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닥 20년 '롱런 뮤지컬' 비결…익숙함 빼고 이것 더했다

뮤지컬 ‘명성황후’ 30주년 공연 모습. 이번 공연에선 화려한 무대를 위해 25주년에 도입됐으나 배우들의 연기를 가린다고 평가받은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을 없애고, 사라졌던 일부 넘버를 되살리는 등의 변화를 꾀했다. [사진 에이콤]

뮤지컬 ‘명성황후’ 30주년 공연 모습. 이번 공연에선 화려한 무대를 위해 25주년에 도입됐으나 배우들의 연기를 가린다고 평가받은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을 없애고, 사라졌던 일부 넘버를 되살리는 등의 변화를 꾀했다. [사진 에이콤]

올해 초 한국 공연계에서 20~30주년을 맞은 ‘스테디셀러’ 뮤지컬이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17일 기준 지난 한 달 간 뮤지컬 예매 순위에서 올해로 스무살이 된 ‘지킬앤하이드’가 1위를 지키고 있고, 30주년을 맞은 뮤지컬 ‘명성황후’가 4위, 초연 후 25년이 지난 ‘베르테르’가 6위다. 이들 작품은 탄탄한 스토리와 귀에 쏙 들어오는 ‘넘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 여기에 각 작품이 지닌 특별한 롱런의 비결이 있다.

◆노래·무대 등 수정…역사 스스로 갱신=명성황후 시해 사건 발생 후 100년이 된 1995년 초연을 올린 뮤지컬 ‘명성황후’는 이달 초 누적 관객 200만명을 넘긴 데 이어 한국 창작 뮤지컬 처음으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며 한국 뮤지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제작진과 평론가들이 입모아 말하는 ‘롱런’의 비결은 변화다. 윤호진 예술감독은 “명성황후가 지닌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어가기 위해 무대에 올릴 때마다 꾸준히 수정·보완했다”며 “관객의 호응은 이런 변화에 대한 응답”이라고 말했다.

1997년 브로드웨이 진출을 앞두고 명성황후 제작진은 음악의 난도를 높였고, 이는 초연에서 명성황후 역을 맡은 배우 윤석화의 교체로 이어졌다. ‘2대 명성황후’로는 성악가 출신 이태원과 김원정이 발탁됐다. 수태굿 장면이 등장한 것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다. 동양의 전통문화와 화려한 색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25주년 공연은 특히 변화의 폭이 컸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하는 ‘성 스루’ 방식에서 벗어나 대사를 가미했다. 내용을 쉽게 전달해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무대에는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을 도입해 화염에 뒤덮인 대궐 등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줬다.


서른 살 ‘명성황후’는 다시 변모했다. LED 패널을 뺐다. 윤 감독은 “무대가 화려하니 정작 중요한 배우가 보이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안재승 ‘명성황후’ 연출가는 “‘명성황후’의 진정한 가치는 안주하지 않고 매 시즌 수정과 변화를 거듭하며 스스로 쌓아 올린 역사를 스스로 갱신해 나갔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뮤지컬 ‘베르테르’ 25주년 기념 공연 무대다. [사진 CJ ENM, 오디컴퍼니]

뮤지컬 ‘베르테르’ 25주년 기념 공연 무대다. [사진 CJ ENM, 오디컴퍼니]

◆사라질뻔한 작품, ‘팬덤’이 살렸다=현재 25주년 기념 공연이 진행 중인 뮤지컬 ‘베르테르’는 ‘N차 관람’ 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작품이다. 이 뮤지컬의 롱런에는 팬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초연 당시 화려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2002년 막을 내릴 뻔 했다.

하지만 2001년 만들어진 뮤지컬계 최초의 팬클럽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가 나섰다. 500여명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했는데, 모금액이 3억원이나 됐다. 이에 공연을 이어갈 수 있었고, 마니아 층을 넘어 폭넓은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최윤영 공연칼럼니스트는 “고전의 매력에 현대적 감각이 더해지며 골수팬이 생겼고 이후 다양한 변화 시도로 대중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고 짚었다.

홍광호와 윤공주가 출연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무대다. [사진 오디컴퍼니]

홍광호와 윤공주가 출연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무대다. [사진 오디컴퍼니]

◆젊고 도전적인 지킬의 매력=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 넘버로 꼽힌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을 각색한 ‘지킬앤하이드’는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첫 공연 후 독일, 영국, 일본 등에서 무대에 올랐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2005년 초연 후 누적 관객 수 180만명을 돌파한 대표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잡았다. 한국 정서에 맞춰 수정·각색·번안한 논 레플리카(Non-Replica) 버전으로 관객과 만났다.

중년 남성인 원작과 달리 한국판 ‘지킬’은 더 젊고 도전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조지킬’이란 애칭을 얻은 조승우의 경우 24살에 이 배역을 처음 연기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원 캐스팅’인 해외와 달리 여러 명이 번갈아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더블·트리플 캐스팅인 한국의 시스템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비교적 여유를 두고 연기함으로써 에너지를 쏟아내야 하는 난도 높은 넘버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20주년 기념 공연에선 지킬·하이드역에 홍광호와 전동석, 김성철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오는 28일에는 신성록, 다음달 1일에는 최재림이 합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