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 느려 사고 많은 노인...'이것' 타고 횡단보도 건너면 어떨까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핑크셔틀 운행 개념도. 자료 SB

핑크셔틀 운행 개념도. 자료 SB

 ‘59.4%.’

 지난 2023년 한 해 동안 길을 걷던 중 교통사고로 숨진 노인(만 65세 이상) 가운데 도로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비율입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자료를 보면 전체 노인 보행 사망자 550명 중 332명이나 되는데요. 

 노인 보행 사망자 10명 중 6명은 길을 횡단하다 숨졌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해 보행 중에 다친 노인(1만 529명)의 45%(4763명)도 길을 건너다 부상을 당했습니다.  

 최근 5년간(2019~2023년)의 추이를 봐도 마찬가지인데요. 이 기간에 전체 노인 보행 사망자(3080명)의 60.1%인 1832명이 도로를 횡단하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상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도 46.3%나 됩니다.

 이처럼 횡단 중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노인이 많은 건 무엇보다 걸음이 느리기 때문인데요. 걷는 속도가 늦다 보니 보행신호 내에 제대로 길을 건너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구 도심에서 한 노인이 보행보조기에 의지한 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뉴스1

대구 도심에서 한 노인이 보행보조기에 의지한 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뉴스1

 
 또 점멸신호에 무리하게 횡단을 시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데다 걷기가 힘든 탓에 최단거리로 길을 건너려고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사례도 많다는 지적입니다. 

 안타까운 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안전한 횡단 방법 등을 홍보하고, 또 노인의 이동이 많은 횡단보도는 보행신호 시간을 늘리기도 하지만 역시나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민간기업이 아이디어를 낸 ‘핑크셔틀(Pink Shuttle)’ 사업이 눈길을 끄는데요. 정식명칭은 ‘세이프티 보드(Safety Board) 시스템’으로 엔지니어링과 건설·레저사업을 하는 계열사를 둔 지주회사인 (주)SB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핑크셔틀은 쉽게 말하면 넓은 횡단보도 가운데에 별도의 주행영역을 만들고, 노인 등 교통약자를 자율주행차량에 태워 안전하게 길을 건네주자는 개념입니다. 주행 속도는 일반 보행자의 걸음(초속 3~4m) 수준이라고 하는데요. 

 SB의 여승현 세이프티 보드 사업본부장은 “안타까운 사고를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라며 “사회 배려 취지와 친근감 등을 고려해서 핑크색을 택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는 폭 3~3.2m의 주행공간을 확보해서 셔틀차량 2대가 왕복하면서 교통약자를 수송하는 방식이며, 보행 신호에 맞춰 운영되는 전기셔틀은 한 번에 3~4명을 태울 수 있다고 합니다. 차량이나 보행자 충돌이 예상되면 정차 및 경고하는 기능도 갖춥니다.  

 또 셔틀은 눈·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에도 운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인데요. 셔틀을 기다리는 승하차장(핑크스테이션, Pink Station)도 설치되며, 주간은 물론 야간에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핑크셔틀은 왕복 8차로 이상의 비교적 넓은 도로에 설치된 횡단보도에서 특히 효과가 있을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노인 등 교통약자가 짧은 보행신호에 제때 길을 건너기가 쉽지 않은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SB 측은 ‘시니어보드 시스템’이란 명칭으로 2023년 8월에 특허등록을 했고, 이어 같은 해 말에는 ‘횡단보도 세이프티 보드 시스템’으로 특허등록을 마쳤습니다. 또 유럽과 미국·일본에도 특허를 출원해 놓은 상태인데요. 아직 국내외에서 유사사례는 찾기 힘듭니다. 

 현재는 차량 디자인과 운영 소프트웨어 개발을 끝내고, 하드웨어 설계 및 제작 준비 단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핑크셔틀이 실제로 선보이려면 넘어야 할 과정이 적지 않습니다.

핑크셔틀 운행 개념도. 양옆에 셔틀승하차장인 핑크스테이션이 있다. 자료 SB

핑크셔틀 운행 개념도. 양옆에 셔틀승하차장인 핑크스테이션이 있다. 자료 SB

 
 무엇보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차량은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고, 중앙선을 침범해서 통행해도 안 됩니다. 그래서 택한 방식이 국토교통부의 규제샌드박스인데요. 스마트도시 조성사업의 하나로 신청을 한 겁니다. 

 사업준비에서 사업개시까지 모두 12단계 가운데 현재 4단계 ‘신속확인’ 절차를 마치고, 5단계인 ‘사업계획서 작성·제출’ 과정에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는 꼭 필요한 게 어떤 지자체에서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 하는 내용입니다. 

 성남시와 SB 측이 지난해 10월 ‘세이프티 보드 시스템 스마트 실증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차질없이 절차가 진행된다면 8~9월께 사업 승인을 받고, 이르면 연말 또는 내년 초에 성남시에서 시범사업을 한다는 게 SB 측 계획인데요. 

 성남 시내 3곳의 횡단보도에 핑크셔틀 시스템을 설치하고, 시범운영을 하겠다는 겁니다. 초기 투자비용은 1곳당 20억원쯤으로 예상합니다.  

 
 물론 핑크셔틀이 여러 이유로 규제샌드박스를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 설령 시범사업을 하더라도 당초 생각보다 효과가 낮다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좀처럼 줄지 않는, 안타까운 노인 보행 사망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아이디어와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도 나이가 들고, 걸음이 느려지는 건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