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만들기] 한·미 동맹, 의존형에서 자립형으로 전환해야

트럼프 2.0 시대의 한·미 동맹과 북·미 관계

지난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4년 만에 대통령으로 돌아온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동맹국 사이에도 외교적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4년 만에 대통령으로 돌아온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동맹국 사이에도 외교적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본격화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복합위기 상황을 놓고, 지난 19일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산하 한반도포럼은 ‘트럼프 행정부 2.0 시대 한·미 동맹과 북·미 관계 전망’을 주제로 집중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날아드는 경제·안보 청구서에 대비하되 일본 등 유사한 입장의 주변국과 연대해 외교 공간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포럼 창설의 주역인 백영철 한반도포럼 고문은 “미·러·중 강대국의 이익 우선 추구 외교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코리아 패싱’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자강(自强)외교와 다자외교를 통한 대처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포럼은 세 차례의 집중 정책토론회를 거쳐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한반도 평화를 적극 실현하기 위한 정책제안서를 오는 6월 발간하기로 했다.

맨주먹 휘두르는 강대국 정치 상황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발제)=트럼프의 세계 인식은 힘에 의한 세력권(Sphere of Influence) 체제에 가깝다고 본다. 이는 세계 질서가 맨주먹으로 힘을 구사하는 강대국 정치로 돌입한다는 의미다. 동맹도 가치 기반이 아닌 단기적 필요·편익으로 연결되는 제휴 성격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결정을 내리면 언제든지 북한은 물론 러시아, 중국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 한국을 패싱하고 바로 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초원의 코끼리를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비스듬히 맞춰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트럼프 특유의 ‘위협을 통한 승리 전략’에 말리게 된다. 한국의 당면 과제로는 통상 압박, 주한미군 주둔 비용 인상과 무기 구매 요구 등을 꼽을 수 있다. 향후 트럼프의 필요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방위비 분담금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주둔 비용의 100%를 한국이 부담하되 현금 대신 현물만 지원하겠다고 하면 우리도 실속을 챙길 수 있다. 근본적으로 한·미 동맹을 의존형에서 자립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 일본·독일 수준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안에서 핵 잠재력을 확보하고 한국군의 작전 통제권 행사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비핵화 외교 어려워도 여전히 필요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발제)=북·미 협상과 관련해 일각에선 ‘비핵화 외교 무용론’을 제기하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10년 뒤 북한이 현재와 같은 핵 역량을 계속 늘린다면 제2격 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을 갖춰 핵 운용에 있어 완전한 자율성을 갖게 될 것이다. 현재 합법적 5개 핵국가와 사실상 핵보유국 3개국 체제에 북한이 더해지는 ‘5·4’가 고착화해선 안 된다. 북핵 억제는 현재로선 한·미 핵협의그룹(NCG) 기반 확장 억제 강화가 최선이다. 자체 핵무장은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과 국제 통상 의존도가 큰 한국 입장에서 무리수다. 정권마다 중요한 대북 정책은 국회 상임위에서 심의와 합의를 거쳐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

산업 혁신과 경제적 자강이 살길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 허브원장=트럼프 1기 관세 정책과 달리 2기 관세는 캐나다·멕시코 사례에서 보듯 경제 외 문제를 끌어오고 있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규칙 기반 다자주의 통상 질서를 공정하고 상호적인 양자주의로 재편하길 원한다. 철강·알루미늄·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의 미 국내 유치(reshoring), 달러의 기축통화 영향력 유지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제2의 플라자 합의가 머지않아 나올 수도 있다. 한국은 뼈를 깎는 산업적 혁신과 경제적 자강에 나서야 한다.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트럼피즘의 약점은 미국 산업들이 불황으로 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보호주의와 현실주의 앞에 미국만 고립되고 다른 나라는 연합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미국이 대중 경쟁에 몰두한다면 대중 견제의 전초기지로 한국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대미 협상에서 한국의 몸값을 올리는 전략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세계 질서가 세력권 체제로 간다면 한국은 과거 중국의 영향권 하에 있던 시기로 돌아가게 될 수 있다. 중국에 적대적일 필요는 없지만,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경계의 대상이어야 한다. 다만 1950년대 애치슨 라인(한반도를 제외한 미 측의 방어선)이 등장했던 때와 지금의 한국은 가치가 달라졌다. 트럼프가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부르는 데서 볼 수 있다. 자강력을 키워 대응하는 게 결국 답이다.

북·미 간 불신 없애야 비핵화도 가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북핵 협상이 30년간 실패한 데는 북·미 간 상호 불신이 컸다. 핵 문제는 북한이 미국을 믿게 해줘야 해결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사례에 비춰볼 때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동독 포용정책을 장기간 추진했기에 통일이 가능했다. 한국은 과거 남북 기본합의서를 체결했지만, 동·서독은 국회 비준을 거친 조약을 맺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하려면 남·북·미 간 재래식 무기에 관한 3자 군사 협의가 필요할 수 있다. 북한이 비핵국이 될 경우 중·러 등 주변국의 핵우산을 씌워주겠다는 보장 정도는 돼야 북한이 비핵화를 할 동인이 생길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우리 안에서 북핵 문제나 외교 안보, 경제 등 각개 전투 영역을 통합해서 지휘할 수 있는 리더십과 연정이 가능해야 정책의 지속성이 담보될 수 있다.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엔 여야 협치로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과 같은 초당적 합의를 끌어냈던 사례가 있었다. 트럼프 시대에 미국의 동맹 전략이 독자 전략으로 변화하는 마당에 한·미 동맹을 튼튼히 유지하며 핵 문제에서는 한국이 자율성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독일 등 나토 국가들 내에서도 핵무장 논의가 나오는 실정이다.

비슷한 처지 일본·호주와 연대해야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최병일 태평양 통상전략혁신 허브원장,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박영준 국방대 안보문제 연구소장,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백영철 한반도포럼 고문,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 장진영 기자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최병일 태평양 통상전략혁신 허브원장,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박영준 국방대 안보문제 연구소장,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백영철 한반도포럼 고문,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 장진영 기자

▶박영준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소장=북·러 조약을 고려하면 러시아의 핵도 고려해야 한다. 핵 공학 전문가들은 북한이 향후 10년 동안 전술핵을 300발 정도 더 만들 것으로 본다. 중·러는 10년 뒤 전술핵을 두 나라 합계 3000~3500발 보유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미국은 현재 1500발에 묶여 있다. 이에 일본·호주 등 미국의 확장억제에 의존하는 나라들과 연대해 정책 협의를 할 필요도 있다. 특히 국제 질서의 판이 바뀌는 이 시기야말로 한·일이 손을 잡아야 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북한이 1990년대에 생존 전략으로 핵 개발을 선택한 이후 결과론적으로 미·중으로 대표되는 강대국을 한반도에 묶어두는 효과가 있었다. 미·중이 한반도에 핵 문제로 인해 엮이고, 상시 위기 시스템이 작동함으로써 80년 가까운 북한의 3대 지배가 가능했다. 체제 생존을 위한 안보만 있을 뿐 국가 안보가 아니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이 자체 핵 개발을 하든 전술핵 재배치, 순환 배치를 하든 북한이 원하는 위기를 더욱 고조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초당적 협의체로 남북 대화해야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일본은 트럼프 1기 때 아베 신조 총리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만들어 미 측에 제시했다. 트럼프 2기를 맞아 한국도 주도적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효과적인 북핵 억제 방안은 결국 경제적 의존성이 핵심이다. 남북 양자를 넘어 글로벌 상호 의존성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도 필요하다. 김정은은 선형적 경제 발전보다 ‘단번 도약(quantum leap)’으로 첨단 산업을 먼저 키우고 싶어 한다. 여·야가 초당적 합의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독일 좌파인 브란트가 동방 정책을 처음 추진할 때 당내에서도 반대가 있었지만, 우파인 기독민주당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 총리가 이를 수용했다.

▶백영철 한반도포럼 고문=변동의 시기에 불어닥치는 외풍에 대응하기 위해선 국내 정치의 단합이 필요하다. 남북 관계 단절 상황에선 자칫 우발적 사건이 군사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 교전 상태의 국가 간에도 대화 채널이 존재하는데 남북 간에 대화와 협력의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정권마다 대북 정책이 바뀌고 단절적이고 일관성이 없으면 안 된다. 광복·분단 80년째다. 8·15 광복절을 맞이해 초당적인 여·야·정 협의체를 발족하고 한반도 평화 정책의 마스터 플랜을 작성해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