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두달이면 가능…협치 안하면 죽는 ‘동거정부’가 답” [강찬호의 뉴스메이커]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 - 헌법학 권위자에게 들어본 바람직한 개헌안

24년간 24판을 찍으며 롱런해온 『헌법학』 교과서의 저자로 유명한 성낙인 전 서울대총장. 1980년대 파리에 유학하면서 프랑스의 ‘동거 정부’를 현장에서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요즘 개헌론의 화두인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분산’을 법적으로 구체화한 ‘이원정부제’를 제시했다. 김종호 기자

24년간 24판을 찍으며 롱런해온 『헌법학』 교과서의 저자로 유명한 성낙인 전 서울대총장. 1980년대 파리에 유학하면서 프랑스의 ‘동거 정부’를 현장에서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요즘 개헌론의 화두인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분산’을 법적으로 구체화한 ‘이원정부제’를 제시했다. 김종호 기자

“1980년대 프랑스에서도 ‘여소야대’가 발생했는데 당시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은 외교·국방 장관만 빼고 전 내각 임명권을 야당의 자크 시라크 총리에게 줘 위기를 극복했어요. 이것이 정치죠. 그런데 우리는 ‘동거’ 대신 야당은 줄 탄핵 독주, 대통령은 계엄으로 대응한 끝에 비극을 맞았어요. 이걸로 제6공화국은 끝입니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분출하는 가운데 헌법학 권위자인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을 만났다. “당장 개헌하자”는 총론은 만개한 지 오래니 각론, 즉 바람직한 개헌안의 속살을 들어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지금 개헌론의 절대적 화두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분산’이다. 대통령제를 존치하면서 권력을 분산하는 대표적인 체제가 프랑스의 ‘동거 정부(Cohabitation)’인데 성 전 총장은 그 프랑스(파리 제2대학)에서 이를 주제로 법학 박사를 땄고 그 이론을 국내에 소개한 학자다.

“87년 체제 모든 가설 실패로 끝나…연내 개헌 절실
야당에 내각 넘겨 여소야대 돌파한 미테랑 배울 때
헌법상 대통령도 재판받아야하나 현실성 논란 있어
계엄 동의 못하나 헌재도 절차적 흠결 상당해 유감”
 
“계엄 당일 6공은 끝나…7공 열 때” 

헌법학자로서 구상하는 개헌의 골자는요?
“내 『헌법학』 교과서에서 ‘87년 체제에서 가능한 6개 국정 모델’을 만들었는데 마지막 가설인 ‘대통령 재임 중 단일 거대 야당의 국회 장악’ 시나리오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현실화됐어요. 이 경우 어떻게든 서로가 타협해 함께 가야 하는데 파탄으로 끝났으니 제도적으로 국회와 정부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이원정부제(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결합)’로 개헌해야 합니다. 국회에 내각 불신임권을 주되 비례대표 선거제와 독일식 건설적 불신임제 및 국정감사 폐지로 야당의 전횡을 막아 협치가 필수인 구조로 가자는 거죠. 국정감사는 전 세계 헌법에 유례가 없고 실효성도 없는 제도라 폐지가 마땅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과 이후 상황을 평가한다면요.
“헌법학자로서 계엄에 동의할 수 없어요.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의 동의를 얻으려면 야당에 총리와 내각 임명 동의 권한을 줬어야 해요. 그걸 거부하고 계엄을 택한 데 그의 비극이 있는 거죠. 다만 ‘계엄=내란’이란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현직 대통령에 형사상 책임을 물어 구속기소 하기에 앞서 탄핵 여부부터 결론 내야 한다고 봐요. 또 ‘검수완박’법에 따라 대통령 수사는 경찰이 하는 게 맞는데, 검찰이 나섰다가 공수처에 넘기고 직권남용죄를 수사하다 내란 혐의로 구속기소 했으니 견강부회의 전형입니다. 윤 대통령 탄핵 사유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것보다 훨씬 엄중한데도 윤 대통령 지지율이 상당히 나오는 건 ‘법적 절차가 유독 대통령에게 억울하게 돌아간다’는 의혹 때문 아닌가 합니다. 그런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가 있어요.”
 


어떤 이유인가요.
“두 가지죠. 우선 탄핵 소추 핵심 사유가 ‘내란’인데 국회 측이 ‘내란’을 빼버렸잖아요. ‘내란죄’ 때문에 일부 여당 의원들이 소추에 동의해줬는데, 내란죄를 삭제했으니 소추 의결을 다시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게다가 국회 측 변호인이 ‘내란죄 삭제하겠다. 그게 재판부께서 저희에게 권유하신 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취소해 ‘짬짜미’ 논란을 일으켰잖아요. 사실이라면 민주당이 바라는 속전속결 심판을 위해 헌재가 ‘힌트’를 준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잘못된 일입니다. 둘째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 논란이에요.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표결 없이 단독으로 헌재에 ‘마 재판관 임명 보류는 위헌’이란 심판을 청구한 탓에 절차상 흠결 논란이 제기되자, 국회 측이 ‘흠결을 보완할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 대행이 ‘본회의 의결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로 보나’고 물었잖아요. 그러자 민주당은 나흘 뒤 국회에서 마 재판관 임명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헌재는 이를 이유로 ‘흠결이 보정됐다’며 우 의장 손을 들어줬지 않나요. 내가 보기엔 우 의장 단독으로 심판을 청구한  건 ‘흠결’이 분명하니 잘못된 선고인 데다 재판관이 ‘힌트’를 줘 흠결을 추인해주는 결과까지 빚은 건 문제입니다.”
  
미국 대법관들도 당파적 판결 의혹 커 

헌재의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요.
“미국 대법원도 다르지 않아요. 2000년 공화당 조지 W 부시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맞붙은 대선에서  플로리다주는 불분명한 투표용지로 논란을 빚었죠. 이때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수작업 재검표를 요구한 고어의 청원을 5대4로 인용해줘 재검표에 들어간 결과, 고어의 득표수가 늘어났어요. 그러자 이번엔 부시 측이 연방 대법원에 재검표 중단 소송을 제기했는데 연방 대법관들은 5대4로 부시의 손을 들어줘,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됐지요. 그런데 플로리다주 대법원과 연방 대법원에서 고어와 부시 편을 각각 들어준 법관들의 임명자가 누구였는지를 보면, 민주당이 임명한 법관들은 죄다 고어 편, 공화당이 임명한 법관들은 죄다 부시 편을 들었어요. 사람이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헌재의 ‘힌트’ 논란은 분명히 문제가 있어요.”
 

그래선지 과거 90%에 달했던 헌재 신뢰도가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헌재의 공도 큽니다. 87년 도입된 이래 제 3세계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추동한 법적 모델’로 칭송받아왔어요. 하지만 평생 판사만 한 사람들로 구성된 헌재는 대한민국이 유일해요. 판사들은 민·형사 재판만 하다 보니 헌법재판관이 돼도 실체적 정의 여부에 집착해요. 그러나 헌법 재판은 헌법의 규범과 헌법의 현실을 함께 고려하는 ‘느슨한 사법 심사’라서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헌법재판관 지명되면 그날부터 헌법 책 갖다 놓고 공부하기 시작해요. 이러면 안 됩니다. 독일 헌재 재판관은 법학 교수들이 많이 맡아요.”
 

헌재 재판은 ‘느슨한 사법 심사’라는 의미가 뭘까요.
“김영삼 대통령이 1993년 금융실명제 긴급 명령을 발동했는데 헌법상 요건에 부합하느냐가 논란이 됐어요. 당시 헌재는 ‘실명제 발동은 원칙적으로 대통령의 통치 행위로 헌법 제76조의 발동 요건을 충족해 합헌’이라고 판시했어요. 76조는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상 위기에 있어 긴급 재정 경제 명령을 발령할 수 있다’고 돼 있어요. 그런데 당시 ‘중대한’ 재정 위기가 있었나요? 결국 대통령 행위의 요건 충족 여부는 헌재에게 판단의 재량의 여지가 있고, 정치적 상황과 여론도 보면서 판결하게 된다는 거죠. 이래서 ‘느슨한 사법심사’라는 거예요. 그건 윤 대통령 탄핵심판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총리 탄핵 소추가 의결 정족수를 준수했는지도 논란인데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행한 행위에 대해 탄핵하려면 대통령과 동일한 정족수(재적 의원 3분의2)를, 본직(총리)에 있을 때 한 행위와 관련된 탄핵이라면 일반 공무원 정족수(재적 의원 과반)를 적용해야 한다는 게 다수설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권력 공백을 막기 위해 헌재가 이 문제를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이재명도 결국은 개헌 동참할 것”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은 내란, 외환죄를 제외하고 재직 중 소추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항에 대해 “소추의 ‘소’는 기소고, ‘추’는 재판”이라며 대통령 재직 중엔 재판이 정지된다고 주장하는데요.
“아니죠. 소추는 검찰의 기소를 뜻해요. 재판은 아니에요. 헌법이나 형사소송법 조문만 보면 대통령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라도 취임 전 범죄혐의로 받아온 재판은 계속 받아야 합니다. 다만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의 지위를 대법원이 재판으로 박탈하는 게 맞느냐는 논란은 있을 거예요.”
 

윤 대통령이 헌재 최후진술에서 임기 단축 개헌과 함께 내정은 총리에게 맡길 방침을 밝혔는데요.
“내가 해온 주장과 이론 그대로예요. 대통령까지 나섰으니 올해 안에 개헌 결판을 내야 한다고 봅니다. 공고부터 국민투표·공포까지 두 달이면 돼요. 개헌안은 이미 수십 개 나와 있기에 여야가 머리만 맞댄다면 금방 합의할 수 있어요. (탄핵 기각을 끌어내려는 노림수란 주장도 있는데요?)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사기 칠 이유는 없고, 그 정도 발언은 본인 변호를 위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민주당 비명계까지 개헌을 주장하는데 이재명 대표만 침묵하는 양상입니다.
“사법 리스크 문제가 있으니 그런 거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은 전부 개헌하자는 거니까 결국은 그쪽(개헌)으로 갈 수밖에 없을 거라 봐요. 우리처럼 국민투표를 해야 개헌이 되는 나라가 많지 않아요. 독일은 1949년 이후 시대요구에 부응해 개헌을 70번 가까이 했어요. 상하원에서 각각 재적의원 3분의 2가 찬성하면 개헌이 가능하니까요. 우리는 단원제니까 재적의원의 4분의 3이 찬성하면 개헌토록 하는 조항을 새 헌법에 꼭 담았으면 합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인용이든 기각이든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응답률이 높은데요.
“헌재의 심판 절차에 아쉬운 점들이 분명히 있어요. 그래도 우리가 만든 제도인데 수용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나라가 두 쪽 나는 거지요.”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