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 불씨 튀었나, 자재가 길 막았나…반얀트리 화재 규명 본격화

16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텔앤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일어나 화재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이 화재로 현장 인부 6명이 숨졌다. 송봉근 기자

16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텔앤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일어나 화재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이 화재로 현장 인부 6명이 숨졌다. 송봉근 기자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텔 앤 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감식이 진행됐다. 검찰과 경찰은 6명이 숨진 이 사고 경위 파악을 위해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다.

화재 원인 찾는 감식, 오늘 시작

부산경찰청은 16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35분까지 화재 현장 합동 감식을 벌였다고 밝혔다. 감식에는 경찰과 검찰, 소방당국을 비롯해 고용노동부, 전기안전공사, 안전보건공단 및 삼정기업 등 공사 관련 업체 측이 참여했다.    

지난 14일 오전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텔 신축 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숨졌다. 사진 뉴스1

지난 14일 오전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텔 신축 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숨졌다. 사진 뉴스1

이번 감식에선 우선 발화점과 화재 원인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뒀다. 경찰은 사고가 일어난 지난 14일 건물 안팎에 40여곳 하청업체 소속 인부 840여명이 근무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 공사 현장은 12층 높이 A, B동과 이들 건물을 연결하는 로비동 등이 자리한 구조다. 본래 올해 상반기 개관 예정으로 공사는 막바지 단계였다.

"페인트와 시너, 불ㆍ연기 키웠을 가능성"   

불은 B동에서 났고, 사망자 6명은 모두 B동 1층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현재까지 수사에서 경찰은 B동 1층의 PT룸(배관 유지ㆍ관리를 위한 공간)에서 불길이 시작됐으며, 당일 현장에선 배관을 절단하고 용접하는 작업이 이뤄졌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사고 직후 나온 “용접 불씨가 화재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현장 인부들 추정이 이런 진술들을 통해 더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감식 후 경찰 관계자는 “발화부는 PT룸 배관 주변으로 확인되며, 발화 원인은 당시 작업자들 진술과 CCTV상 현장 출입시간 등 확인 후 최종 결론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감식 과정에서 휴대전화, 안전모, 작업복 등 유류물 10점이 수거됐다고 한다.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탤앤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모습. 페인트통과 철근 등 자재가 현장 곳곳에 쌓여있다. 사진 현장 인부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탤앤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모습. 페인트통과 철근 등 자재가 현장 곳곳에 쌓여있다. 사진 현장 인부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공사 현장에서 용접 불씨로 인한 화재는 매우 잦다. 용접 작업 전후 산업안전보건공단 등의 가이드라인이 지켜졌는지 먼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공사 현장 곳곳엔 마감 작업을 위한 페인트통과 시너 등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페인트와 시너를 포함해 목재 합판 등 자재가 불과 연기를 급속히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탤앤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모습. 페인트통과 철근 등 자재가 현장 곳곳에 쌓여있다. 사진 현장 인부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탤앤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모습. 페인트통과 철근 등 자재가 현장 곳곳에 쌓여있다. 사진 현장 인부

2021년 2월 개정된 건축법은 건축물 내ㆍ외부 마감 때 단열재를 포함한 복합 자재의 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불에 약한 스티로폼ㆍ우레탄폼 심재 대신 준불연성(700도 고온에서 10분간 버틸 정도로 불에 잘 타지 않는 성능) 자재를 쓰도록 한 것인데, 감식 및 수사에선 이 현장에 적법한 자재가 쓰였는지에 대한 확인도 진행된다.

“불안불안했다” 현장 인부 증언

지난 14일 불이 난 부산 반얀트리 호텔 공사 현장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물체에 부딪혀 상처가 생긴 현장 인부의 왼쪽 정강이. 사진 안대훈 기자

지난 14일 불이 난 부산 반얀트리 호텔 공사 현장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물체에 부딪혀 상처가 생긴 현장 인부의 왼쪽 정강이. 사진 안대훈 기자

지상과 이어지는 1층에서 인부 6명이 대피하지 못하고 숨진 경위도 중요한 규명 대상이다. 중앙일보가 만나거나 통화한 다수의 인부는 “심한 연기와 현장 곳곳에 널브러진 자재 탓에 대피가 어려웠다”고 했다. 연기로 시야가 좁아 벽을 더듬어가며 출구를 찾아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적재물이 몸 곳곳에 부딪혀 탈출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실제 이들이 찍어둔 화재 이전 현장 사진엔 페인트 통을 포함해 철근 등 자재가 울타리로 구분되지 않은 채 현장 곳곳에 자리한 모습이 확인 된다.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탤앤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모습. 페인트통과 철근 등 자재가 현장 곳곳에 쌓여있다. 사진 현장 인부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탤앤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모습. 페인트통과 철근 등 자재가 현장 곳곳에 쌓여있다. 사진 현장 인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현장에서 일한 한 인부는 “공사 마무리 단계여서 여러 공정이 뒤얽혔다. 적재물 울타리 설치 등 안전 관리와 관련해 불안하다고 느낀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화재 당시 A동 저층부에 있었다는 이 인부는 “화재 감시 인력들은 빨간 조끼를 입고 다닌다. 현장에서 여러 차례 봤다”면서도 “지난 3개월간 안전 교육은 2번 받았지만, 화재 대피 훈련은 받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법적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최고급 시설을 표방한 이 호텔엔 자동화재속보설비(자동 화재 신고 장치)도 없었던 것으로 감식 결과 확인됐다.

스프링클러ㆍ경보 작동 놓고 엇갈린 진술  

경찰은 화재 때 조기 진화와 대피가 이뤄지도록 스프링클러ㆍ경보 시설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정상 작동했다”는 관리직원 측 진술과 “대피자 중(스프링클러 작동으로) 옷이 젖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경보가 아닌 안전관리자 육성을 듣고 대피했다”는 인부들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용접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 인근에 소화기가 충분히 놓여 있었는지도 확인 대상이다.

16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텔앤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일어나 화재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함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이 화재로 현장 인부 6명이 숨졌다. 송봉근 기자

16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텔앤리조트 공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일어나 화재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함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이 화재로 현장 인부 6명이 숨졌다. 송봉근 기자

부산경찰청과 부산지검 동부지청 모두 화재 경위 파악 등을 위한 전담 수사팀을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확보한 진술 신빙성 등을 감식을 통해 확인하는 절차”라며 “정확한 사인 확인 등을 위해 오는 17일엔 사망자 6명에 대한 부검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