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은 미수, 상해 입혔다면…대법 "강간 미수라도 '강간치상' 인정"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간치상 미수 논란 여부에 대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뉴스1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간치상 미수 논란 여부에 대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뉴스1

 
성폭행이 미수에 그쳤더라도 피해자를 다치게 했다면 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는 판례를 대법원이 거듭 확인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0일 "현재 판례의 법리는 여전히 타당하다"며 강간치상죄와 관련한 기존 판례를 유지하겠다고 선고했다.  

숙취해소제에 졸피뎀 섞어 먹인 뒤 성폭행 시도 

피고인 주모씨와 천모씨는 20대 여성 A씨에게 졸피뎀을 먹여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2020년 3월 서울 서초구의 한 주점에서 A씨 및 A씨의 후배 B씨와 술을 마시던 중, 후배가 먼저 귀가하자 A씨를 성폭행하려 한 혐의를 받았다.  

천씨가 건넨 음료를 마신 피해자가 1분 만에 정신을 잃자 두 사람은 A씨를 호텔로 데려갔다. 둘은 피해자를 부축해 택시에 태워 데려가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A씨를 추행했다. 그러나 성폭행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A씨 남편이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오고, 같이 술을 마시다 자리를 뜬 A씨의 후배 B씨가 끊임없이 천씨에게 연락해 "지금 어디냐, 내가 가겠다"며 피해자의 상태를 물으면서였다. 이들은 A씨를 강간하려 하고, 졸피뎀으로 A씨를 의식 불명에 빠뜨린 혐의(강간치상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 사건이 대법원까지 오게 된 건 주씨 측이 "강간이 미수에 그친 이상 강간치상도 미수"라며 대법원에 판단을 요구하면서다. 성폭력처벌법에 따르면 2명 이상이 합동해 저지른 강간죄는 '특수강간'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으면 '특수강간치상'이 성립한다. 성폭행이 미수에 그쳤다면 어떨까. 성폭력처벌법 제8조 제1항은 이 경우도 '특수강간치상'이 성립한다고 규정한다. 즉, 특수강간치상에는 미수범이 없다.  

대법원 역시 이같은 판례를 유지해 왔다. 대법원은 부엌칼을 들고 직장동료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2013년), 전자충격기로 같은 학교 대학생을 위협하고 폭행해 강간하려 한 사건(2007년) 등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1·2심에서는 이같은 법률과 대법원 판례에 따라 두 사람의 특수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주씨에게 징역 6년을, 천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범행을 인정하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1년씩 낮춰 2023년 7월 주씨에게 징역 5년을, 천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주씨 측은 항소심에서 "강간이 미수에 그친 이상 미수범으로 보고 감경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고인이 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뒤 심리를 이어 왔다. 

대법원 "성폭력처벌법상 미수범도 범행주체…처벌받아야"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간치상 미수 논란 여부에 대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뉴스1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간치상 미수 논란 여부에 대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뉴스1

 
이날 대법원은 선고기일을 열고 "특수강간의 실행에 착수했으나 미수에 그친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으면 특수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는 현재 판례 법리는 타당하므로 유지돼야 한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은 특수강간 기수범뿐만 아니라 미수범도 범행주체로 포함하고 있다"며 "특수강간 미수죄를 범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으면 특수강간치상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를 모두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또 만일 주씨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형법상 강간치상죄 등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도 짚었다. 이어 "피고인에게 유리하다는 사정을 들어 처벌의 불균형을 야기하는 것은 형사사법의 정의에 반하는 해석"이라고 했다.  

이같은 판결에는 서경환 대법관과 권영준 대법관 2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두 대법관은 "특수강간치상죄는 미수범은 성립할 수 있다. 미수범이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해석 원칙과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법의 기본 이념에 충실한 해석"이라는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1995년 형법개정 당시 정비된 결과적 가중범 규정 등 해석과 관련하여, 학계를 중심으로 결과적 가중범의 미수범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여러 논의가 계속돼 왔다"며 "대법원은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결과적 가중범인 특수강간치상죄의 미수범 성립을 부정하는 판례 법리는 여전히 타당함을 확인했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