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적 300인, 재석 277인, 찬성 193인, 반대 40인, 기권 44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스1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이 20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2007년 이후 18년 만이자 1988년 국민연금 도입 후 세 번째 연금 개혁이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국민의힘 권성동·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회동에서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9%→13% 인상하고,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도 40%→43%로 늘리는 국민연금 모수(母數) 개혁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엔 ▶국가 지급보장 책무 ▶군 복무·출산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 인정(크레딧) 증가 등도 담겼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한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국민의힘 6명·민주당 6명·비교섭단체 1명으로 구성해 일단 연말까지 가동하기로 했다.
이번 개혁안은 급속한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해 국민연금 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동시에 노후소득 보장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제안 설명에서 “국민의 소중한 노후를 더욱 든든히 지키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마련했다”고 밝혔다. 21대 국회 연금특위 위원장을 지낸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 부의장은 “소득대체율 40%를 다시 인상하기로 한 것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나, 일단 이 법안은 통과시키고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가까운 시간에 선택해야 할 결정”이라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가운데)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일 국회의장실에서 국민연금 개혁안 합의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야당에서도 젊은 의원들은 반대표를 많이 던졌다. 30대인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반대토론에서 “더 받는 개혁안은 부모가 자식의 저금통을 털어 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지금 60대 정치인들은 매번 자신이 정치권에 있을 때만 폭탄이 터지지 않기를 바라며 정책을 만든다. 이런 식의 개혁이 계속된다면, 미래 세대는 더욱 심각한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선 이소영·장철민·전용기 의원이 반대했다.
대통령실도 환영 입장을 표하면서도 “미래세대를 위해 지속가능한 연금개혁이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페이스북에 “설령 표 계산에서 유리하더라도 정치가 그러면 안 된다. 청년들이 참여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적었다.
2013년 국민연금 기금이 2060년에 모두 소진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 이후로, 그간 정치권에선 한목소리로 ‘국민연금 개혁’을 외쳤지만, 해결책을 도출하지 못했다. 보험료율 인상이 곧 ‘월급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민심 악화를 우려한 정치권은 기금 소진 시점이 2057년→2055년으로 빨라져도 연금 개혁을 미뤄놓기 급급했다.
그러다 2022년 3·9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국민연금 개혁이 다시 부상했다. 그해 2월 TV 토론에서 맞붙은 대선 후보들이 “정권 초기에 이걸 해야 한다”(윤석열), “격차 해소를 위한 개혁은 필요하다”(이재명)며 연금 개혁에 한목소리를 내놓으면서다. 이후 국회 연금개혁 특위에선 치열한 물밑 협상 끝 보험료율 13%에 합의했다. 다만 소득대체율은 여당 43%, 야당 45%까지 좁힌 채로 평행선을 달렸다.
소득 없이 끝나는 듯했던 연금개혁 논의를 되살린 건 탄핵 국면이었다. 이 대표가 지난 1월 31일 “2월 안에 모수 개혁을 신속하게 매듭짓자”고 제안하자,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를 곧바로 수용하며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 이후 소득대체율과 자동조정장치, 연금 특위 구성안을 두고 한 달 넘게 줄다리기를 반복한 끝에 여야는 합의에 도달했다.
전격 합의 배경으로는 ‘포스트 탄핵 정국’에 대한 각자의 셈법이 거론된다. 여당인 국민의힘 입장에선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연금 개혁을 이뤄냈다는 점을 부각할 수 있다. 18년 만에 이룬 연금 개혁을 방패막이 삼아 야당의 ‘실패한 정부’ 공세에 반격하겠다는 계산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미래 세대에 희망을 드리겠다는 우리 정부·여당의 연금개혁 기조와 다소 맞지 않는 측면이 있어 송구한 마음이지만, 우리가 협상하지 않으면 거대 야당이 단독으로 더 심한 연금개악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70석 민주당 역시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연금 개혁에 속도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연금 개혁 논의가 장기화할 경우 21대 국회부터 이어진 ‘빈손 국회’라는 비판과 함께 정치적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특히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대표가 주도적으로 유연한 협상을 주문해 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내 반발에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이 대표 의지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회에선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사건 상설특검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했다. 수사 대상으로는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과 명품가방 수수, 대통령 집무실 이전,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등이 열거됐다. 함께 본회의를 통과한 ‘마약수사 외압 의혹 상설특검안’은 2023년 1월 말레이시아인 마약 조직원들이 국내 마약을 밀반입할 때 세관 직원들이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을 수사하도록 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등에서 이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