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글로벌 영화계에서는 마블(Marvel) 스튜디오의 수퍼히어로들이 큰 흐름을 형성했다.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헐크, 토르 등 소위 ‘어벤저스(Avengers)’를 구성하는 초능력자들을 내세운 영화들이 차례차례 발표될 때마다 마블과 디즈니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2019년에는 그때까지 나온 모든 수퍼히어로들이 함께 등장해 우주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발표되면서 시리즈가 일단락되었다. ‘어벤저스’ 시리즈의 악당 타노스. [사진 영화사]
당시 어벤저스의 인기가 워낙 대단해서 MCU(Marvel Cinematic Universe)라는 용어가 보편화할 정도였는데, 이것은 마블 영화들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세계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파이더맨이 주인공인 영화에 아이언맨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엔드게임’에서 수퍼히어로들이 총출동하는 것은 이 MCU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혼자서도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수퍼히어로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만 대적할 수 있는 악당이 과연 존재할까? MCU의 답은 ‘타노스’였다. 우주가 탄생할 때 여섯 개의 ‘인피니티 스톤’이 생겨났고 이것이 각자 제자리에 있어야 세상 만물이 바르게 움직이는데, 이걸 한 사람이 다 가지면 전능한 신처럼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된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와 유사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타노스가 이 스톤 여섯 개를 모두 손에 넣은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온 우주의 모든 생명 중 절반을 없애기 위해서다. 타노스가 보기에 이 세상에는 우주의 시스템과 자원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인간, 너무 많은 생명이 있다. 따라서 생명을 절반으로 줄여 우주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보자는 착상을 한 것이다. 수단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탈이지, 지향하는 바 자체는 숭고한(?!) 악당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그런데 이런 발상, 뭔가 상당히 익숙하지 않은가.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가족계획 캠페인을 강력하게 벌일 때 온 국민의 마음 속에는 이와 비슷한 생각이 있었다. ‘잘살아보세’가 큰 공감을 얻던 가난한 시절, 1인당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촉진해 분자에 있는 국민소득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구증가율을 낮춰 분모에 있는 머릿수를 줄이는 것도 상당히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 오죽하면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과격한 표어가 등장했을까.
경제학자이자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 농업생산성 향상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의 생활여건은 장기적으로 생존만 가능한 수준에 머문다는 인구론을 폈다. [사진 위키백과]
근대경제학이 태동할 무렵 이런 생각을 체계화해서 지금까지 이름을 남긴 경제학자가 토머스 맬서스다. 그가 1798년에 초판을 내놓은 『인구론』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농업생산성은 일반적으로 천천히 조금씩 높아진다. 뭔가 혁명적이고 엄청난 기술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올해 수확량은 작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늘어난 수준일 것이다. 그래프로 그린다면 선형으로 나타나는 1차함수다. 그런데 인구는, 부부 한 쌍이 아이 넷을 낳으면 한 세대만에 2배로 늘어나는 셈이니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면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은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이게 어느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결국 누군가는 굶어죽기 시작한다. 이렇게 사람 수가 줄어들면, 살아남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식량 사정이 조금 나아진다. 그러면 또다시 인구가 식량보다 빨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결국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생활 여건은 간신히 생존만 가능한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된다. 오늘날에도 자주 쓰이는 ‘생존 수준’(subsistence level)이라는 용어가 여기서 등장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은 딱 생존에 필요한 만큼보다 많아질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 맬서스는 경제학이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는 오명을 얻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리고 이 이론을 그대로 물려받은 타노스는 맬서스의 21세기 마블판(版) 현신(現身)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노스, 생명 절반 없애야 한다 생각 맬서스의 인구론은 워낙 단순하면서도 논리가 강력해서, 20세기 중반 정도까지는 반박하기 어려운 명제였다. 그런데 20세기에 질소비료가 보급되고 영농의 기계화가 확산되면서 농업생산성이 급격하게 높아진 결과, 우리가 ‘인구 폭발’을 걱정할 만큼 전 세계 인구가 급증하는 일이 벌어졌다. 1950년 무렵 25억 명 정도였던 세계 인구가 20세기말에 60억 명까지 불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맬서스에 대한 관심도 차츰 약해졌고, 결국 마이클 크레머(사진)라는 경제학자가 나서서 정식으로 맬서스에게 반기를 들었다. 맬서스 이론이 맞다면, 인구가 많은 사회에서는 식량과 자원이 부족해져서 인구증가율이 낮아지고, 인구가 적은 사회에서는 반대로 인구증가율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크레머가 자료를 보니 그 반대였던 것이다! 크레머의 1993년 논문에 따르면, 인류의 아주 오랜 역사에 걸쳐서, 인구증가율이나 경제성장률은 인구 크기에 비례한다. 즉, 인구가 많은 사회에서 인구가 더 빠르게 늘고 경제성장도 더 빨랐다는 얘기다. 크레머는 이 현상의 원인을 기술혁신에서 찾았다. 생산기술을 한 단계 확 높일 만한 혁신을 일으키는 것은 과학자나 기술자, 아주 보기드문 천재, 이런 사람들인데, 인구가 많은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이 나타날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이나 지식은 식량과 달라서, 한 사람이 연구하고 개발해 놓으면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나눠 쓸 수 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지식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반복적으로 사용해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헨리 포드가 20세기 초에 도입한 컨베이어 벨트라는 혁신적인 생산방식은 21세기인 지금도 대부분의 제조업 공정에서 쓰이고, 이 지식을 10억 명이 사용하든 80억 명이 사용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혁신가 한 명만 있으면 그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장속도가 빨라질 수 있는 것이고, 이런 혁신가가 태어날 확률은 인구가 많아지면 점점 높아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3차,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정보기술 혁신, 그 중심이 되고 있는 반도체와 컴퓨터, 스마트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플랫폼 산업, 인공지능 등은 20세기 후반부터 주로 미국에서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흔히 실리콘밸리와 같은 혁신 클러스터의 존재, 벤처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투자자들, 세계 최고의 연구환경을 갖춘 대학의 우수성 등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크레머에 따르면 미국 인구가 3억 명이 넘는다는 것 역시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쉽게 말해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 태어날 확률 자체가 한국의 여섯 배라는 얘기다.
한국도 20세기 후반 산아제한 정책 그러면 크레머가 맬서스 이론을 완전히 뒤집은 것일까. 타노스가 나타났을 때 어벤저스가 달려가서 사생결단 싸우는 것이 아니라 크레머가 만나서 조용히 설득했으면 되는 것이었나.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맬서스와 크레머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아주 장기적인 확률에 대한 이론들이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인구 대국들이 최근 빠르게 성장해 오긴 했지만, 인구가 꽤 많으면서도 성장이 아주 저조한 국가도 여럿 있다. 또 자연재해나 병충해 등으로 농업생산이 타격을 입으면 단기적으로는 아무래도 인구가 많은 나라가 더 어려움을 겪게 되고, 흑사병이나 세계대전 등으로 인구가 감소한 다음에는 인구증가율이나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곤 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는 맬서스와 크레머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맬서스 식의 비관론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인구가 많아지면 먹일 입이 많아졌다고 걱정하기보다는 천재가 태어날 확률이 높아졌다고 기뻐하고, 능력있는 인재가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혁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뒷받침해 주면 되는 것이 아니겠나. 경제학은 더이상 우울한 학문이 아니다.
이태환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주변의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으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SERICEO에서 5년 간 ‘세상만사 경제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