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농기계∙조상님 묘까지 쑥대밭…뜬 눈으로 지새운 의성 주민들

23일 오전 경북 의성군의 의성체육관. 전날 산불로 발생한 이재민들이 이곳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의성=백경서 기자

23일 오전 경북 의성군의 의성체육관. 전날 산불로 발생한 이재민들이 이곳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의성=백경서 기자

23일 오전 경북 의성군 의성읍 의성체육관. 전날 오전 11시 24분 안평면 괴산리 야산에서 시작한 산불로 대피한 주민 200여 명이 이곳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구옥자(72·의성읍 업1리)씨는 “새벽 4시쯤 바깥양반이 걱정된다면서 자두밭에 갔다. 자두나무가 혹시 다 타버릴까 봐 소용없더라도 물만 좀 뿌려두려고 간다더라. 한참 작업 중에 산불진화대원이 와서 ‘연기 때문에 위험하니까 일단 대피하시면 진화대원들이 집과 밭을 최대한 지키겠다’고 보냈다고 한다. 연기가 자욱해 숨쉬기 어렵고 한 치 앞도 안 보였다는데 산불진화대원도, 올해 자두 농사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최선필(82)씨도 “어제 점심때 이장님이 갑자기 산불이 났으니 대피하라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소리를 쳤다”며 “마을에 진입금지 조치가 돼 있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평생 여기 살면서 연기로 동네 전체가 자욱해질 정도의 큰 산불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옆에 앉아있던 다른 주민도 “너무 놀라서 약도 가져오지 못했다. 정말 가방 한 개만 달랑 들고 나왔다”며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가리켰다. 

23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 마을이 산불로 발생한 연기에 휩싸여 있다. 산불이 옮겨붙은 공장 건물이 불에 탄 모습이다. 김정석 기자

23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 마을이 산불로 발생한 연기에 휩싸여 있다. 산불이 옮겨붙은 공장 건물이 불에 탄 모습이다. 김정석 기자

의성체육관에는 이날 오전 기준 의성읍 65명, 정곡면 6명, 옥산면 3명, 아동 양육시설 25명, 요양원 83명 등 182명이 대피해 있다. 전날 오후 10시쯤 재난 구호용 텐트가 설치됐고, 가족이나 마을 단위로 나눠 텐트 안에서 밤을 보냈다. 이날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피해 소식을 공유했다. “각시골에서 대규모 자두 밭농사를 짓는 지인의 경우 자두나무는 물론이고 농기계까지 다 타버렸다”, “윗집에는 묘지까지 불에 탔다는데 어쩌냐”는 등 걱정이 쏟아졌다. 

요양원에서 온 어르신들은 대피소 한편에 누워 요양보호사들의 돌봄을 받고 있었고, 상담사들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심리 상담을 진행했다. 이들은 어르신들에게 아로마 오일을 제공하며 안정을 취하도록 돕기도 했다. 


23일 오전 경북 의성군의 의성체육관. 전날 산불로 발생한 이재민들이 이곳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의성=백경서 기자

23일 오전 경북 의성군의 의성체육관. 전날 산불로 발생한 이재민들이 이곳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의성=백경서 기자

 
이날 의성체육관에는 전국재해구호협회 등에서 보내온 물·담요·마스크 등 구호 물품이 속속 도착했다. 자원봉사자들과 경북도·의성군 관계자 등도 힘을 모았다. 대피소 주민들이 대부분 어르신인 만큼 불편 사항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텐트를 돌아다니며 간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뻐근해진 어르신들의 어깨를 주물러주기도 했다. 의성체육관 외부에는 밥차가 마련됐다. 한 50대 자원봉사자는 “우리 집은 피해가 없지만, 이웃들이 걱정돼 아침부터 나왔다”며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고 힘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 성묘객의 실화로 발생한 산불로 이날 오전 8시 기준 의성에서 주택 24동이 전소하고, 5동이 일부 피해를 입었다. 1802㏊의 산림이 불에 탔고, 32개 마을주민 등 951명이 15개 대피소로 이동했다. 산림당국은 전날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 때문에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의성 산불 진화율은 이날 오전 8시 기준 2.8%다. 경북도와 산림당국은 장비와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이날 안으로 주불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헬기 51대와 소방차 등 장비 311대를 동원해 진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진화 인력도 의용소방대와 군부대 병력 등 2471명을 투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