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ARM 한방에 제낀다?.…中 "SW 독립∙칩설계 자립"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반도체 생태계 전방위적 육성에 나섰다. 미국이 첨단 장비·칩의 중국 반입을 막았지만, 제조를 둘러싼 반도체 설계·소프트웨어·연구개발을 키워 이를 넘어서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제조 2025’ 정책으로 제조 기반을 다진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더 정교해지는 모양새다.

ARM 없이…리스크파이브(RISC-V) 칩 확대

중국 정부는 조만간 개방형(오픈소스) 반도체 설계 구조인 ‘리스크파이브’(RISC-V)를 활용해 만든 칩의 사용을 전국적으로 장려하는 지침을 발표할 계획이다. 5일 로이터 통신은 중국 공업정보화부, 과학기술부 등 8개 정부 기관이 이런 내용의 공동 정책 초안을 작성했고 이르면 이달 내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6월 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터 하드웨어 박람회 '컴퓨텍스 2024'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의 모습. 이희권 기자

지난해 6월 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터 하드웨어 박람회 '컴퓨텍스 2024'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의 모습. 이희권 기자

 
정부가 직접 나서서 특정 반도체 설계 구조의 활용을 권장하는 건 이례적인데, 중국의 ‘반도체 설계 자립 의지’를 방증한다. 리스크파이브는 컴퓨터·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시스템 반도체의 밑그림이 되는 설계 자산(IP) 중 하나다. 현재 칩 IP 시장은 미국 인텔과 영국 ARM이 독점하고 있다. 대다수 반도체 기업은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이들의 IP를 사용해 칩을 설계한다.

반면, 리스크파이브는 무료로 개방된 오픈소스다. 스마트폰용 저전력 칩부터 고성능 PC용 중앙처리장치(CPU)까지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이 리스크파이브 기반으로 칩을 설계하면 미국·영국 기업에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고, 기술 제재에서도 자유로워지는 셈이다. 중국 IT 기업 알리바바는 지난달 28일 리스크파이브 기반 서버급 CPU인 C930을 출시해 기술력을 과시했다.

엔비디아 CUDA 넘어… 자체 소프트웨어 구축도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5일 중국과학원(CAS)의 컴퓨터 과학 석학인 리궈지에는 논평을 통해 “딥시크는 엔비디아 쿠다(CUDA)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며 “중국은 CUDA를 능가하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다는 전 세계 AI 개발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AI 개발 플랫폼으로, 엔비디아가 AI 생태계를 지배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IT·가전 전시회 'CES 2025' 개막 전날인 지난 1월 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IT·가전 전시회 'CES 2025' 개막 전날인 지난 1월 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중국은 이미 화웨이가 AI 가속기 ‘어센드’ 시리즈를 자체 개발하며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딥시크 AI 모델 훈련에도 화웨이 어센드910C가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AI 개발 플랫폼에서도 ‘소프트웨어 독립’을 확보하겠다는 거다.

반도체 자립 위해 차세대 기술 선점 노린다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근간이 되는 연구 수준도 눈에 띈다. 조지타운대 안보·신기술센터(CSET)가 2018년부터 6년간 전 세계 반도체 신기술 관련 논문을 분석한 결과, 중국은 양과 질에서 이미 미국을 능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연구진의 논문 수는 총 16만852건으로 미국(7만1688건)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논문의 질을 나타내는 피인용 상위 10% 논문 비율도 중국(2만3520건)과 미국(1만300건)의 격차가 컸다.

제이콥 펠드고이즈 CSET 연구원은 “중국은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컴퓨팅과 빛을 사용한 광컴퓨터 등에서 선두를 달리는데, 이런 차세대 기술은 기존 반도체 제조 기술에 의존하지 않아 미국이 통제하기 어렵다”라며 “중국이 미국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기술 도약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