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8시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 정상명 전 검찰총장(75‧사법연수원 7기)가 발언대에 섰다. 같은 윤 대통령 대리인단인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74‧사법연수원 7기)이 변론을 마친 뒤였다. 정 전 총장은 “준비한 원고를 무시하겠다”며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윤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정 전 총장 변론이 눈에 띄는 대목은 다른 대리인들과는 달리,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3분 남짓한 발언 시간 대부분을 윤 대통령과의 관계와 그의 면모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오히려 “선배로서 죄송하다”며 윤 대통령을 대신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신 그는 윤 대통령의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인간적 성품을 호소하는 데 변론의 초점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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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측 대리인단 정상명 변호사가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피청구인 변론을 하고 있다. 사진 헌법재판소
이는 다른 변호인과 치밀하게 역할분담을 조율한 끝에 나온 변론 전략일 수도 있고 그의 소신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정 전 총장은 변론 말미에 “모든 국민은 비상계엄의 진실을 다 알고 있다”고 덧붙였는데, 이는 비상계엄의 불가피성을 애둘러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비상계엄은 불법성이나 부적절함을 인정한 발언으로도 해석될 여지도 있다.
정 전 총장은 “윤석열이 처음 검사로 임관됐을 때부터 서울검사장, 검찰총장, 대통령 후보, 대통령이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직접 또는 먼발치에서 줄곧 지켜봐 왔다”며 “그는 국가는 정의롭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여야 하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유명한 이야기인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또 “인간 윤석열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람이었고, 사람 냄새가 났다”며 “거짓은 진실을 덮을 수 없다는 소신이 있고, 거짓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였고 (계엄 당시)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많은 지휘관들을 본인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건 검찰 시절부터 품성”이라고 했다.
정 전 총장은 윤 대통령이 평생 검사로 생활하다가 정치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법 집행 기관인 검찰에서 법 규정에 따라 유무죄만 따지고 처벌하는 상황에서 살았다. 그러나 정치는 국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행해 나가는 것이기에 검사로서의 평생을 살아오다가 뜻하지 않게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떠밀리다시피 해서 들어선 정치하면서 상당히 고민하고 힘들었다는 건 가까이서 듣기도 했다”고 하면서다. “초임 검사 시절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주의 시장질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 과정도 평생 살아온 소신의 연장 선상에서 봐주셨으면 한다”고도 했다.
그는 “윤석열은 결코 불통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좋아해 한자리에서 5~6시간 이야기를 나눈다. 단지 자기 소신이 확실하다.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확신한다. 너무 그런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어떨 때는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 정치하면 유연해야 한다’고 제가 꾸짖을 때가 있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정 전 총장은 마지막으로 “좀 그런 것이 오늘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해서 저 역시 지켜본 선배로서 죄송하단 말씀을 올린다”며 “저의 인간 윤석열에 대한 조그마한 생각이 재판관들의 결심에 조그만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고 변론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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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11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최종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사진 헌법재판소
정 전 총장은 윤 대통령의 ‘멘토’라 불리는 검사 선배다. 2012년 김건희 여사와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1994년 윤 대통령이 대구지검 초임 검사로 발령받았을 당시 첫 부장검사(대구지검 형사2부장)가 정 전 총장이었다. 법무부 차관, 대구고검장, 대검 차장 등을 거쳐 2005~2007년 검찰총장을 지냈다. 검찰총장 재임 시 윤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에서 대기업 총수 수사를 맡았었다. 정 전 총장은 2019년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지명됐을 때 검찰총장 후보자 추천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정 전 총장은 지난달 15일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법률대리인단으로 헌재에 소송위임장을 제출했다. 당시 정 전 총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라가 힘들 때 돕는 것은 국민의 책무이고,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돕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 윤 대통령 변호를 맡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