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파리협정 탈퇴에도 '탈탄소'는 대세? 韓 기후테크로 무장

챗GPT에 '기후테크, 기업, 탈탄소 키워드로 연상되는 이미지를 그려달라'고 요청한 일러스트. 사진 일러스트 챗GPT로 생성

챗GPT에 '기후테크, 기업, 탈탄소 키워드로 연상되는 이미지를 그려달라'고 요청한 일러스트. 사진 일러스트 챗GPT로 생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취임 직후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를 결정하자 기존의 탈탄소 흐름이 지속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세계 195개국(미국 제외)이 파리협정에 따라 온실가스를 감축 중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에 이어 다시 파리협정 체제를 부인하면서 기후위기 대응 체계가 균열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후테크 등을 활용해 탈탄소 체질을 길러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미국의 파리협정 재탈퇴 의의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숨은 전략을 분석했다. 미국이 파리협정을 탈퇴했다고 해서 탈탄소 에너지로 전환을 포기한 게 아니라, 자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게 요지다. 이혜경 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 입법조사관은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중심 보호무역주의 정책과 결합해 미국의 에너지 산업을 키우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미국의 원유·LNG(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수출을 촉진하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이 전세계적 탈탄소 흐름을 꺾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3월 12일부터 통상 환경에서 철강·알루미늄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품목은 EU가 내년부터 시행할 탄소 국경세(CBAM)의 적용 대상이기도 하다. 김연규 한양대 글로벌순환경제 센터장은 “기업의 RE100* 캠페인과 탈탄소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은 여전하기 때문에, 미국이 알류미늄·철강 등에 관세를 때려도 그 품목이 유럽으로 흡수되는 어렵다”며 “(미국의 관세로) 화석연료 시장이 확대되는 게 아니라, 탄소 배출이 많은 품목의 교역 빈도 자체가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100: 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선언하는 캠페인.  

미국을 제외한 파리협정 가입국들의 탈탄소 시곗바늘은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 한국 역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우선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40%까지 감축해야 한다.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기업들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강화된 탄소 규제에 맞추기 위해 기후테크를 적용한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테크란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도 경제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혁신기술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정유 부문은 친환경 연료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2월 국내 정유사 중 최초로 초(超)저유황 바이오선박유를 해외 선사에 공급했다. 바이오선박유는 기존 선박유에 바이오디젤을 혼합한 연료로 화석연료 대체재로 주목 받는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1월 국내 최초로 폐식용유, 팜 잔사유 등 바이오 원료를 정제 설비에서 시범 처리했다. 지난해 4월에는 지속가능 항공유(SAF) 국제인증을 획득한 후 본격 탄소 저감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대한항공 등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SAF는 가격은 기존 항공유보다 2~5배 비싸지만 탄소 배출량은 최대 80% 이상 감축할 수 있다.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조선업체들은 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 선박 개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HD현대 마린솔루션은 선박 배기가스에서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스크러버를 설치하고, 노후 LNG운반선을 해상 터미널로 개조하는 사업에 진출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선박 건조-운행-폐선에 이르는 전 주기 동안 탄소 배출량을 조사하고, 이 데이터를 활용한 국제표준 수립에 착수했다.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다. 특히 태양광 발전소는 1MW(메가와트)당 탄소 600톤(t) 감축 효과가 있고20~30년 장기 운영이 가능하다. 한화솔루션(큐셀)은 태양광 셀 관련, 상용화가 가능한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탠덤 셀)개발에 주력해 지난해 세계 최고 발전효율(28.6%)을 기록했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태양광 에너지는 경제성과 친환경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전력원”이라며 “탈탄소 속도가 좀 늦어진다 해도 수요 면에서 태양광 발전은 지속 성장할 분야”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 발표에 따르면 전세계 태양광 발전 설치량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세계 태양광 설치량(599GW)은 7년 전(106GW)에 비해 약 6배 늘었다.

SK에너지가 신규 투자한 전용 탱크 및 배관을 통해 이송한 바이오 원료로, 코프로세싱 방식의 지속가능항공유(SAF) 연속 생산이 가능한 설비 전경. 사진 SK에너지

SK에너지가 신규 투자한 전용 탱크 및 배관을 통해 이송한 바이오 원료로, 코프로세싱 방식의 지속가능항공유(SAF) 연속 생산이 가능한 설비 전경. 사진 SK에너지

기후테크는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서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키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 센터장은 “향후 통상 환경은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가 불리해지는 구도로 가게 될 것”이라며 “기후테크를 기업들이 적극 적용해 타국의 탄소 규제 정책에 적응하면 탈탄소 무역 시대에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희현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도 “미국의 움직임이 타국의 ‘기후협정 탈퇴 러시’를 끌어내지는 않을 것이기에 꾸준히 탈탄소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며 “국내 기업이 기후테크에 투자하고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 보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