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선서 사라진 북한군…'떼죽음'에 퇴각? 증원 준비?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전선에서 물러났다는 정보당국의 판단이 나온 가운데 대규모 사상자 발생으로 일시 퇴각을 했거나 병력 교대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의 종전 협상 논의를 면밀히 살피며 추가 파병 카드를 만지작거릴 것으로 관측된다.

우크라이나 전투기가 지난 2일(현지시간) 도네츠크주 상공을 날아가는 모습.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투기가 지난 2일(현지시간) 도네츠크주 상공을 날아가는 모습. AFP=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은 3일 중앙일보에 "지난달 중순부터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된 북한군이 전투에 참여하는 동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상자가 다수 발생한 것이 하나의 이유일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사항은 계속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도 이날 중앙일보에 "북한군 병력 손실이 상당하다 보니 최근엔 전선 투입이 주춤하는 모양새"라며 "다만 추가 파병을 위한 숨고르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0~3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 외신도 러시아를 도와 우크라이나군과 싸우던 북한군이 최근 전선에서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지난달 30일 익명의 당국자를 인용해 "지난 2주간 북한군이 전선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달 31일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 유로마이단 프레스에 따르면 이반 티모츠코 우크라이나 지상군 예비군협의회 의장은 북한군의 전선 퇴각과 관련해 "단지 재편성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또 "살아남은 병력은 훈련을 받거나 전선으로 다시 배치돼 증원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러시아 크렘린궁은 관련 언급을 거부했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당국에 생포된 북한군이 침상에 누운 채로 우크라이나 조사관의 질문에 한국어 통역을 거쳐 답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X(엑스) 캡처

지난달 우크라이나 당국에 생포된 북한군이 침상에 누운 채로 우크라이나 조사관의 질문에 한국어 통역을 거쳐 답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X(엑스) 캡처

 
북한은 지난해 11월 약 1만 1000여명의 병력을 러시아에 보냈다. 정보당국 판단에 따르면 이중 약 3분의1인 3000여명이 격전지인 쿠르스크에서 죽거나 다쳤다. 사상자가 대거 속출하자 병력 손실과 내부 동요를 우려해 일단 전선에서 부대를 뺀 것이란 관측과 추가 파병과 전열 재정비를 위해 숨고르기를 하는 거란 관측이 정부 내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이와 관련,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당초 쿠르스크에서 북한군을 동원해 실행하려던 작전이 마무리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추가 파병 문제는 북·러가 이미 어느 정도 합의했겠지만, 향후 전황과 트럼프 변수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트럼프가 종전을 추진하려면 북한군 파병 철회는 당연히 사전에 전제돼야 한다"면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 군인 2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 X (엑스)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 군인 2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 X (엑스) 캡처

북한이 전격 파병을 통해 러시아의 숨통을 틔워준 결과 최근 전황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북한군이 쿠르스크에서 인해전술에 동원된 사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공세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는 현재 쿠르스크의 절반 이상을, 도네츠크·루한스크주 등 돈바스의 80% 이상을 장악한 상태다. 외교 소식통은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뺏겼던 쿠르스크를 완전히 탈환하고 돈바스 전역으로 영토를 넓힌 뒤에야 종전 협상에 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파병된 북한군이 러시아가 상실한 영토인 쿠르스크 지역에서만 작전을 수행하는 것도 지난해 6월 북·러가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따른 조치라는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약 4조는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으면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인 쿠르스크를 점령한 걸 '무력 침공'으로 간주할 여지가 있다. 북한군이 돈바스 지역까지 투입되지 않는 것은 "합법적 조약과 국제법에 따른 정당한 조치"라는 주장을 하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푸틴이 임박한 종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도록 김정은이 역할을 톡톡히 한 만큼 이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제공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북한이 원하는 선물 리스트에는 한·미에 비해 열세인 공군력 보강을 위한 기술, 2023년 11월 첫 발사에는 성공했지만 최근 부진한 군사정찰위성 관련 기술,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에 필수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지난해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당분간 정상외교가 멈춰선 한국으로선 러시아가 핵심 기술 이전이라는 ‘레드 라인’을 넘지 않도록 철저히 방어하는 게 최선의 외교 전략이 됐다. 지난달 31일 탄핵 정국 와중에도 신임 주우크라이나 대사에 러시아통인 박기창 전 주러시아 공사를 발탁한 것도 대우크라이나 외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러시아 역시 한국의 탄핵 정국 이후를 내다보면서 종전 후 한·러 관계를 정상 궤도로 복원하려는 계산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달 24일 외무부 홈페이지를 통해 "전례 없는 한국의 국내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러시아와 관계 정상화에 관심 있는 합법적인 당국과 한반도 긴장 완화 문제를 포함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