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독' 세운 51일간의 하청노조 파업…604일 만에 법원 판단 나왔다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서 51일간 파업을 벌이면서 선박 건조장 점거 등 회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하청 노동자들이 1심에서 대거 징역형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2023년 6월 27일 이 사건이 재판에 넘겨진 지 604일 만에 처음 나온 법원 판단이다.

2022년 7월 19일 당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선박 건조장인 1번 독(dock)을 찾아 '옥쇄 투쟁' 중인 유최안 당시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공동취재

2022년 7월 19일 당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선박 건조장인 1번 독(dock)을 찾아 '옥쇄 투쟁' 중인 유최안 당시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공동취재

노조원 대거 징역형 집행유예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2단독(김진오 판사)은 19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 소속 김형수 지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또 김진오 판사는 조선소에서 일명 ‘옥쇄 투쟁’을 벌인 유최안 전 부지회장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외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26명에게도 각각 징역형에 집행유예, 벌금형을 내렸다. 검찰은 앞서 김 지회장과 유 전 부지회장에게 각각 징역 4년6개월,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김 지회장 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28명은 2022년 경남 거제에 있는 당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주요 시설을 점거하는 등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 등으로 기소됐다. 피고인 수가 많고,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다른 혐의가 이 사건 재판에 병합되면서 1심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고 한다.

2022년 7월 22일 당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1번 독을 점거하고 있던 유최안 부지부장이 구급차에 이송되는 모습을 노조원들이 우산 등으로 가리고 있다. 중앙포토

2022년 7월 22일 당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1번 독을 점거하고 있던 유최안 부지부장이 구급차에 이송되는 모습을 노조원들이 우산 등으로 가리고 있다. 중앙포토

‘31일간 옥쇄 투쟁’…축구장 9개 크기 ‘독’ 마비

조선하청지회는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2022년 6월 2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7월 22일까지 51일간 이어진 파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파업 21일째인 6월 22일 유최안 당시 부지회장은 조선소 1번 독에 건조 중인 선박에서 1㎡(0.3평) 크기의 네모난 철제 구조물을 설치, 그 안에 스스로 들어가 점거 농성을 벌였다. 파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 31일간의 ‘옥쇄 투쟁’이었다. 다른 조합원 6명도 같은 선박 내 15m 높이 난간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했다.

이 때문에 선박 3~4대를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1번 독에서는 한 달 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1번 독에서 60~70% 공정을 마치고, 독 밖에서 잔여 작업만을 남겨둔 초대형 원유 운반선(30만t급) 3척도 발이 묶였었다. 1번 독(6만8900㎡)은 축구장(7140㎡) 9개가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 건조장이다. 당시 파업은 노사가 임금 4.5% 인상에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끝을 맺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1번 독(dock). 사진 한화오션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1번 독(dock). 사진 한화오션

 

1심 법원 “죄책 가볍지 않지만…공익 목적 고려”

김진호 판사는 “집회 과정에서 노동3권이 보장하는 상당한 정도를 넘어 다수 조합원과 공동 업무방해, 감금을 저질렀고, 피해 정도를 감안하면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다만 김 판사는 “개인 이익보다 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 및 경제적 질 향상 등 공익 목적이 있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선고 후 조선하청지회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김 지회장은 “당시 파업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부를 분배하지 않은 채 개인화하려는 기업 및 세상과 조선하청지회의 투쟁이었다”며 “올해 아직도 조선하청지회 임단협이 마무리되지 않는 등 바꿀 것이 많은 만큼 동지들과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2022년 6월 51일간 파업하는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관계자 등이 19일 경남 통영시 창원지법 통영지청에서 열린 1심 선고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6월 51일간 파업하는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관계자 등이 19일 경남 통영시 창원지법 통영지청에서 열린 1심 선고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470억 손배소송 영향 미칠까

이번 1심 선고가 당시 파업 관련 손해배상소송에도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앞서 옛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을 이끈 노조 간부 5명에게 약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생산 공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선박 인도가 늦어지는 등 손해가 컸다는 이유에서다. 이 손배 소송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한화오션이 계속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 2023년 9월 첫 재판에서 노사는 “정당하게 책임을 묻고자 한다”(사측), “손해배상 이름으로 가해지는 노동 탄압”(노조) 등 입장이 팽팽하게 갈렸다. 이후 경남도와 국회 등이 나서 사측의 소송 취하 등 중재에 나섰지만, 별다른 해법을 찾진 못했다. 사측의 경우, 소송 취하 시 경영진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어서다.

손배 소송은 재판부가 업무방해 등 형사 사건 재판 결과를 본 뒤 속행하기로 하면서 지난해 6월 3차 변론기일 이후 잠정 중단됐다. 이번에 1심 선고가 나오면서 조만간 변론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