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한 편 20만원 육박에 '회전문 관객'도 주저...'티켓플레이션' 어디까지

직장인 김수지(44) 씨는 새해를 맞아 중학생 딸과 함께 뮤지컬 ‘알라딘’을 보려던 계획을 접었다. 둘이 이 작품을 보려면 40만원가량의 돈을 지출해야해서다. 김씨는 “‘알라딘’ 영화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뮤지컬도 기대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선뜻 예약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라며 “뮤지컬 가격이 순식간에 2만~3만원은 더 비싸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뮤지컬 '알라딘' 무대. 이 공연의 티켓 최고 가격은 한때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5만원을 훌쩍 넘겨 2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사진 에스앤코

뮤지컬 '알라딘' 무대. 이 공연의 티켓 최고 가격은 한때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5만원을 훌쩍 넘겨 2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사진 에스앤코

 
공연 가격이 오르는 ‘티켓플레이션(티켓+인플레이션)’이 이어지며 관객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공연예술관람료는 1년 전보다 2.9%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6%)을 훌쩍 넘어선다.

공연예술관람료는 지난 2023년 1~3분기에 전년 동 분기보다 5.9%씩 올랐다. 코로나 19 창궐 기간 억눌렸던 관람객들의 ‘보복 소비’ 바람을 타고 공연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푯값도 치솟았다. 지난해 상반기 상승세가 주춤했지만 같은 해 3분기(1.4%)와 4분기 들어 오름폭이 커지는 모양새다.

체감 부담은 숫자 이상이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진 최고가 15만원 선이 깨진 대형 뮤지컬의 최고 가격은 16만~17만원이 대세. 곧 ‘20만원 시대’가 열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알라딘’의 최고가는 19만원이다. ‘지킬앤하이드’와 ‘웃는 남자’는 각각 17만원이다. 비싼 표가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늘고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뮤지컬 판매 티켓 중 가격 15만원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10%에 이른다. 지난해 4분기로 시계를 좁히면 이 비율이 13%로 올라간다.

공연 기간이 짧은 아이돌 가수나 해외 유명 발레단 등의 공연 가격은 더 비싸다. 이달 28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그룹 BTS 멤버 제이홉의 첫 솔로 월드투어 최고가는 22만원이다. 오는 7월 4~6일 서울 공연 예정인 ‘영국 로열 발레 : 더 퍼스트 갈라’ 최고가는 28만원으로 책정됐다.

유명 배우 출연 등의 영향으로 연극 티켓 가격도 크게 올라 10만원 선에 근접했다. 최고 가격이 8만8000원인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사진 쇼앤텔플레이, T2N 미디어

유명 배우 출연 등의 영향으로 연극 티켓 가격도 크게 올라 10만원 선에 근접했다. 최고 가격이 8만8000원인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사진 쇼앤텔플레이, T2N 미디어

 
비교적 저렴했던 연극 역시 좋은 좌석에서 관람하려면 10만원 가까운 티켓 값을 지불해야 한다. 현재 상영 중인 ‘세일즈맨의 죽음’, ‘바닷마을 다이어리’ 티켓의 최고가는 8만8000원이다. 지난해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의 연극은 티켓 최고가 10만원을 넘겼다.

이에 충성도가 높아 한국 공연 시장 성장의 원동력으로 평가받는 ‘회전문 관객(같은 작품을 반복해 관람하는 관객)’도 티켓 구매를 주저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직장인 윤기주(42) 씨는 “같은 작품을 2번, 3번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요즘은 무작정 ‘N차 관람(여러 번 관람)’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며 “후기를 더 꼼꼼히 보고 배우 조합은 더 신중하게 따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충성 관객의 가격 민감도가 훨씬 커졌음이 피부로 느껴진다”며 “가격 상승에 부담을 느끼는 관객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가뜩이나 경기 부진 장기화 여파로 소비자 지갑이 얇아지는 상황에서 공연 가격 고공 행진은 자칫 한국 공연계의 성장세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공연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가 불황과 소비 위축 타개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지난달 21일 ‘2025시즌 사업발표회’에서 “올해를 준비하며 가장 큰 걱정은 경제적 불황과 소비심리 위축”이라고 토로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시장 위축 신호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KOPIS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티켓 전체 판매액은 465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 늘었지만, 티켓 판매 수(784만건)는 되려 전년 대비 2.4% 감소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제작사들은 속을 끓이고 있다. 무작정 가격을 올리기도 어려운데 제작 비용은 늘어나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급격히 떨어진 원화 가치가 골칫거리다. 지난해 초 1300원 초반이던 달러당 원화값은 최근 1400원 후반대까지 내려갔다.(환율은 상승) 공연업계 관계자는 “개런티와 같이 해외로 지불해야 하는 돈의 부담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공연관람료 상승이 한국의 일만은 아니다. 지난 2023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부터 스포츠 경기 등 오락 비용이 급등했다”며 재미를 뜻하는 ‘펀(Fun)’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펀플레이션’이란 용어를 썼다.

이럴 때일수록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뮤지컬의 경우 영미권의 액면가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국민소득 수준 차이로 한국의 체감 티켓 가격이 더 높을 것”이라며 “스타 배우 의존도를 줄이면서 작품의 경쟁력을 향상하고 장기 상연을 통해 제작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가격 문제를 제작사 등의 몫으로만 남기지 말고 가격 인하가 가능한 여건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