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돈 삼킬 알래스카 LNG…한국 ‘계산기’ 두드려봐야

“일본,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각각 수조 달러씩 투자하면서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투자자로 한국을 지목했다. 정부는 신중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5일 “프로젝트 참여를 확정한 게 아니다. 협의체를 구성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보다 한발 더 나간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대해선 “트럼프식 화법인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주요국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 통상 관련 협의체를 만들어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정부는 관세 협상의 지렛대인 만큼 사업 참여 여부를 두고 말을 아끼고 있다. 다른 나라에도 제안이 갔으니 조건을 비교해 가며 협상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북극해 연안 알래스카 북단 프루도베이 가스전부터 앵커리지 인근 부동항인 니키스키까지 천연가스 배관을 연결하는 게 골자다. 니키스키 지역에서 천연가스를 액화해 배로 운송·수출하는 것까지 아우른다. 사업비는 최대 400억 달러(약 58조원) 안팎으로 미국 LNG 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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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은 막대한 투자금이다. 북극이라는 혹한의 환경에서 1300㎞에 달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엑손모빌·BP 등 글로벌 석유사가 참여했다가 중간에 손을 뗀 주된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수조 달러’ 투자 규모도 비현실적이다. 원화로 수천조원에 달한다. 한국 정부가 한 해 예산(올해 기준 673조원)의 몇 배를 써야 메울 수 있는 불가능한 투자 금액이다.


불확실성은 크지만 가능성은 있다. 현재 이 사업은 알래스카 주정부 산하 공기업인 AGDC가 주도하고 있고, 2020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승인을 받았다. 지난해 알래스카주는 에너지 개발회사인 글렌판 그룹을 협력사로 선정하며 민간 투자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맞물려 ‘지원 사격’도 받는 중이다. 한국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달 방미 기간 중 참여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 사업을 두고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와 수급 안정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알래스카에서 한국까지 LNG 운송에 걸리는 시간은 1~2주로, 중동(약 한 달) 대비 절반 수준이다. 파나마 운하를 거치지 않고 태평양으로 운송해 통행료를 아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쇄빙선 건조, 송유관 건설 등 한국 기업의 참여 여지 역시 크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당장 국내 LNG 업계 반응은 소극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십조원 단위 프로젝트를 민간 회사가 추진하긴 어렵다”며 “정부가 주도해 사업성은 물론 외교·통상 효과까지 여러 면을 따진 다음 민간에 동참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투자에 따른 한국의 인센티브(보조금, 미 에너지 인프라 지원 프로그램 활용, 장기 구매 혜택 등)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이날 가스 관련주인 한국가스공사(12.8%), 포스코인터내셔널(15.3%)과 강관(쇠파이프) 업체들의 주가가 일제히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