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내 친노무현(친노) 그룹의 잠재적 대선 주자들이 4일 동시에 “이재명 대표가 개헌 추진에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전날 전해진 국민의힘이 주호영 국회 의장이 이끄는 당내 개헌특별위원회를 발족키로 했다는 소식과 맞물려, 개헌과 거리를 둬 온 이 대표가 안팎에서 압박을 받는 모양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출신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4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탄핵의 종착지는 이 땅에 내란과 계엄이 다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지사는 “내란 이전에는 대통령제, 책임총리제, 내각제 같은 권력 구조에 관한 것이 개헌의 주요 쟁점이었으나, 내란 이후는 불법적 계엄을 어떻게 원천적으로 방지할 것인지가 더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며 ▶대통령 권력 분산 ▶견제·균형 시스템 강화 ▶5·18 광주항쟁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등을 개헌 과제로 열거했다.
김 전 지사는 “개헌에 신중한 이 대표의 고뇌를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정치권은 책임 있게 탄핵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며 “이 대표께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개헌 추진에 앞장서 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도 “(대통령 권력을 분산한) 그 제도 위에 새 정부가 출범해야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이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정부 출범 전 개헌’ 주장으로 대선 전 개헌은 불가능하다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달 7일 서울 중구 서소문네오스테이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도 개헌론에 힘을 보탰다. 이 전 총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대한민국 재설계가 필요하다. 낡고 무능한 정치를 끝내야 한다”며 “51 대 49의 피투성이 선거가 아니라 70 대 30의 국민연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장은 특히 “민주당은 탄핵 찬성이 70%에서 59%로 하락한 원인을 파악하고 극복해야 한다. ‘나라를 마음대로 할 것’이라는 불신을 주면 안 된다”면서 “대선 승리를 위해 개헌을 능동적으로 밀고 가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장 역시 ▶계엄 폐지 또는 전시(戰時) 한정 ▶국민 행복추구권 구체화 ▶대통령 거부권 행사 제한 ▶국회 세종시 이전 등 자신이 구상한 개헌의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했다. 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선 당시 최소한의 개헌 조항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라며 “40일이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간 민주당에선 김부겸 전 국무총리나 김동연 경기지사 등 일부 대선 후보들과 원로 그룹이 개헌론을 펴왔지만, 이 대표가 지난달 23일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고 선을 그으면서 당내 논의는 멈춘 상태였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여권발 개헌론에 분명히 정략적인 측면은 있다”면서도 “친노 그룹까지 개헌을 얘기하는 상황에선 이 대표도 조만간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