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힘 커질라 VS 탄핵 힘 꺼질라…여야 '5만 대구집회' 딜레마 [view]

주말 광장이 심상찮다. 특히 영남이 그렇다. 일주일 전 부산역 앞을 꽉 채웠던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인파가 8일엔 동대구역 일대 지축을 흔들다시피 했다. 주최 측 추산 15만명까진 아니어도, 경찰 추산으로도 5만2000여명이 운집해 부산역 앞 1만3000여명의 네 배로 불었다. 같은 날 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인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모인 인원은 5000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참여 독려에도 동대구역 인파 10분의 1이 안 됐다. 민주당은 “극우 충성 다짐”이라면서도 광장 정치를 재점화할 조짐이다.

 한국사 '일타 강사' 전한길이 8일 오후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대구=뉴스1

한국사 '일타 강사' 전한길이 8일 오후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대구=뉴스1

 
PK(부산·경남)에서 탄핵 반대 여론의 위력을 확인한 보수 진영이 TK(대구·경북)에선 더 큰 자신감을 갖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 탄핵 국면이 변곡점을 맞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집회가 열린 8일 오후 2시 동대구역 광장은 영하의 날씨로 매서웠지만 참석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축구장 3개 반 넓이인 동대구역 광장(약2만5000㎡)뿐 아니라 동대구역 역사와 광장 건너편 도로까지 ‘탄핵 무효’, ‘윤석열 석방’ 등의 팻말과 태극기가 가득했다. 이날 동대구역 집회는 부산역 앞 집회와 마찬가지로 ‘세이브 코리아’가 주최했다. 세이브 코리아는 부산 ‘세계로 교회’의 손현보 목사가 주축이다. 보수 성향 대형 교회의 목사들도 참여해 주요 지역별로 매 주말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여당 의원 108명보다 파괴력이 더 크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이번에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일부 헌법재판관의 이름을 거론한 뒤 “만약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탄핵시킨다면 대한민국의 반역자이자 헌법 정신을 누리는 민주주의의 역적이며 제2의 을사오적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엔 이철우 경북지사가 연단에 올라 “TK는 6·25 전쟁 때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땅”이라며 애국가 1절을 불렀다. 대구 지역구의 윤재옥·추경호·강대식·권영진·김승수·이인선·우재준 의원, 경북의 이만희·정희용·강명구·조지연 의원, 비례대표인 이달희 의원 등 12명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만희 의원은 “위기 상황에 대한 공감대 속에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TK에서 경찰 추산 1만명 이상이 참여한 탄핵 반대 집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두 달이 채 안 돼 확 바뀐 TK 여론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6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TK의 탄핵 기각 응답률은 60%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지난해 12월 3주차 NBS 조사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 ‘잘 됐다’는 응답이 69%였는데, 그새 180도 바뀐 셈이다.

보수가 결집하는 배경으론 이른바 ‘이재명 포비아(phobia·공포증)’가 거론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윤 대통령 잘못도 인정하지만 ‘이재명은 안 된다’는 정서가 보수층에 확고하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윤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 벌어진 ‘영장 쇼핑’과 수사권 논란,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편향 의혹 등은 보수 지지자들이 거리로 나올 명분이 됐다.

영남의 심상찮은 기류에 탄핵 정국 분위기도 묘해졌다. 당장 광장과 거리를 둬 온 국민의힘은 거리 분위기에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대구에서 집회가 한창이던 8일 오후 3시쯤 “법원은 윤 대통령 구속을 취소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의 접견을 시작으로, 윤 대통령을 만나려는 의원들의 발걸음도 이어진다. 10일엔 친윤계 김기현·이철규·정점식·추경호·박성민 의원이 윤 대통령을 면회한다.

국민의힘 잠룡들의 발언 내용도 달라졌다. 탄핵에 공개적으로 찬성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9일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은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며 한·일 관계를 회복했다. 계엄 선포에 즉시 반대 의사를 표했으나,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 기조에는 적극 동의한다”고 썼다. 탄핵에 반대해온 홍준표 대구시장은 8일에도 페이스북에 “구속영장은 무효다. 석방돼야 한다”고 썼다. 

윤 대통령의 영향력이 다시 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남의 한 중진의원은 “보수층 분노를 대변하는 것도 당의 역할이지만, 탄핵에 찬성하면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중도층도 고려해야 한다”며 “탄핵 반대 여론에 경도될수록 집토끼와 산토끼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10차 범시민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10차 범시민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은 이날 “애국가까지 바꿔 부르는 집회에 참석해 ‘충성 다짐’을 하냐”(노종면 원내대변인)고 비난했지만 속내는 복잡했다. 지난 7일에는 이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는 “여러분의 한 걸음, 여러분의 목소리가 대한민국을 다시 바로 세우는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이 대표 명의의 집회 참여 독려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음에도 탄핵 찬성 집회 열기는 시들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저쪽 세는 불어나는 반면, 윤 대통령 체포·구속 국면이 넘어가면서 우리 진영 내 동력은 떨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익명을 원한 중진 의원은 “계엄 이후 민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등 강경모드로 일관하며 탄핵 찬성 여론도 다소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8일 광화문 집회엔 박찬대 원내대표, 김병주 최고위원, 최민희·박홍근·정청래·김영진 등 친명계 의원들이 다수 참석해, 한동안 올리지 않던 참석 인증글과 사진을 페이스북에 여럿 올렸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달 18일 이후 3주 만에 “소원봉을 들고 오늘도 국민과 함께했다”고 썼다.

박홍근 의원은 통화에서 “지난주에도 집회에 나갔지만 윤석열 대통령 구속 이후 한파가 겹치면서 장외 동력이 약해진 측면이 있다.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참여를 꾸준히 권유해 왔고 파면 국면에서 다시 인원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관계자도 “윤 대통령이 구속 기소로 탄핵을 정해진 수순으로 여기던 민주당 지지층도 우파 진영 결집에 경각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했던 3선 의원은 “광주 등지로 확산하는 아스팔트 보수 결집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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