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이례적 경영실태평가…우리금융, 보험사 인수 암초되나

KB국민‧우리‧NH농협은행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정기검사 결과 3개 은행에서 3800억원대의 부당대출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전임 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등이 드러난 우리은행에 대해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경영실태평가 결과를 내놓기로 했다. 새로 부여한 경영평가 등급을 토대로 우리금융지주가 추진하는 동양·ABL생명 인수·합병(M&A) 적정성을 따진다. 우리금융의 주력 M&A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부적정 대출 규모 4000억원대 육박

금감원이 4일 발표한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국민·농협은행에서 적발한 부당대출은 총 482건, 3875억원 규모다. 부당대출 규모는 우리은행이 2334억원(101건)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892억원‧291건), 농협은행(649억원‧90건) 순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손태승 전 지주 회장의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이 730억원에 달했다. 금감원은 “이 중 451억원(61.8%)이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경영진 취임 이후 취급됐다”고 설명했다. 현 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국민은행에선 영업점 팀장이 시행사와 브로커의 작업대출을 도와 허위 매매계약서를 기반으로 대출이 쉬운 업종으로 변경하도록 유도한 사례 등이 적발됐다. 농협은행에선 감정평가액을 부풀리거나 허위의 대출자 명의로 분할해 대출을 승인하고 금품을 수수하는 일도 있었다.

금감원은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실적 우선주의를 지적했다.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평가 방식으로 인해 건전성 관리가 느슨해지고 불건전 업무 행태가 반복됐다는 취지다. 실제 KB‧우리금융지주는 계열 신탁사에서 손실이 발생하는데도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왔다. 이를 모두 반영하면 금융지주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0.1~0.2%포인트 하락한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경영진 등이 단기 고수익‧고위험을 추구하도록 유인구조가 설계됨에 따라 건전성 및 리스크 관리 장치 작동되기 어려웠다”며 “대형 부당대출 금융사고 등은 특정 금융사나 소수 임직원의 문제가 아닌 금융권 전반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2024년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2024년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3등급 땐 보험사 인수 차질

이번 검사 결과는 우리금융이 추진하는 동양·ABL생명보험 인수의 변수로 작용할 예정이다. 우리금융이 지난달 보험사 인수를 신청하면서 금융당국이 심사하고 있는데 이번 검사에 따른 경영실태평가 결과를 심사에 반영키로 해서다. 금융당국 규정에 따르면 금융지주의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2등급 이상이어야 자회사 편입이 가능하다.

금감원이 이번 검사에서 우리금융의 내부통제 부실을 대대적으로 지적한 만큼 당초 2등급이었던 평가등급이 3등급으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원장은 “2월 중에라도 금융위에 M&A 심사 결과를 송부할 수 있도록 경영실태평가를 최대한 빨리 도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부실한 내부 통제나 불건전한 조직 문화에 대해 상을 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4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4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2년6개월 걸리던 경영평가, 2개월로 

통상 금감원이 정기검사를 마치고 경영실태평가 결과를 내기까진 약 1년이 소요된다. 우리금융이 경영평가에서 2등급을 받은 건 지난해 7월인데, 2022년 1월 마친 정기검사의 결과로 2년 6개월이 소요됐다. 이번엔 지난해 12월 정기검사를 마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2달여 만에 평가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뜻이다. 이전 사례를 고려할 때 졸속 평가거나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를 겨냥한 평가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검사를 진행했고 M&A가 접수된 상황에서 검사 결과를 반영하는 게 순리에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우리금융과 보험사의 인수 계약 시한은 오는 8월까지인데 그전에 금융당국에 의해 제동이 걸릴 경우 우리금융은 계약금(인수가의 10%)으로 지급한 약 1500억원을 돌려받지 못 한다. 동양‧ABL생명의 대주주인 중국 다자보험그룹 입장에선 금융당국 절차로 인해 매각이 지연‧무산된 데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앞선 론스타 사태와 같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우리금융의 경영평가 결과가 3등급으로 하향되더라도 금융위 판단에 따라 보험사 인수 허가가 날 수 있다. 자본금 증액 등을 전제로 금융위가 조건부로 인수를 승인하는 예외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위에서 인정하는 경우 예외 조건에 따라 인·허가가 가능하다”며 “결국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건 금융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