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는 음식 ⑦ 시금치
특히 컨디션이 저하되고 의기소침해지는 시기가 겨울이었다. 일단 날씨가 추우면 몸이 더 고단했다. 낮이 짧고 밤이 긴 겨울의 특징도, 연말과 연초에 불현듯 찾아오는 복잡한 감정의 변화도 한몫했을 거라고 본다. 여기에 미세먼지까지 입혀진 무거운 공기의 압력이 나를 누르기라도 하면 무기력함과 피로함은 배가 됐다. 나는 의기소침한 일상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원래의 활력과 텐션을 되찾기 위해, 또 몸의 장기 중에 가장 취약했던 ‘간의 회복’을 위해 녹색 채소를 찾아 먹기로 했다. 당시 심사숙고하며 고른 재료가 바로 ‘시금치’다. 그렇게 나는 겨울마다, 의기소침할 때마다 시금치를 항상 곁에 두고 먹었다.
간을 정화하는 한겨울의 초록색 시금치
인도의 전통의학 체계인 아유르베다에서는 “시금치의 쓴맛과 차가운 성질이 소화를 돕고 간을 정화해, 해독과 항염증의 효능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 “시금치의 가벼운 성질이 혈액 순환을 돕고 신체의 소화 흐름을 촉진하며, 몸과 마음에 경쾌함을 준다”라고도 말한다. 실제로 시금치의 초록색을 내는 엽록소는 간을 정화하고 체내 독소와 유해 물질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다. 또 시금치의 비타민 C는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해 면역력을 강화해 주고,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는 베타카로틴은 간과 눈 건강에 도움을 준다. 그 밖에도 시금치의 철분은 혈액의 생성을 촉진하며, 식이섬유는 변비를 예방하고 장 건강을 개선해 소화를 돕는다. 마지막으로 마그네슘은 에너지 대사와 신경 자극, 그리고 근육 수축 시 필요한 영양소다.
앞서 말했듯, 아유르베다에서는 시금치의 성질이 가볍다고 정의한다. 반면, 아유르베다에서 말하는 나의 체질은 ‘무거워지기 쉽고 잘 쌓는 체질’이다. ‘살이 찌기 쉬운 체질’이란 뜻인데, 이런 내게 시금치의 가벼운 성질은 몸의 균형점을 찾는 여정에 많은 도움을 줬다.
시금치・레몬 넣은 ‘그린스무디’로 밝은 에너지 채우기
시금치를 섭취할 때 자주 활용한 메뉴는 스무디다. 시금치·아보카도·레몬 등을 넣고 만든 ‘그린 스무디’인데, 생으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고 재료를 잘게 부수어 먹기 때문에 소화도 잘된다. 주의할 점도 있다. 시금치를 생으로 먹을 때는 결석 등의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꼭 레몬즙과 함께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볍고 차가운 성질을 가진 시금치는 따뜻하게 데워서 기름과 함께 섭취하면 소화가 잘되는 것은 물론이고 영양소 흡수에도 더 좋다. 시금치와 버섯·양파를 올리브유에 볶다가 달걀물을 부어 만든 시금치오믈렛은 아침 식사로 자주 애용하던 메뉴다. 조금 색다른 맛을 원할 때는 시금치에 생강·캐슈넛을 넣고 볶거나, 시금치·바질·올리브유·견과·마늘·레몬즙을 넣은 시금치 페스토를 만들어 통밀빵에 발라 먹기도 했다.
시금치를 곁에 두고 먹은 지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나니, 차갑고 척박했던 몸과 마음에도 어느새 초록의 싱그러움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체력이 좋아지면 마음의 의기소침함도 옅어진다. 한겨울 차가운 땅에서도 진한 초록색 잎을 피우는 시금치가 내게 따뜻한 에너지를 전달해준 게 분명하다.
정성희 영양사 cook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