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부산역광장에서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국가비상기도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극우(極右)인가 아닌가. 1일 부산역 앞에 모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바라보는 여야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한 이날 집회에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찰 추산 1만 3000명, 주최측 추산 5만여명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우산을 쓰고 “계엄 합법, 탄핵 무효”, “탄핵 폭주, 내란 선동 STOP” 등을 외쳤다. 박수영·김미애 국민의힘 의원과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 보수 유튜버 그라운드C(본명 김성원) 등이 연사였다.
공무원 수험생들에게 ‘일타 강사’로 알려진 전씨는 “비상계엄 직후 10%대였던 대통령 지지율이 50일간 탄핵정국 속에서도 50%까지 올라왔다. 지지율이 올라간다면 헌법재판관들은 탄핵 인용을 선고할 수 없다”며 “(계엄령은) 언론의 편파 보도, 헌법재판소의 실체까지 알게 된 ‘계몽령’”이라고 연설했다. 여당 의원들은 “주변 도로는 물론 건물의 옥상까지 빼곡했다”(박수영 의원), “부산역 지상, 지하, 역사 1,2층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김미애 의원)는 글과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뉴스1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2일 “극우세력과 함께 한 국민의힘이 극우의 늪에 빠지고 있다. 이성 회복을 강력히 촉구한다”(노종면 원내대변인)고 논평했다. 노 대변인은 “국민의힘 의원들까지 참석한 집회에서 헌법재판소를 향한 노골적인 협박과 폭력 선동 발언이 난무했다. 국민을 참칭한 극우 선동”이라며 “꼭두각시든 배후이든 국민의힘이 극우와 손잡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로 보인다”고 했다.
민주당 김윤덕 사무총장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민의힘은 사법부 무력화 시도와 탄핵 불복 빌드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내란 동조, 폭동 옹호에 이어 사법부에 대한 모략과 불복까지 극우 선동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사회적 질서와 제도 유지는 보수의 핵심 가치다. 지금이라도 정상적인 보수정당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도 했다.
부산역 집회 등 일련의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운동은 극우 세력의 결집이라는 게 민주당 지도부의 공통된 인식이다. 민주당은 최근 여론조사상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과 여야 정당 지지율 경합을 설명하는 데 이 시각을 활용하고 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보수가 뉴라이트를 넘어 망상성과 폭력성이 드러난 전광훈식 극단주의, 테러, 파시즘과 결합될 수 있는 극우화의 조짐이 보인다”며 “이런 극우화 흐름은 여론조사상 중도층 지지확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1일 부산역 집회에 참석해 연설 중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 사진 박수영 의원 페이스북
하지만 국민의힘은 “국민 40%가 극우로 보이면 혹시 내가 극좌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장인 이상휘 의원은 2일 “MBC 등 민주당을 추종하는 일부 언론사가 거대한 민심을 ‘극우’라는 한 마디로 매도하고 있다. 전형적인 극우몰이”라며 “생각이 다른 사람을 극우로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 파시즘이고 극우”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옹호나 탄핵 무효 주장을 당론으로 할 수는 없지만, 최근의 지지율 수치와 집회 규모·양상을 볼 때 “집회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이 여당 의원들 사이에 생겨나는 분위기다. 부산의 전직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특히 이번 부산역 집회를 극우로 몰아가는 건 민심을 대단히 오독하는 것”이라며 “거기 모인 사람들 사이에 아스팔트 보수냐, 중도 보수냐 하는 경계가 없다. 이재명 민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위기감과 분노로 당원 아닌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진영 전반의 반(反) 이재명 정서가 집회를 키우고 있다는 해석이다.
역사상 극우는 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즘처럼 국수적 민족주의와 폭력성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최근 보수 집회의 구호는 제도 수호나 법규 준수와 같은 전통적 우익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굳이 정의하자면 극우보다는 ‘극단주의’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정치학)는 “조기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은 극우 프레임으로, 국민의힘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당리당략만 취하려 한다”며 “여야 공히 갈등을 조장하고 적과 나를 구분하는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