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최악 시나리오"...韓철강 관세, 車·가전도 도미노 비상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발표한 철강·알루미늄 제품 25% 관세 조치에 대한 국내 철강업계의 반응이다. 백악관이 차별없는 관세 원칙을 재차 강조하면서 한국 철강에 대한 ‘무관세 쿼터제 폐지’도 기정사실화 됐다. 철강 관세 부과는 미국 현지 공장에서 완성차와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백악관은 이날 홈페이지에 공개한 관세 포고문을 통해 한국과 아르헨티나·호주·브라질·캐나다·멕시코·유럽연합(EU) 회원국·일본·영국 등 집권 1기때 ‘철강 관세 25% 예외’를 적용했던 국가들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이들 국가와의 기존 합의가 미국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았다면서 3월 12일자로 모두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행정 명령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행정 명령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UPI=연합뉴스

 

수출쿼터제 무력화

철강 업계가 가장 우려한 시나리오는 기존 수출 쿼터제 무력화다. 한국은 지난 2018년 미국과 협상을 통해 연 263만 톤(t)까지는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철강 업계에서는 관세 25%가 부과될 경우 미국으로 수출할 수록 손해라고 본다. 관세로 대미 수출길이 사실상 막히는 셈이다.


철강 업계는 미국에 생산기지를 새로 만들거나 현지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당장 다음달 12일부터 관세가 적용됨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미국 수출 물량을 유럽이나 남미 등으로 분산하는 등 수출 지역을 다변화 해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는 오는 3월 12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11일 인천의 한 제철공장에 철근이 쌓여 있다. 사진 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는 오는 3월 12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11일 인천의 한 제철공장에 철근이 쌓여 있다. 사진 뉴스1

車·가전도 연쇄 타격

철강 제품에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에서 자동차·가전 제품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이들 업체는 대부분 미국으로 수입된 한국산 철강을 납품 받아 현지 제품을 생산하는데, 철강에 관세가 붙으면 자동차·가전 제조 원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1대 생산에는 철강 1t, 알루미늄 250㎏이 필요하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앨라바마·조지아주에 위치한 포스코·현대제철을 통해 현지에서 제조하는 차량용 강판을 공급받고 있다.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차량용 강판 소재를 미국에서 가공해 현대차·기아 미국 현지 공장에 납품한다. 연간 약 60만대 가량 생산할 수 있는 차량용 철강 제품을 납품해 왔다. 철강 수입 가격이 오르면 미국 내 완성차 생산 단가가 오르고, 이들 차량의 현지 가격 경쟁력은 떨어진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모습. 사진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모습. 사진 현대차그룹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철강을 수입해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경우 원가 상승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1기 때 미국에 가전 공장을 확대했던 가전업계도 고민이 크다. 냉장고·세탁기 등을 만들 때 원자재에서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LG전자는 테네시주에 각각 가전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이들은 한국산 철강에 관세가 부과 될 경우에 대비해 미국 현지 철강 업체의 강판을 구매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 “정부 협상 능력 절실”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에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란 불가능하다며 정부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글로벌 통상 무대에서 정부의 협상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라 더 마음 졸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긴급 점검 회의를 소집해 참가해봤지만 뾰족한 대응책이 없어 보여 답답하다”라며 “일본 정부처럼 총리 등을 중심으로 범부처가 긴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여러가지로 한국 기업들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