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6년인 헌법재판관은 수시로 퇴임‧취임하며 재판부 구성이 바뀐다. 그때마다 헌재는 통상 월 1회 진행하는 선고기일을 그달엔 미루거나, 재판관 퇴임 전 미리 당겨 선고하는 식으로 최대한 ‘9인 재판부’의 형태로 선고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다만 불가피할 경우 재판관 공석인 채로 선고하거나, 심지어 새 재판관이 취임한 뒤에도 해당 재판관을 제외한 ‘8인 선고’를 한 전례는 오래전부터 왕왕 존재했다.
22년치 선고일 보니… 새 재판관 ‘앉아만 있는’ 선고 8번
2023년 12월 18일 취임한 정형식 재판관은 3일 뒤 열린 그 달의 선고기일에 참석은 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담지 않은 '8인 결정문'의 선고를 지켜봤다. 헌재엔 그간 재판부 변동 시기에 '8인 선고'를 한 경우가 간혹 있어왔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2002년 9월부터 지난해까지 약 22년간의 선고기일을 살펴봤다. 2명 이상 재판관이 바뀐 달엔 예외 없이 그달의 선고기일을 잡지 않거나, 앞선 재판관들이 퇴임하기 전 미리 선고한 뒤 떠날 수 있게 날짜를 조정했다. 2명 이상 재판관이 취임한 6번의 취임일 중 5번은 그달의 선고를 건너뛰었고, 딱 한 번 2019년 4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취임 전엔 11일로 날짜를 앞당겨 선고를 마쳤다.
그러나 재판관 1명이 바뀔 땐 14번 중 2번을 제외하곤 모두 그달의 선고기일을 그대로 진행했다. 12번 중 4번은 새 재판관 취임 전 미리 선고를 해치웠고, 신임 재판관이 온 뒤 9인 재판관 모두가 참여해 선고하면서도 신임 재판관이 참여하지 않은 ‘8인 결정문’을 포함해 선고한 게 8번이나 된다.
2004년 2월 이상경 재판관 취임을 시작으로 2005년 3월 이공현, 2005년 7월 조대현, 2007년 3월 송두환, 2011년 2월 박한철, 2011년 3월 이정미, 2017년 11월 유남석, 2023년 12월 정형식 재판관 취임 후 그달 선고 사건 중엔 자신의 이름이 적히지 않은 ‘8인 결정문’이 대다수였다. 일부 결정문에는 퇴임 재판관도 이름이 ‘퇴임으로 서명 날인 불능’ 표기와 함께 포함돼있다. 2003년 8월 선고(21일)가 끝난 뒤 26일 취임한 전효숙 재판관은 취임 다음 달인 9월부터 선고에 참여했지만, 9월 선고사건 중에서도 전직인 한대현 재판관의 이름이 적힌 결정문이 '퇴임으로 서명날인 불능' 설명을 단 채 함께 나갔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퇴임, 해외출장, 질병 또는 기피‧회피 사유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일부 재판관이 참여할 수 없는 경우에도 이렇게 헌재의 심리와 선고를 완전히 멈추지 않는 건 너무 많은 사건이 꾸준히 쌓이기 때문에 사건 적체를 막기 위해서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월평균 50~100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많을 땐 월 253건(2024년 5월)을 선고할 때도 있지만, 선고를 못 하는 달이 길어질수록 다른 때에 선고할 사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현재 임명 여부 및 시기가 불확실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3월 중 임명되더라도 헌법학자들은 기존에 진행 중이던 주요 사건들을 다시 심리할 필요 없이 사실상 현재의 ‘8인 재판부’ 명의로 그대로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그간의 선례는 물론 ‘종국심리에 관여한 재판관 과반수의 찬성으로 사건에 관한 결정을 한다’고 규정한 헌법재판소법 23조에 근거해서다. 결정문의 결론을 쓸 때 ‘9인 전원재판부 모두의 일치된 의견’이 아니라 “이에 관여한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고 다수 의견을 쓰는 것과 같은 원리로, 심리에 참여한 재판관들이 결론을 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신임 재판관이 온다고 모든 사건을 다 열어서 다시 심리하지 않는 건 법리상으로도, 과거 사례로도 당연한 흐름”이라며 “실무적으로도, 취임하자마자 주요 사건 선고에 투입하는 게 사실상 무리인 것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