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한국사 ‘일타 강사’ 전한길씨를 두고 국민의힘의 속내가 복잡하다. “비상계엄은 계몽령”이라는 전씨가 보수층을 결집하자 그와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하고 전씨가 연사로 등장한 지난 1일 부산역 집회에는 경찰 추산 1만 3000여 명의 윤 대통령 지지자가 모였다. 전씨는 이 자리에서 “(비상계엄은) 언론의 편파 보도, 헌법재판소의 실체까지 알게 된 계몽령”이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꽃보다 전한길’에 직접 올린 이날 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수 121만회(3일 오후 4시 30분 기준)를 기록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반대’는 껴안으면서도 ‘계엄 찬성’과는 선을 긋던 국민의힘은 전씨의 등장에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아스팔트 우파’를 상징하던 전광훈 목사와는 줄곧 거리를 둬왔다. 하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대중적 파급력이 큰 전씨의 등장에 내부 분위기가 엇갈리고 있다.
영남 의원 사이에선 “설 연휴 내내 지역구에서 전한길씨 연설이 화제였다”, “목말라하던 지지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해줬다” 등 전씨에 대한 긍정 평가가 적지 않다. 반면 한 비례대표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 108명을 다 모아도 전한길 한 사람보다 울림을 만들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자조도 내비쳤다. 또 다른 비례대표 의원은 “국민의힘이 광장에 나가서 집회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 전씨가 참석한 부산 집회에 등장한 의원도 여럿이다. 박수영 의원(부산 남갑)은 “빗속인데도 주변 도로는 물론 건물의 옥상까지 빼곡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김미애 의원(부산 해운대을)도 페이스북에 “부산역 지상, 지하, 역사 1·2층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며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 이렇게 시민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고 적었다. 부산 의원뿐 아니라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윤상현(인천 동·미추홀을) 의원과 조정훈(서울 마포갑) 의원도 집회에 참석했다.
강성 지지층이 모이는 집회에 국민의힘 의원이 얼굴을 내비치는 모습은 최근 잇따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회복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2일 발표된 한국갤럽·세계일보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8%를 기록해 더불어민주당(41%)과 오차범위 내의 접전을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는 3일 기자들과 만나 “당 지도부가 아닌 개별 의원 차원에서 (집회에) 가는 것”이라면서도 “국민 30~40%가 탄핵에 반대하는데, (그들과) 같이 가지 않는다는 것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물밑에선 강경 여론에 휩쓸리는 당 분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이날 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은 이미 자유통일당에 포위돼 있는 분”이라며 “‘합법 계엄’이라는 피켓을 든 그분들(부산역 집회 참가자)과 결별하지 않으면 국민의힘이 어떻게 선거를 치르겠냐”고 지적했다. 원내 관계자는 “지금은 다들 흥분한 감정의 과잉 상태”라며 “특정 종교와 결합한 광장 정치는 중도 확장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