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타운하우스 단지 내에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8공구 노선 지점이 표시된 깃발이 꽂혀 있다. 연합뉴스
3조원 규모의 국가철도사업이 거액의 토지수용보상금을 노린 땅 주인의 뜻대로 '토지 앞'에서 '토지 관통'으로 변경됐다고 연합뉴스가 20일 전했다.
보상금 30억원 중 10%를 떼어주겠다며 노선 설계 담당자에게 '노선 변경'을 대가로 2억원을 건넨 범죄가 탄로 났음에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풀려난 땅 주인은 이대로라면 애초 의도한 대로 거액의 보상금을 손에 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8공구 기본설계안(전체 길이 8.126㎞)은 A씨(51)가 소유한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토지 바로 앞'을 지나갔다.
춘천에서 속초까지 93.7㎞를 연결하는 동서고속화철도는 총 8개 공사 구역으로 나뉘어 사업이 진행 중이다.
타운하우스 분양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A씨는 자기 땅 앞으로 노선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대로 확정된다면 소음 등으로 인한 땅값 하락은 물론 타운하우스 분양 실패를 염려해 그해 2021년 12월께 8공구 실시설계 용역회사의 상무이사 B씨(55)에게 노선 변경을 청탁했다.
B씨는 기본설계안을 보여주며 "토지를 관통하는 쪽으로 노선 변경을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2022년 2월 9일 A씨는 B씨에게 1억원을 건넸고, 같은 달 22일 외부 전문가 자문회의에서는 A씨 토지를 관통하는 실시설계안(전체 길이 8.120㎞)이 적정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A씨가 원한대로 추진된 셈이다.
기본설계안과 견줘 변경된 구간은 A씨 땅을 포함해 총 5㎞가량. 그 뒤로 A씨는 3월 2일 한 차례 더 1억원을 건넸다.
두 사람의 불법행위로 인해 노선이 변경됐을 개연성이 상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지만, 철도공단은 A씨 토지를 관통하는 실시설계안은 공단 설계프로세스에 따라 정상적으로 추진됐다는 입장이다.
철도공단은 현재 460m 구간에 대한 승인을 관계 기관과 협의하고 있으며, 확정 시 A씨의 토지에 대한 손실보상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추진할 예정이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법률 자문 결과 실시계획 승인 고시 이후 손실보상에 대해서는 토지소유자가 소유권을 상실하는 데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미지급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