음식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것들도 있다.

치킨의 나라? 전혀 몰랐던  닭 요리의 맛

설날 떡국상에 올리는 ‘장김치’. 간장으로 절이고 간을 해 독특한 맛이 난다.

설날 떡국상에 올리는 ‘장김치’. 간장으로 절이고 간을 해 독특한 맛이 난다.

한국전래음식연구회 3기 회장인 김현숙 전 우송대학교 조리학과 교수는 그중 몇 가지를 소개했다. “어알탕은 민어나 도미 같은 흰살생선의 살을 다져 양념해 어알(완자)을 빚어 넣고 끓인 맑은 국인데 교자상이나 주안상에 올리던 귀한 음식으로 맛이 산뜻하죠. 배피떡은 개성 지방의 향토 떡으로 찐 찹쌀을 쳐서 만드는데 황해도에서 주로 먹던 오쟁이떡과 유사하지만 오쟁이떡에는 붉은 팥소를 넣는 것이 다릅니다. ‘곤떡(고운 떡의 준말)’은 두 종류가 있는데, 책에서는 찹쌀가루를 익반죽해 지치(지초를 말린 자주색 염료)를 끓는 기름에 넣어 색을 추출한 붉은 기름에 지진 충청도 지방의 것을 소개했습니다.”

개성 지방의 향토 음식 ‘배피떡’.

개성 지방의 향토 음식 ‘배피떡’.

시중에는 이미 요리책이 많다. 그렇다면 『한국전래음식』은 어떤 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이 책이 나오기까지 총괄 진행을 맡은 잡지 에디터 출신의 강신혜 회원은 “한식 셰프라면 길을 잃을 때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면서 “원형, 즉 기본에 충실한 조리법을 통해 초심으로 돌아갈 힘과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 회원은 전문 셰프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이 책은 충분히 재밌고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한국을 ‘치킨의 나라’라고 할 만큼 한국인은 닭 요리를 좋아하는데 요즘의 닭 요리는 양념이 강하죠.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수계탕, 반가찜닭, 영계찜 등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닭 요리와는 전혀 다른 맛이에요. 주로 쓰는 양념인 간장은 그저 주재료의 맛 자체를 살리기 위해 받쳐주는 역할만 하죠. 단순하지만 고급스러운 닭 요리를 맛보고 나면 우리 음식의 특징이 양념이 아니고 주재료를 살리는 데 있음을 알게 돼요. 한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기는 거죠. 심봉사가 눈을 떴을 때처럼 놀랍고 감동적인 재미를 느껴보세요.”

사실 요리책의 모든 음식을 따라해 보는 사람은 없다. 다만, 『한국전래음식』이 소개하는 레시피와 조리법은 “최대한 변형 없이 한국 고유의 전래 조리법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인다. ‘예전 맛’이라는 게 대체 어떤 맛일까. 가장 기본적인 나물 무침부터 책이 소개하는 대로 만들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